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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3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 미쓰다 신조 / 신정명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조 겐야는 편집자 시노, 오가키와 함께 고라 지방 도쿠유 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네 가지 괴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행이 '하에다마 님' 숭배 신앙이 남아있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불가해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네 가지 괴담의 상황과 장소가 일치하는 네 건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도조 겐야가 나서는데...

미쓰다 신조도조 겐야 시리즈 최신 장편입니다(국내 기준).  
괴담과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하는 시리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라 지방에 전해지는 네 개의 괴담이 단순한 배경 설명이나 분위기 조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지는 네 개의 사건과 정확하게 대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네 개의 사건은 모두 일종의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격물적인 가치도 높고요. 특히 노조키 렌야 사건과 신관 사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노조키 렌야 사건은 멀쩡히 입구가 열려 있는 대숲 신사에서, 어디에도 결박된 흔적이 없는 노조키 렌야가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라는 기묘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언뜻 보면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범인은 낡은 법의를 노조키 렌야에게 입힌 뒤 그 법의에 긴 대나무 장대를 꿰고, 천으로 양손을 결박해 양팔이 벌어진 상태로 몸을 고정해 두었던 겁니다. 그 결과 노조키 렌야는 빽빽한 대숲 사이를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눈 앞의 출구도 어떻게 해도 걸려서 나갈 수 없었고요. 이는 현장에 남아 있던 대나무 장대와 사당을 부수려 했던 약한 타격 흔적, 대숲 입구에 남은 내려친 자국들로 증명됩니다.
닫힌 방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처럼 만든 점, 현장의 자연물 자체를 트릭의 일부로 끌어들였다는 점, 그리고 괴담과 동일한 '아사'라는 살해 방법을 택한 점 모두가 대단합니다. 별점 5점도 충분할 정도로요.

망루 오두막 전망널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던 신관이 추락사했는데, 호리이 씨가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고 사바오도 곧바로 망루를 찾은 탓에 범인이 도망칠 수 있었을 리 없었다는 신관 사건의 트릭도 돋보입니다.
범인은 먼저 신관을 살해한 뒤 망루 안의 옷장 위치를 바꾼 뒤, 벽과 옷장 사이에 시체가 가부좌 상태로 고정되게 끼워 놓았습니다. 이후 사후 경직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범인은 신관의 옷을 입고 신관인 척 망루로 올라가서 굳어 있는 시체에 다시 옷을 입혀 전망널로 밀어 놓고 사라집니다. 범인이 사라진 뒤 시간이 지나자 시체는 사후 경직이 풀려서 아래로 떨어졌던 겁니다.
전망널이라는 망루의 독특한 구조와 망루 내부의 기물들, 그리고 항상 명상하는 신관을 바라보는 목격자 호리이의 존재를 알리바이 조작에 활용한 멋진 시한장치 트릭입니다. 이 역시 별점 5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에요.

도조 겐야와 소후에 시노의 티격태격, 도조 겐야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 등의 요소도 팬으로서는 즐길거리였고 괴담도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충분히 섬뜩합니다. "하에다마 님"으로 짐작되는 존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근하게 공포를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괴담을 활용하여 현실의 사람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네 번째 괴담의 진상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다른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교하면 괴담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500여 페이지 분량 중 무려 120여 페이지가 괴담에만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 탓에 도조 겐야가 마을 안에서 직접 움직이며 활약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주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가키누마 도루와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또한 몇몇 사건의 동기는 썩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신관이 오래전 마을의 범죄와 인신공양이라는 과거가 밝혀질까봐 노조키 렌야를 살해했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범죄자의 가족까지 오랫동안 낙인찍는 일본 특유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있는 동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이해하기는 무리라 생각되네요. 이보다는 사랑하는 손녀 스즈카제를 탐내고 있었다던가, 보다 직접적인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이 나았을 겁니다.
고라 지방 마을의 우두머리(?)인 5인방이 합병을 막기 위해 유리아게 촌에서 생활하는 닛쇼방적 사원을 위협했다는 이야기 역시, 목적과 동기가 다소 모호합니다. 사원 몇 명이 마을에 발길을 끊어봤자, 마을 합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을 것 같으니까요. 이 역시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 필요했을거에요.

스즈카제 양이 다루마 동굴에서 기지를 살해한 사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스즈카제가 동굴 내부를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다는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동굴 내 도구를 이용해 원거리 살인을 성공했다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거든요. 기지가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있어야 성립한다는 점에서도 말이 안되고요.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앞선 두 사건이 워낙 뛰어나서 오히려 이 약점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오래전 마을이 상선을 침몰시켜 약탈했고, 어린 여자아이를 인신공양했다는 등의 고라 마을에 얽힌 괴담의 진상도 이전에 읽었던 미쓰다 신조 작품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게다가 정말로 '하에다마 님' 같은 괴이가 실존한다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괴담이 실존한다는 분위기가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한 개 마을이 깡그리 사라진다는건 억지였어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워낙 분명해서 충분히 읽어볼 만 합니다. 괴담은 섬찟하고, 추리는 현실적이면서도 참신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는 본격 미스터리의 쾌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 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 팬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2025/04/19

금병매 살인사건 - 야마다 후타로 / 권일영 : 별점 1.5점

금병매 살인사건 - 4점
야마다 후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스토리텔러

원제는 "妖異金瓶梅 (요이 금병매)". 중국 고전 "금병매" 속 인물들과 설정으로 본격 추리극을 만든 15편의 독특한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주로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을 질투하여 없애는 반금련의 계획이 그려지며, 탐정역은 서문경의 난봉꾼 친구인 응백작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대표적으로 이거)를 통해 언급되던 작품이지요. 국내에 출간되었다는걸 몰랐었는데, 얼마 전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징이라면 본격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역사 소설 느낌도 난다는 점입니다. "금병매"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러나 추리물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수록작 거의 대부분의 동기가 "반금련의 질투"이며, 핵심 트릭 대부분도 "반금련의 변장"으로 의외성과 설득력도 거의 없는 탓입니다.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가면 갈수록 지루해지고요. 

