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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의 "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2/12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 더글러스 프레스턴 / 손성화 : 별점 3점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 6점
더글러스 프레스턴 지음, 손성화 옮김/나무의철학

오래전부터 온두라스 밀림 속에 숨겨져 있다고 알려진 '시우다드 블랑카', 즉 백색 도시라 불리는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입니다. 정복자 코르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백색 도시가 실려있는 다양한 사료 소개에서 시작하여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탐험들부터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특히 미국의 대부호 헤이가 1930년대 미첼헤이스, 1935년 R.S 머레이, 1940년 모드를 고용하여 탐사를 벌였던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사기꾼이었고, 특히 모드는 유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금광을 찾기 위해 탐험에 뛰어들었던 악질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잃어버린 도시 탐험이 시작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자율 주행 기술때문에 널리 알려진 '라이다' 기기를 활용했다는 점이었어요. 비행기에 실은 라이다 장치로 조사하려는 장소 스캔을 통해 GPS 정보까지 링크된 완벽한 3D 지도를 만들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실제 밀림을 뚫고 나가는 과정이 엄청나게 단축되었다는데 여러모로 놀라왔습니다. 과거 '인디아나 존스' 등으로 상징되는, 고고학자가 발로 뛰어들어 조금씩 유적의 실체를 벗기고 유물을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백색 도시 탐사 초반부의 어려움은 발로 뛰는 현지 조사가 아니라 온두라스 정부와 발굴 교섭을 하는 행정 절차였다고 하네요. 이 과정에서 온두라스 쿠테타로 인해 새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백색 도시 발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후원했다는 언급도 신선했고요.

백색 도시 실체를 3D 지도로 확인한 뒤, T1 지구라고 부르는 현지 밀림 속으로 들어가 유적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전직 SAS 장교 출신으로 위험한 환경으로 들어가는 방송 관계자를 서포트하는 전문가들이 고용되고, 다양한 안전 장치를 거의 완벽하게 확보해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독사를 만나고, 온갖 벌레들에게 습격당하는 묘사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지 조사는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프로젝트 리더 스티브 엘킨스가 직접 참여할 수 있었을 정도니까요. 제 생각에는 "정글의 법칙" 보다 조금 위험한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백색 도시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며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져 있습니다. 확실히 '내셔널 지오그래피' 소속 기자다운 느낌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중반부까지를 차지하는 백색 도시 탐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자가 책 서두에 던진 질문, 이 문화를 만든 이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문명을 일구었으며 어떻게 그렇게 깜쪽같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는가? 에 대한 답이 설명되는 뒷 부분이 진짜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이 문화를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모스키티아 주민들입니다. 원래 이 지역에 작은 부락을 만들며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던 모스키티아 문명은, 수백 Km 떨어진 마야 도시 코판이 강성해지면서 영향을 받고 성장하게 됩니다. 426년 마야인 케트살마코가 코판을 장악했는데, 이 때 코판 지역 원주민들은 모스키티아 주민들과 동일 어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당연히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 뒤 코판과 모스키티아는 5세기 이후 각자 교류하며 발전해 나갔지만 코판에서 왕족들이 신성을 강조하며 거대 토목 사업을 벌이다가 기근이 닥치고, 신성이 무너져 주민들이 반기를 든 탓에 코판은 9세기경 붕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이때부터 모스키티아 문명은 더욱 발전하여 마야 스타일 도시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도시 파괴 후 흩어졌던 코판 주민들 일부가 유입된 덕분이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람이 살기 힘들어 보이는 밀림에서도 복합 농경 사회를 일구며 발전한 모스키티아 문명도 1,500년 경 갑자기 몰락하고 맙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서구 사회에서의 전염병 유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백색 도시 제단에 남겨진 제물들 형태를 볼 때, 살아남은 주민들이 제물을 바치고 떠난게 분명합니다.