게다가 마지막 몇 작품은 아예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금련이 서문경을 너무 사랑한 탓에 사건을 일으켰고, 반춘매와 응백작, 심지어 무송까지 금련 주변 인물들도 모두 금련을 사랑했다는 결말은 황당하고요. "메이지 단두대"에서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차라리 이게 추리 소설에는 더 어울렸습니다. '사랑' 때문이라는건, 호색한 서문경이 주인공인 "금병매"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대부분이 별로였고, 지루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금병매"와 "수호지"를 바탕으로 쓴 팬픽 정도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다만 딱 한 작품, "인어등롱"만큼은 빼어납니다. 작품에 반복되는 반금련의 질투로 인한 살인과 억지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현실적이고 "금병매" 세계관과도 잘 어울리는 덕분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이 작품 한 편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저택의 사육제" 정도 말고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히 "금병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런 작품까지 꼼꼼하게 번역, 소개해 준 출판사와 번역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 작품보다는 "메이지 단두대" 쪽이 훨씬 낫습니다. "메이지 단두대"가 제대로 소개되는게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신발"

서문경의 부인 둘이 다리가 잘려 죽었다. 범인은 또 다른 부인 손설화로 의심되었다. 몽유병 증세가 있던 설화가 과형이라는 다리를 잘라 집행하는 사형 집행 과정을 본 뒤, 원한이 있었던 두 부인을 살해했다고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문경의 친구인 난봉꾼 응백작은 여성 다리에 대해 성적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하인 내왕야가 범인이라고 추리했다. 죽은 부인들의 다리를 가져다 놓고 옮긴 과정이 설화의 짓으로 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응백작은 장례식 날, 송 부인과 봉 부인의 발이 바뀐걸 보고 이 모든걸 꾸민 진범은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챘다.  

반금련이 자신을 얕잡아 보는걸 절대 용서하지 않는 독부라는걸 잘 알려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동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은 송 부인의 발이 자기 발보다 작다는걸 공개적으로 과시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송 부인의 발을 봉 부인 발과 바꿔친 후, 장례식에서 송 부인 발이 자기보다 크다는 말을 남기려고 다리를 옮겼던 겁니다.

그러나 범행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반금련 혼자 다리를 잘라 옮기는게 가능했으리라 보이지도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미녀와 미소년"

서문경이 총애하는 두 명의 미소년 화동과 금동은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금동이 반금련과 정을 통하자, 화동은 이를 서문경에게 고해 바쳤다. 서문경은 반금련에게 탁랍형을, 금동에게는 궁형(거세형)을 내렸다. 형을 받은 금동은 동굴에 갇혀 화동을 원망했는데, 어느날 동굴 앞에서 화동이, 집 안에서는 금동이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서문경이었습니다.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건, 서문경이 사체를 업고 날랐기 때문이고요. 사체를 업고 옮길 수 있는건 서문경 밖에 없다는걸 밝혀내는 응백작의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전족을 한 여자들에게는 무리였으니까요.

하지만 반금련이 두 남자에게 질투하여 모두를 죽이려고 짜낸 계책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금동이 거세된 뒤에는 죽일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반금련이 화동으로 변장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였습니다. 서문경이 이를 몰라보았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이 질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반금련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하며, 반금련의 변장은 천하무적이라는 설정은 이후 모든 단편에서 반복되는데,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염마천녀"

양산박 도적 소탕 실패에 책임을 지게 된 사돈 양 제독 탓에, 딸과 사위 진경제는 서문경의 집으로 도피했고 서문경도 함께 근신하는 신세에 놓였다. 서문경은 이 와중에 사위 진경제의 몸종 주향란을 새로이 일곱번째 첩으로 들였다. 그러나 진경제와 주향란은 이미 정을 통하던 사이였다. 반금련은 잔경제를 유혹했지만 들통난 뒤, 진경제는 서문경의 저택 우리에 갖혔다. 그리고 도성의 일이 정리된 날, 누군가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었는데...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은건 누구일까?라는 후더닛 물인데, 특별한건 없습니다. 당연히 반금련이니까요. 정액을 발라 남자 냄새를 풍겼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만, 변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마다 유혹하고 다니는 반금련을 그냥 놔두는 서문경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택의 사육제"

지현의 색기 넘치는 부인이 서문경 저택을 방문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였다. 반금련은 그녀를 덮칠 계획을 서문경에게 알려주었다. 연회에서 술게임을 해서 취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에 너무 취한 임부인은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임부인이 떨어져 죽은건 반금련의 계획이었고, 그녀의 시체를 지현의 부하들에게 고기 구이로 속여서 먹였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엄청나게 뻔하지요. 하지만 여러 음식 및 작가 특유의 광기어린 분위기의 묘사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란꽃 살인"

유명 화가 소용면이 서문경의 처첩 초상화를 그려주는 날, 새로운 일곱번째 첩 양염방이 벌에 쏘였다. 반금련이 건네 준 모란 꽃 때문이었다. 그 뒤 자기 때문에 자살한 소자허의 원혼이 보인다며 난동을 부리던 염방은 반금련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용면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염방이 독살당하는데...

스스로 벌에 쏘인 반금련이 양염방인 척 연기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일부러 벌에 쏘인 상처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으려고 머리카락이 잘린 척 했다는건 괜찮았어요.

그러나 변장 트릭이 너무 허황됩니다. 소용면만 있던 것도 아니고, 서문경과 응백작 및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변장한 반금련을 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몰라봤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내"

인색하기로 유명한 서문경의 생약가게 부지배인 한도국이 어느 날, 아내의 전남편 송철곤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송철곤은 납을 은으로 만드는 비법을 완성했다고 주장했고, 철곤에게 속은 서문경은 가마를 만들고 거액의 은도 투자했다. 그런데 가마에서 풀무질을 하던 중, 서문경은 한도국의 아내이자 유명한 추녀 요금에게 급작스럽게 음심을 품게 되었다. 그 뒤 한도국에게 요금을 아내로 달라고 제안했는데, 요금은 철곤 도사의 블꽃쇼 도중 화살에 맞아 죽고 도사도 가마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송철곤 도사의 연금술 사기,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 철곤 도사의 불꽃쇼와 새부인 요금 살해 사건, 철곤 도사 살해 사건, 한도국 살해 사건이 차례로 벌어지는 탓입니다. 

철곤 도사의 연금술 비법은 당연히 사기인데, 나름 기발한 점이 있습니다. 가마 앞에서 음탕한 행동을 하면 은이 납으로 변한다고 말한 뒤,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약을 탄 술을 먹여 음란한 짓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거든요. 이게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로 이어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전별금'이라는, 한도국이 송철곤을 죽인 이유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극히 수전노스러운 동기로, 제가 여태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던 동기였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은 어처구니없네요. 삶은 달걀을 억지로 밀어넣어 목을 막아 죽였다는 방법도 황당하지만, 대충 만들어 자동으로 발사되게 만든 화살이 형편좋게 요금의 등에 맞았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에요. 도사를 살인범으로 모는 것도 과연 잘 되었을지 의문이고요. 한도국이 돌아온 뒤, 반금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죽는 결말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주해야 했던 사람이 구태여 반금련을 만나 사지로 걸어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요금 이야기를 빼고 사기에만 집중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인의 향기"

서문경과 반금련에게 원한을 품은 호걸 무송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문경 가족은 저택에 숨어있기로 했다. 심심했던 반금련은 향기로 여자 맞추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게임 도중에 무송이 쳐들어왔다. 서문경은 기생 이계저와 함께 관 속에 숨은 뒤 험한 꼴을 당한다... 

모든건 응백작과 반금련이 힘을 합처 꾸며낸 연극이었습니다. 소란 틈에 응백작은 돈을 훔치고, 반금련은 기생 이계저를 쫓아내기 위해서요. 거대한 무송은 응백작 어깨 위에 반금련이 올라타 연출했지요.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으로 경쟁자 이계저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보다는 조금 낫더군요. 무송이 엮이는 설정도 흥미로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 속 미녀"

여섯째 부인 이병아가 죽은 뒤, 서문경은 애틋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편, 반금련은 금동의 여동생 춘연을 몸종으로 들인 뒤, 금동이 죽은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데....

춘연에게 옻독을 옮겨, 춘연을 덮치려 한 서문경이 혼비백산하게 만든다는 반금련의 계획이 등장합니다. 이병아 초상화에 장난을 쳐서, 이병아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는 목적으로요. 

죽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독특했는데, 방법이 잔혹하고 유치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자신이 죽인 남자의 여동생마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1점입니다.


"아름다운 눈동자"

새로 들인 여섯째 부인 유여화는 눈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유여화가 반금련과 서문경이 사랑을 나누는걸 엿보다 시력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거울을 이용한 트릭이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거울을 강조하고 있는 전개 탓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유여화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이미 서문경은 흥미를 잃었다는데 그런 여자를 해할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질투심이라면, 왜 자기보다 먼저 처첩이 된 이전 부인들은 죽이지 않고 가만 두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낙인 찍힌 미녀들"

새 부인 빙금보가 진주를 훔쳤다는게 밝혀져 쫓겨났다. 대식국에서 온 조오라 공주는 등에 십자가 낙인이 찍혀, 기독교를 포교하고 다니는 신하 알 무타츠와 함께 돌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사건과 트릭이 등장합니다. 빙금보가 깜깜한 곳에서 진주를 훔친 방법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게 전부라 시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에 달군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주 등에 낙인을 찍은 트릭은 새로왔습니다. 화상이 아니라 얼음을 이용해 만든 동상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이를 풀어내기 위해 공주가 흠뻑 젖었다는 상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대식국 출신 승려가 기독교를 포교한다는 독특한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편을 섞은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동상을 입을 정도로 얼음 위에 오래 정자세로 누워있는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마지막에 급작스러운 돌풍이 승려와 공주를 데리고 갔고, 반금련의 몸에 십자가 상처를 남겼다는 결말도 억지스럽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젖가슴"

반금련은 서문경이 눈을 가린 채 시력을 잃은 유여화의 몸을 탐닉하는걸 목격했다. 그 뒤, 반금련은 유여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서문경이 새 첩 갈취병에게 푹 빠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눈을 멀게한게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챈 유여화는 복수에 나섰지만, 오히려 죽은건 갈취병이었다. 왜 갈취병이 반금련이 방에서 자고 있었고, 왜 그녀의 시체가 유여화 방에 나타났을까?

유여화가 실명했다는걸 이용해서 위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인데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손가락 촉감에 자신있다는 서문경을 비웃듯, 반금련이 갈취병인 척 했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도 뻔한건 마찬가지였고요. 이젠 지겹기까지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얼어붙은 환희불"

서문경이 자기 탓에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본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반금련은 서문경과 함께 퇴마를 위해 태산에서 수행 중인 수도승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송이 이끄는 양산박 무리와 마주쳤다. 무송은 서문경과 반금련을 쫓아온 것이었다. 반금련의 활약으로 둘은 목숨을 건지지만, 여자로 변장한 낭자 연청의 화살에 죽을뻔한 서문경은 그 뒤부터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당당한 반금련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반금련은 모야차가 인정할 기개를 보여 목숨을 건지거든요. 이 부분은 수호지 설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수호지는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네요. 여자에 흥미를 잃은 서문경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낭자 연청을 가장하여 죽게 만들었다? 이젠 정말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1점.