이들이 번성하는 도시를 그대로 놔 두고 도망쳐 버린 이유, 그리고 도시가 저주받았다는 전설이 널리 퍼진 이유는? 전염병이 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치에 맞습니다. 신세계에 콜럼버스와 선원들이 천연두, 홍역과 같은 전염병을 들불처럼 퍼트렸고, 이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던 신세계 주민들은 거의 90%가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충분한 근거가 되고요. 코르테스가 단 500명의 군대로 아스텍 제국을 정복했던 것도 결국은 마찬가지로 전염병 덕분인 셈이니까요.
구세계 주민들은 전염병에 어느정도 내성이 있었는데 신세계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는지도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도 볼거리입니다. 구세계에서는 일찍이 온갖 가축을 키웠고, 밀집한 장소에 모여 살아서 병원균 침입 및 전파가 잦았고,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유전자를 물려주어서 유전 저항이 생길 수 있었지만, 신세계에서는 가축을 많이 키우지 않고 넓은 공간에 살아서 상대적으로 면역력을 키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꽤 그럴듯하지 않나요? "총, 균, 쇠"와 비슷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무자비한 구세계 전염병의 습격을 저자가 온두라스에서 걸려온 풍토병 리슈아만편모충증과 연결하여, 우리는 분명 저주받았으며 이렇게 신세계에서 발생한 미지의 전염병이 우리를 습격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로 글을 끝맺는데, 최근의 코로나 사태와 어느정도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꽤나 깊은 울림을 전해 줍니다. 앞으로 어떤 미지의 병원체가 인류를 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는데, 남의 일이 아닌 셈이지요.

그러나 마지막 후일담은 씁쓸했습니다. 천연 밀림으로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았던 T1 지구가 온두라스 군대와 고고학자들이 머물며 파괴되어 가는 현재를 취재한 내용인데, 이렇게 사람 손 닿지 않은 비경이 훼손된 책임은 명백히 처음 도시를 찾아나선 전문가들에게 있으니까요. 때문에 그들은 저자처럼 훼손되는 숲을 보고 안타까와 하는게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고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그냥 발굴에 대한 명예만 얻고, 좋은 방송 콘텐츠 제작한걸로 끝내버리는 행동은 지극히 무책임해 보였어요. 하긴, 구세계 출신인 멤버들이 주도한 탐험과 발굴 자체가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기들이 퍼트린 질병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망한 나라를 숨겨진 도시라며 다시 찾아와 마지막으로 바친 제물을 끄집어 낸다? 부관참시와 같은 죽은 자를 죽어서까지 모욕하는 행위와 별로 다를게 없지요. 이래서야 발굴에 참여한 구세계 출신 멤버들이 안 좋은 운명을 맞게 되는건 당연해 보여요. 고고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고인능욕(?)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 나라 그 민족 후예들이 중심이 된 발굴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발굴과 조사도 무인 드론이나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무인 로봇개 등 무인 시스템을 활용하여 사람 손 닿지 않게 이루어지는게 바람직할테고요.

이렇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건 물론, 비교적 재미있고, 건질게 많았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온갖 벌레와 독뱀이 사방에 천지라 쉽게 갈 엄두를 내기는 힘든 곳이지만, 제 평생 한 번 정도는 중남미 고대 문명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네요. 언젠가 기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무려 스물 네 편이나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못하자 두석구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하고요.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반전 덕분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던 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하고요.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하고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인데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하여튼, 전체 평균해서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모든 수록작 중 세네 편 정도가 중간 수준, 세 편 정도가 중간 이상, 한 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해 보입니다.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17/07/02

식물 이야기 사전 - 찰스 스키너 / 윤태준 : 별점 2점

식물 이야기 사전 - 4점
찰스 스키너 지음, 윤태준 옮김/목수책방

120가지 식물들에 대한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전해지는 전설이나 재미난 일화를 모아서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하나하나의 호흡이 굉장히 짧습니다. 길어야 2~3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들입니다. 짧은 건 반 페이지 짜리도 있고요.

이런저런 정보들이 많으리라 기대했는데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탓이 큽니다. 식물, 꽃이 많아서겠지만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대체로 비슷해서 지루하거든요. 슬픈 사랑의 결과로 연인이 꽃이나 식물이 되었다, 신의 저주 등으로 꽃이나 나무가 되었다는 식인데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내용도 중구난방입니다. 항목들의 정리부터가 모호해요. '곡식' 이라는 큰 주제로 벼, 귀리, 수수 등을 모아 소개하는 항목이 있을 정도니까요.
수록된 이야기도 전설이면 전설, 실제 역사면 역사라는 식으로 보다 명확하게 카테고리를 구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심지어 도판도 하나 없습니다!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항목별로 똑같거나 유사한 구성에 적절한 도판이 필수라 생각합니다. 이런 건 일본 친구들이 잘 하는데 말이죠. 솔직히 사전이라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 실정과 정서와 맞지 않는 식물들이 많은 것도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봄직한 것들은 별로 등장하지 않아요. 서구권 신화, 전설, 일화 비중이 높습니다. 동양권 이야기는 그나마 일본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좀 과한 점이 없지 않고요. 국화 이야기에서 국화와 아무런 관계없는, 단지 이름이 '오키쿠'인 인물의 전설을 가져다 인용하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사전'이라는 취지에 많이 어긋나지요.

그래도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재미있는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몇개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처음 알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개암이 헤이즐넛입니다. 개암은 북유럽에서는 굉장히 '신령스러운' 나무로 요술지팡이의 재료이자 일찌기 '다우징' 용으로 많이 쓰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식물학자 린네가 이것이 그냥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숲 속에 돈을 숨겨두고 친구에게 개암나무 가지로 찾아보도록요. 뭘 이런걸 실험 씩이나 했는지.... 여튼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서 아담을 불쌍하게 여겨 신이 전해준 것이 개암나무 지팡이라는 등, 잉글랜드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 건물은 개암나무 가지를 엮어 지었다는 등 기독교 쪽에서도 알아주는 나무더군요.
이와 정 반대되는 식물은 '금작화'입니다. 유다에게 팔려가기 직전 예수의 기도를 방해한 것은 금작화가 내는 소리였고, 헤롯왕에게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은신처를 알려준 것도 금작화와 이집트 콩이라고 하니까요. 마녀가 타는 빗자루도 금작화 가지로 만든다니 중세 시대에 멸종되지 않은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보리수 열매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라는데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딘의 우주수 위그드라실이 물푸레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그동안 선악과가 사과라고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는 명확하게 종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니 의외였습니다.
동방 박사가 바친 '유향'은 발삼나무 수액을 말려 만든 약재라는군요. 수천년 된 전설의 약재인데, 무슨 효능이 있는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리 관련 이야기도 몇가지 기억에 남습니다.
타비스톡 애비의 수도사들은 맛있는 사과주를 만들어 수도사를 모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톡 쏘는 맛이 너무 강했어요. 와인과 섞어서 부드럽게 만들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수도원장이 사과주를 부드럽게 만드는 공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키작은 절름발이 노인 한 사람이 나섰죠. 그런데 한 수도사가 노인이 뭐하나 궁금해서 몰래 훔쳐보니 악마였다지 뭡니까. 그래서 놀란 수도사가 술통에서 잠자던 악마에게 사과주를 쏟아 붓자 노인은 저주를 퍼부으며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화난 노인이 발한 열기 때문에 사과주가 펄펄 끓었고, 식어버린 사과주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미! 그때부터 모든 사과주를 불타는 유황에 부어 만든다고 합니다.
단풍당 (maple sugar)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한 인디언 여성의 귀차니즘 때문이랍니다. 어느날 그녀가 사슴고기를 요리하다가 물을 떠오기 귀찮아서 단풍나무 수액을 채워 넣고 불에 올린 것이죠. 그 다음 잡담을 즐기다고 돌아와보니 수액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사슴고기는 끈적끈적해 버렸습니다! 남편에게 혼날게 두려워 도망갔는데 밤에 돌아와보니 남편이 딱딱하게 굳은 고기를 열심히 먹고 그녀를 칭찬했다고 하네요. 아마 일종의 '사슴고기 강정' 이 되어버린 것이겠죠? 쉽게 구할 수 있는 단풍나무 꿀을 고기에 발라먹으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외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도 인상적입니다. 1월 6일 밤 딱총나무 가지를 꺾고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 후, 대답이 없으면 침을 세 번 뱉는다. 꺾은 가지를 가지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마법진을 그리고, 주위에 특정 꽃과 산딸기 등을 늘어놓은 다음 한가운데에 선다. 악마가 나타나면 힐다의 지팡이(딱총나무 가지)로 가리키면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시도해 봐야 겠네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질 항목에서 소개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이사벨라, 로렌조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둘의 사랑을 방해한 오빠들에게 로렌조가 죽자 이사벨라는 로렌조의 시신에서 머리만 잘라내어 화분에 숨기고 바질을 심어 소중하게 가꾸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머리가 들은 화분이라니! 괴담에서나 봄직한 이야기인데 이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것도 놀랍기만 하네요.