"여인 대마왕"

서문경의 장례식, 반금련은 불륜을 저지르던 첩 향초운과 상대남 유포를 잡아 죽이자고 제안했다. 이 기회에 유산을 노리는 버러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륜남녀와 함께 서문경 사체가 목이 베인채 발견되는데...

불륜남녀와 서문경 사체의 목을 자른 이유가 기발했습니다. 반금련이 자기 혼자 서문경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꾸민 짓이었거든요. 처음 무덤으로 향한 서문경의 상여 속 사체는 서문경 머리와 유포의 몸이 붙어 있었습니다. 반금련은 무덤에서 나중에 서문경의 머리만 빼 온 뒤, 특별한 장례도 없이 매장된 유포의 몸으로 위장한 무덤에 합쳤고요. 

반금련이 서문경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중국 전통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등,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평작은 됩니다. 다만, 반금련의 서문경에 대한 '사랑'이 당쵀 납득이 되지 않는게 문제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연화왕생"

무송이 나타나 모야차와 함께 반금련의 몸종 춘매를 협박했다. 수비부 책임자 주수와 결혼한다는 반금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반금련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송의 복수를 끊어버릴 계책을 짜냈다.

반금련의 죽음, 그리고 무송이 결국 반금련에게 반하고 만다는 최악의 설정이 등장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네요. 별점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반금련"

방춘매는 주수비의 아내가 된 후, 주수비가 청하현 모든 남자를 양산박 토벌 작전에 징집하도록 만들었다. 모든건 반금련을 음탕하다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춘매의 계획대로 남자가 없는 귀부인들은 음탕한 축제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수비가 토벌 작전에서 죽은 뒤, 거란군은 남자가 없는 청하현을 덮쳤다. 그러나 응백작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시체로 무송 일행을 꿰어내어 청하현을 구했다.

줄거리만 보아도 황당하기 그지 없지요? 춘매가 금련에게 이렇게까지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귀부인들이 남자가 없다고 삽시간에 음탕한 축제에 빠져든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사체를 보고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 여긴 무송과 양산박 일행이 거란군을 물리친다는 마지막 장면은 제가 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네요. 역시나 별점은 없습니다. 아니, 별점을 준다면 마이너스에요.


"인어등롱"

앞서의 "낙인찍힌 미녀들"을 일부 수정한 이야기. 진주를 훔치는 트릭은 동일한데, 범인만 갈취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진주를 훔친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잔혹한 서문경이 갈취병 뱃속의 진주를 낚시로 꺼내려다 그만 낚시바늘이 취병의 위에 박히는데, 반금련은 갈취병에게 염주를 먹게 하여 그 무게로 바늘을 빼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또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금련이 갈취병의 아름다운 치아를 부수기 위해 꾸민 계획이라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새로운 처첩을 이 정도 계책으로 쫓아내고,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정도가 확실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새로 들어온 처첩이 계속 죽어나간다는건 말도 안되잖아요?

제 기준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빼어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2/16

61시간 - 리 차일드 / 박슬라 : 별점 2점

61시간 - 4점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버스 사고로 사우스다코타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무르게 된 잭 리처에게 마을 경찰 부서장 피터슨이 도움을 요청했다. 마약 거래 사건의 증인 재닛 솔터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잭은 군대 내 후임에게 전화하여 마약 거래를 하는 폭주족들이 머무는 옛 군사 시설의 용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한편, 노부인 재닛의 경호를 맡아 분투하였다. 그러나 결국 피터슨과 재닛 모두 살해된 뒤에서야 리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범인은 경찰서장 홀랜드였다.
리처는 홀랜드를 처단한 뒤, 사건의 흑막인 사악한 마약상 플라토마저 없애기 위해 옛 군사 시설에서 한 판 승부를 준비하는데.....


전직 엘리트 군인인 거한 잭 리처가 활약하는 리 차일드의 베스트셀러인 잭 리처 시리즈 14번째 작품.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입니다. 이번 설 연휴는 '잭 리처 week'로 정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있던 군사 시설에 2차 대전 때 지급되었던 환각제가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시설의 원래 정체는 핵전쟁 이후 생존한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이었으며, 육군 시설이 아니라 공군 시설이라서 잘 닦인 활주로가 함께 있었다는 등의 스케일 크면서도 대담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잭 리처가 제대로 된 추리를 선보이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후임인 110 부대장 아만다를 도와 후드 기지에서 탈주한 대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뉴스를 방송하는 곳, 그러면서도 경찰을 피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특정한 뒤 버스 터미널 옆 모텔에 머물고 있을거라고 추리하지요. 과장되기는 했어도 그럴듯했습니다.
피터슨 부서장을 살해한건 경찰이라는걸 곧바로 알아채고, 제닛 솔터마저 살해당한 뒤 범인이 홀랜드 서장임을 깨닫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 사이렌이 울렸을 때 재닛 솔터의 집에 처음 나타난게 서장이었다는 등 서장이 앞서 범했던 실수들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사실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은 홀랜드 서장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성은 없었지만요(범죄행위에 가담했던 인상을 준 마이애미 출신 경찰은 떡밥치고는 너무 노골적이었어요).

이런 추리와 함께 곁들여지는 살을 에일듯한 사우스다코타 주의 겨울 묘사도 대단했습니다. 재닛 솔터의 사체를 목격한 잭 리처의 얼굴 피부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묘사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얼마나 추워야 공기중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이 얼굴에 수천개의 상처를 내는게 가능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네요. 잭 리처가 '무숙자(無宿者)'임을 잘 드러내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마을에서 사건에 휘말린다는 도입부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제닛은 플라토의 부하가 마약을 거래하는걸 목격했다는 증언을 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폭주족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플라토는 제닛을 살해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제닛을 살해하면 상황이 바뀔까요? 마약 거래보다 살인이 훨씬 중죄이고, 심지어 증인에 대한 계획 청부 살인은 차원이 다른 범죄에요. 게다가 경찰 부서장 피터슨마저 살해했으니 이 정도면 지방 정부 중심의 단순 조사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할 상황이에요. 이보다는 차라리 수감된 폭주족을 자살하라고 시키는게 더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라토가 어차피 러시아인을 물먹일 생각이었다면, 제닛을 살해했다면서 말로 대충 떼우고 일을 진행했어도 됐습니다. 러시아인이 손에 넣은 마약 창고가 텅 비었다는걸 알게 되는게, 약속했던 목격 증인을 실제로는 살해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되는것보다 더 정도가 약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어차피 신뢰를 잃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계획을 진행할 이유는 없어요.
전개 내내 언급되는 61시간이라는 시간 제한도 솔직히 왜 독자에게 알려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자가 시간 제한 때문에 긴장을 느낄만한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플라토가 일방적으로 정한 시간이 흘러갈 뿐인 전개이고, 잭 리처가 시간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눈이 오지 않는 찰나에만 활주로에 플라토의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날씨는 미리 예측할 수 없고요. 그런데 어떻게 시간 제한을 사전에 정해 전개한단 말입니까? 이건 완전 넌센스입니다.

잔혹한 난장이 악당 두목 플라토도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글쎄요, 아무리봐도 잭 리처의 상대로 보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마약이 보관된 지하 벙커(?)의 높이가 낮아서 키가 작은 플라토가 조금 유리했다는 건 있지만, 애초에 가진 역량과 피지컬 차이를 뒤집을 수 있어 보이지 않았거든요. 플라토가 마약과 귀중품을 직접 수습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이 와중에 배신자들이 나타나 그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인기있는 헐리우드 영화 클리셰는 다 가져다 붙인 느낌만 들더군요. 플라토의 최후도 시시하기 짝이 없고요.

마지막에 플라토를 죽인 잭 리처가 어떻게 벙커에서 탈출해서 남은 잔당과 장비를 박살내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영 별로였어요. "탑건 매버릭"에서 훈련만 줄창하다가, 진짜 작전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고 매버릭 부하 시점에서 '성공했다'고 언급하고 끝내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날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무난하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소설에 대해 안내하고 소개해주는 일본 사이트 '소설마루' 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가볍게 소개해 드립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09/17

전래 미스터리 - 홍정기 : 별점 1점

전래 미스터리 - 2점
홍정기 지음/몽실북스

DC인사이드의 추리소설 갤러리에서 괜찮은 한국 추리 소설이라고 누군가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된 작품.

결론부터 말하면, 대실망이었습니다. 완성도가 지나치게 낮은 탓입니다. 전개와 묘사 모두 수준 이하에요. 전래 동화가 바탕이 된 이야기에서 '변태 스토커', '알리바이', '스위치' 라는 말이 나온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고증은 둘째치고서라도 문체, 묘사라도 고전처럼 가져갔어야 했습니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가 쓸데없이 많은 것도 불쾌했으며,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도 거의 없어요. 
고전을 모티브로 잔혹함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한 때 유행했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시리즈를 떠오르게 하지만 그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의 괴담물인 <<삼개주막 기담회>>와 비교해도 그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고요. <<삼개주막 기담회>>는 이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에 비하면 노벨문학상 감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아마츄어가 어딘가 커뮤니티에 올렸던 반 장난스러운 글이 출판된 걸로 보여지는데, 결과물 수준에 대해서는 출판 담당자의 책임도 커 보입니다. 최소한 어느정도 완성된 글로는 보이게끔 방향을 알려줬어야 했어요. 뭐 지금 말해봤자 별 의미는 없겠지만요. 앞으로 이 작가, 이 출판사 책을 두 번 다시 읽어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쥐 살인사건>>
콩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팥쥐가 원님과 결혼하기 위해 발목을 스스로 자른다던가, 원님의 칼에 언년이 머리가 토막난다단가, 마지막에 팥쥐 목이 배달(?)되어 오는 등 쓸데없이 잔인한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로입니다. 급작스럽게 언년이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팥쥐가 도깨비 감투를 쓰고 방을 몰래 빠져나갔다는 트릭, 또 하나는 쥐가 언년이의 손톱을 먹은 뒤 언년이로 변신했다는 트릭이지요. 그러나 도깨비 감투 트릭은 창문이 작아서 어차피 성립할 수 없었고, 쥐가 언년이를 대신한 알리바이 트릭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쥐를 변신시킨게 아니라, 마침 쥐가 변신한걸 보고 즉흥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말이 안됩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니까요.
단서 제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콩쥐가 죽은 어머니로부터 기이한 보물을 물려받았고, 그 덕분에 계모가 시킨 말도 안되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정도만 앞에서 설명될 뿐입니다. 이런걸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는건 말도 안됩니다.

고전 설화 속 설정을 트릭으로 써먹는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물은 아쉽기만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나무꾼의 대위기>>
사슴과 사냥꾼이 짜고 선녀 날개옷을 훔치도록 유도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극적인 반전도 생기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일단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관음증 환자일 수 있다는 설정은 워낙에 흔해서 새로울게 없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신령이 갑자기 나오고, 탐정역으로 토끼가 나오는 등의 뜬금없는 전개는 황당했고요. 탐정역인 토끼는 이 모든게 나무꾼을 범인으로 몰기 위한 산신령까지 포함된 음모의 결과라는데, 그 때문에 산신령이 범인 선녀, 나무꾼, 사슴을 참살하는 결말도 영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옥황상제 앞에서의 공식 재판도 아니었으니, 그냥 나무꾼을 죽이고 거짓말로 고해 바치면 되는게 아니었을까요? 이런 연극을 꾸밀 이유가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굶주린 사냥꾼이 토끼를 잡아먹는다는 결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고팠다면 애초에 사슴을 죽여서 잡아먹었어야 하잖아요?