이렇게 읽을만한 부분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14,000원에 가까운 가격도 과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인터넷을 통해 접해도 충분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2008/12/08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 류동현 : 별점 3점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 6점
류동현 지음/루비박스

최근에 국내외적 문제와 직장문제, 개인적 사생활 문제로 인하여 독서에 힘을 쏟지 못하던 와중에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입수한 책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던 차에 하늘의 선물이라 여기고 곧바로 읽어버린 책이죠.

책은 크게 영화 시리즈 4편을 중심으로, 각 편마다 등장하는 유물과 그 유물에 관련된 역사를 다루고 있는 구성으로, 솔직히 신청할때는 훨씬 두껍고 전문적인 책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받고보니 그야말로 "핸드북" 이더군요. 덕분에 쉽게쉽게 빠르게 읽히는 맛은 있었고 인디아나 존스의 팬이라는 저자의 팬심은 적나라하게 느껴졌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전문적"인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한마디로,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내용을 살펴보자면, 첫번째 편 "레이더스"에서의 성궤 이야기는 그런대로 한 줄기를 잡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는 있지만 (과연 성궤는 언제, 어디서 없어졌으며 지금 어디있을까?) 작가의 말대로 그레이엄 행콕의 "신의 암호"를 지나치게 인용한 마무리가 좀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디 시리즈 중 제일 재미없게 보았었던 두번째 편 "저주의 사원"은 "상카라 스톤"이라는 등장 유물과 그 배경이 너무 허구인지라 고고학과는 좀 동떨어진 주제로 보였습니다. 세번째 편인 "최후의 십자군"의 성배 이야기는 "다빈치 코드" 덕분에 수없이 많은 자료가 넘쳐나는 이야기라 신선함이 떨어졌고요. 네번째 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영화 개봉 이전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인지 "크리스탈 해골"에 대한 간략한 서술과 마야, 아즈텍 등 중앙 아프리카 고대 문명에 대한 개략만 훝는 정도로 끝나서 좀 더 깊이있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뭔가 읽다보면 흥미롭긴 한데 그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갈증만 더하는 꼴이었어요. 그 외에 영화 서두에 등장하는 짤막한 유물들과 TV시리즈 등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고 있으며 부록으로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싣고 있는데, 영화에 대한 정보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고요.

요약하자면 좀 저연령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수준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한 학습도서에 가깝다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타겟을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책의 주제는 마음에 들기에 좀 더 흥미롭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과적으로 내용이 별반 깊은 수준을 다루고 있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레이엄 행콕의 "신의 지문"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기회 마련해 주신 이글루스와 도서출판 루비박스 관계자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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