추리적으로도 엉망입니다. 범인 선녀가 물 속에서 죽은 선녀 다리를 끌고 움직이는 척 해서 옮긴 뒤, 온천의 뜨거운 열로 시체가 사후 강직이 풀리는걸 이용하여 스스로 주저 앉는것처럼 꾸몄다는 트릭인데, 만화에서도 써먹기 힘들겁니다. 뜨거운 물 속에 숨느라 갈대를 입에 물었다는 디테일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요. 애초에 사슴이 말하고, 선녀가 날아다니는 세계관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트릭을 쓴다는게 설득력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해와 달>>
떡장수 아주머니가 식인범에게 사로잡혀 산채로 먹히는 장면은 잘 그려냈습니다. 식인범의 설정도 꽤 탄탄하고 무서웠고요. 마츠모토 세이초의 <<전골을 먹는 여자>>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그만큼 설득력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식인범이 어미의 머릿가죽을 뒤집어쓰고  찾아와 딸을 속이려 하는 장면, 그 뒤 정체가 탄로난 식인범이 딸과 사투를 벌이는 부분도 괜찮았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크리처물인 <<사냥감>>이 떠오르는 박진감넘치는 묘사와 전개가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러나 해와 달이 쌍둥이고, 해는 타고난 살인마였다는 진상은 영 아니었습니다. 시간대별로 풀어가는 전개도 불필요했고요. 착한 남매가 기지를 발휘하여 식인범을 없애는 식으로 - 썩은 동아줄을 활용한다면 더 좋고 -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연쇄 도살마>>
보름이 될 때마다 집의 가축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큰 아들 일남은 막내 미호가 가축의 생간을 뽑아먹었다고 하는데...

여우가 가축의 생간을 뽑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추리적으로 풀어낸 이야기. 
알고보니 일남이 진범이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문제 투성이입니다. 우선, 가축들을 차례로 죽이고, 나중에 부모 형제까지 죽였다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한 번에 다 죽이면 되잖아요? 뭐하러 땅을 파고 몸을 숨겨가면서까지 범행을 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미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이유도 없어요.
미호의 짓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미호의 신발을 신고 발자욱을 남긴건 괜찮았지만, 미호 시체를 소의 항문을 통해 쑤셔 넣어 은폐했다는건 어이를 상실케 합니다. 
추리물 흉내를 조금 내기는 했지만 설득력 떨어지는 전개로 일관하는 졸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스위치>>
나는 백정의 아들로 파란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눈을 누군가 나뭇조각을 댓가로 가져갔다. 나는 나뭇조각이 타인의 신체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그 능력이 마을 주민들을 기괴한 모습으로 죽게 만든 연쇄 살인극의 진상이었다.

스위치라는 표현을 천연덕스럽게 쓴다는 것부터 황당했던 이야기. '혹부리 영감'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신체 전환(?) 설정은 그래도 볼 만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죽기 전에 뇌를 바꿨는데, 갓난 아이가 되어서 실패했다는 황당한 결말로 점수를 다 깎아먹습니다. 한 10살 정도 되는 아이하고 뇌를 바꿨으면 될 것을 왜 갓난아이랑 바꿨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당연한걸 모를리 없을 정도로 능력을 계속 써 왔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초반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연쇄 살인극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간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3/01/06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3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2.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3 - 6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안녕하세요. 2023년 들어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1권2권에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지능범죄편이라는 부제 그대로 다양한 사기 범죄가 주제로 피해자들이 왜 속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순하고 뻔한 사기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담한 발상의 사기극도 등장합니다. 유명하고 잘 알려진 사건도 있지만, 잘 몰랐던 사건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범행에 대한 치밀한 수사로 범인을 잡아나가는, 수사물로서의 드라마가 느껴지던 1, 2권에 비하면 아무래도 그런 요소는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속아넘어갈만한 정교한 사기극은 거의 없고, 왜 속아넘어가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뻔하고 단순한 사기극이 많다는 점도 실망스러웠어요. 이게 현실이겠지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 몇 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행복팀 사건>>
심리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농아들을 속여 가스라이팅한 뒤,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군림하며 등쳐먹은 일종의 사이비 종교 사기극. 사이비 종교가 범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아울러 범인들 때문에 자살 등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량이 낮다는건 큰 문제로 보입니다. 이런 놈들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모쪼록 자살과 가장 붕괴의 원인이 된 사기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은 살인죄 이상으로 판결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대구 금호강 보험금 살인 사건>>
이 사건은 제가 봤던 <<그것이 알고싶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였습니다. 범인의 억울하다는 투서에서부터 시작해서, 범인 가족이 억울하다며 울면서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알고보니 그놈이 진범이 맞아서 황당했었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살던 15년 친구를 보험금때문에 살해하는 인간 말종이니 애초에 양심은 없겠지만, 아직도 무죄를 주장한다는데 입맛이 쓰더군요.
그나저나 생소했던 '법보행'이 결정적 증거였다는 것도 기억에 남은 요인으로 대체 얼마나 걸음이 특이하길래 주위 친구들이 모조리 알아볼까 싶은데, 걷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고 싶네요.

<<로맨스스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범죄이지요. 책에서 범죄 흐름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주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범죄 방지를 하자는 차원에서 짤막하게 소개해드립니다.
1. 채팅 앱에서 자신을 여군 간호장교라고 소개한 아만다 앰버는 그 후 메일을 통해 연애를 하자고 접근해온다.
2. 앰버는 자신의 신분증이나 군부대에서 찍은 사진을 종종 보내옴으로써 자신을 믿게 만든다.
3. 메일에서 '자기' '남편' 등 애칭으로 A씨를 부르며 전역한 뒤 한국에서 결혼하자고 구애한다. 어느 날 시리아 내전 지역에 파병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전 중 사망할 때를 대비해 상속자 이름을 적었는데 '미래의 남편인 당신의 이름을 적어냈다”고 한다.
4. 앰버는 “작전 지역으로 급히 이동해야 하는데 돈을 찾을 적당한 곳이 없다"며 경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10만~100만 원을 요구한다.
5. 앰버는 시리아에서 수색 작전을 하다 동굴에서 숨겨둔 무기와 함께 달러 뭉치를 발견했다며, 자기 몫인 500만 달러를 일단 런던 보안업체의 개인 금고로 빼돌리고 그것을 다시 주한미군 기지로 옮기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액의 비용을 요구한다. A씨는 통관비와 항공수송비를 모아 앰버에게 보낸다.
6. A씨는 달러가 든 가방이 서울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1만 달러를 건넨 뒤에야 가방을 넘겨받는다. 가방에 든 금고에서 검은색 종이만 가득 나온다.


<<인천 공인중개사 전세 사기 사건>>
이중 전세 계약 사기입니다. 집주인에게서 월세 계약을 위임받은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에게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속여 전세 계약을 하고, 그 돈으로 주인에게 월세를 지급한 사건입니다. 등기부등본에서 근저당권 설정 항목을 삭제한 뒤, 근저당권 없는 매물이라고 속여 계약하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보증금 뻥튀기 등 다양한 사기 행각이 이어졌습니다.
아울러 '전세 사기'를 피하는 방법으로
① 집주인을 만나 신분증, 주소지, 생년월일 확인
② 전세 대금은 주인 명의의 계좌에 직접 입금
③ 등기부등본은 앱 등으로 직접 뽑아 확인

하라고 알려주는데, 아쉽게도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저도 전세 계약을 몇 번 해 보았지만 본인 확인부터가 쉽지 않거든요. 실제 있었던 범행들처럼 대역을 내세우면 알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으니까요. 부동산 계약은 거액이 오가는 만큼 보다 명확한 본인 인증 거래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되는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기 행각보다 더 큰 문제는 47명 전세자금을 떼먹었는데 고작 선고받은게 7년 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사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죠.

<<온라인 암표>>
요새 꽤나 많이 회자되는, 온라인에서 암표를 팔기 위해 매크로를 이용해 표를 구입하는 방식이 소개됩니다. 특정 프로그램을 돌리는건데 캡챠까지 자동 해제하는 기능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각 예매처가 사용하는 캡차 문자와 이미지 꾸러미를 미리 매크로 프로그램에 입력해놨다가, 특정 문자나 이미지가 뜨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꾸러미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 보안 절차를 해제하도록 하는 단순한 DB처리 방식인데, 캡챠가 이렇게 쉽게 뚫리는건지 몰랐네요.

<<검사 사칭 대출 사기>>
유부남 사기범이 검사를 사칭해서 거액을 빌리고 결혼 약속까지 하는 식의 뻔한 사기라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자기가 거액을 빌려주고, 결혼할 사람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요. 전화 한 통화면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하지만 "공무원 사칭 사기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기다. 이런 사기가 여전히 통한다는 건 그만큼 한국 사화가 투명하지 않다고 보는 국민이 많다는 증거다."라는 마지막 마무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PC방 패보기 도박 사기>
대담한 발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들은 당시 우리나라 PC방 컴퓨터의 66퍼센트 정도에 악성코드를 설치해서 사기 도박을 벌였는데요, 그 방법은 범인들이 5억원에 PC방 관리 프로그램 업체를 인수했던 것입니다! 범인 중 한 명이 개발자 출신으로 게임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IT계통에 정통했던 덕분이겠지만, 밝혀진 것만 40억원 정도를 패보기 도박으로 벌어들였다니 꽤나 남는 장사였던 셈이네요.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2020/03/27

잠자는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김윤정 : 별점 2.5점

잠자는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국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영국으로 온 그웬더는 남편 자일스가 오기 전, 보금자리로 힐사이드 저택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 대해 알아갈 수록, 자신이 그 집에 대해 이미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웬더는 남편이 없는 동안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남편의 사촌인 유명 소설가 레이먼드 웨스트 부부를 찾았다가 미스 마플을 만났다. 그리고 유령에 대한 연극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미스 마플에게 급작스럽게 떠오른 자신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전 힐사이드에서 헬렌의 시체를 보았던 기억이었다.

미스 마플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인터넷 도서관에서 e-book으로 대여해 읽었죠.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에서의 별점은 3.5점입니다. "공략"에서 이야기하듯, 미스 마플의 존재감이 상당히 희미하다는게 특징입니다. 실제로 사건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건 그웬다와 자일스 부부거든요. 그웬다가 떠올린 과거의 기억에 대한 진상을 둘이 함께 파헤친다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미스 마플의 비중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재미있고 쑥쑥 읽힙니다. 특히 초반부, 그웬다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 묘사가 왠만한 호러물 저리가라 할 정도인 덕분입니다. 그래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겨자색 침실 벽을 '새빨갛고 작은 개양귀비꽃과 수레국화가 번갈아 피어 있는 무늬의 벽지'로 바꾸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뒤, 침실에 있는 오랫동안 열지 않은 붙박이 장을 열고 난 뒤의 묘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붙박이장 안 쪽만 겨자색으로 덧칠이 되지 않고 '새빨갛고 작은 개양귀비꽃과 수레국화가 번갈아 피어 있는 무늬의 벽지' 상태로 남아있었거든요. 아, 이건 정말 영상으로 봤다면 아주 기가 막혔을거 같아요.

미스 마플도 비중에 비하면 활약은 확실해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명탐정으로서의 역할부터 제대로에요.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추리는 물론, 세세한 추리들 모두 돋보입니다. 그웬더가 기억하는, 선장이 2명이었다는 말을 통해 두 번의 긴 항해가 있었다고 추리하고, 난간 위가 아니라 난간 사이로 홀을 내려다 보았다는 말을 통해 그녀가 어린아이였을 때의 기억이라고 추리하는 식인데 모두 합리적이에요.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웬더를 죽이려는 케네디 박사를 층계참으로 뛰어 올라와 비눗물을 뿌려서 퇴치한다는 액션까지 선보입니다. 할머니 특유의 친화력과 풍부한 휴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추리물로서도 꽤 볼만한 편입니다. 대단치는 않아도 설득력 넘치는 트릭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헬렌의 메모가 진짜인지 필적 감정을 할 때, 케네디 박사가 제공한 편지와 필적 견본 모두 본인이 써서 제공한다는게 첫 번째 트릭입니다. 덕분에 메모는 진짜인걸로 일단 판명나죠. 간단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트릭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듭니다.
릴리가 왜 케네디 박사가 알려준 열차가 아니라 한 시간 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서, 케네디 박사가 알려준 역 전의 역에서 내렸는지에 사용된 두 번째 트릭도 괜찮습니다. 진상은 박사가 살인을 저지른 뒤, 원래 주었던 편지를 없애고 수정된 시간과 장소가 적힌 편지를 남겨놓았을 뿐입니다. 덕분에 경찰은 이 상황을 릴리가 박사를 만나기 전, 누군가를 협박하러 갔다고 오판합니다. 그럴듯하죠?
헬렌이 옷을 가져갔지만, 드레스는 가져갔지만 드레스와 셋트인 벨트와 슬립은 두고 가는 등 조합이 안 맞는다는걸 드러내는, 여성 특유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장면도 좋습니다. 미스 마플의 추리는 아니고 하녀 릴리가 알아낸 것이지만요.

아울러 살인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충고도 돋보였어요.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라면, 지역 토박이인 정원사 등이 몰랐을리 없다. 즉, 모두에게 숨긴 완전범죄였기 때문에, 지금 그 사건을 파헤치는건 현명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크리스티 여사의 또다른 작품인 "누명"이 연상되는 충고죠. 모두가 잊기를 원하고 잊혀졌다면, 그대로 놔 두는게 맞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잠자는 살인이라는 멋드러진 제목은 이 충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래전 살인 사건인데, 아무도 모르고 있는 잠자는 살인으로, 자게 내버려 두는게 낫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 이야기와 별 상관은 없지만 딜머스에 가기 위해 주치의 닥터 헤이독에게 바닷가 휴양을 조언해 달라고 우길 때의 티격태격도 재미있었습니다. 미스 마플이 과거의 살인을 파헤치러 가기 위해 "딜머스에서 2, 3주일 지내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겠죠?"라고 물어보자 "당신의 임종이 가까워 올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인데, 닥터 헤이독이 이렇게 기지가 넘치고 위트있는 인물인지는 몰랐네요.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읽기에는 쉽다는 문제가 좀 큽니다. 부부가 미스 마플의 충고를 무시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새어머니 헬렌의 오빠 케네디 박사를 만나는 초반부에서 모든 진상이 드러나는 탓입니다.
케네디 박사는 새어머니 헬렌은 다른 남자와 도주했으며, 아버지 핼러데이는 급격히 건강이 좋지 않아져서 요양소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독자들은, 이런 증언은 피해자는 새어머니이며, 켈빈 핼리데이 소령이 아내를 살해한 뒤 시체를 처리하고 도망갔다고 오해하기 만들기 위함이라는걸 금방 눈치챌 겁니다. 그래서 소령이 범인이 아니라면, 소령이 케네디 박사에게 찾아가 살인을 고백하고 함께 돌아왔을 때 시체는 어디갔을까요? 또 헬렌이 다른 남자와 떠났다고 믿게끔 짐을 챙기고 그에 대한 메모를 남긴건 누구일까요? 그리고 헬렌이 살아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 몇 개월 뒤 전해졌다는 편지는 누가 보냈을까요? 이 조작을 한 인물은 동일 인물일겁니다. 자일스의 말처럼 핼리데이가 범행을 저질렀지만 은폐할 속셈이었다면, 케네디 박사를 찾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핼리데이는 살인을 했을지언정, 은폐 시도와 관련된 조작을 하지는 않았다는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케네디 박사일 수 밖에 없죠. 현장에 있었고, 현장 조작 및 시체 은닉, 핼리데이의 증언 위조 등이 가능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동기는 이 단계에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여동생에 대한 집착 같은 이유였겠지요. 헬렌이 남자와 떠난다는 메모는 나중에라도 준비할 수 있으니, 시체를 어떻게 없앴는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이건 아마 변경된 집의 구조와 관련이 있는게 뻔하며, 결국 기묘한 정원 계단을 파헤치면서 사실로 밝혀집니다.

이렇게 초반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진상은 모두 추리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케네디 박사 등장 이후에는 부부가 헬렌과 관련되었던 3명의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혐의를 씌우는 쪽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초반에 던져준 정보가 너무 확실하며, 이 세 명 중에서도 살인을 실제로 저지를만한 인물은 월터 페인밖에 없어서 눈길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어스킨 소령이 헬렌과 사랑에 빠졌다 한들 그는 유부남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재키 애플릭은 사랑을 훼방놓은 케네디 박사와 월터 페인을 살해하면 모를까, 헬렌을 살해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또 지역 내 명사인 의사와 변호사 월터 페인은 그렇다쳐도, 어스킨 소령과 재키 애플릭, 어스킨 소령 부인은 밤에 무덤을 파는게 레어니에게 발각되었다면 빠져나기가 쉽지 않았을거에요. 심지어 재키는 식사에 초대도 받지 못할 정도의 불청객이었죠.
이렇게 범인 후보를 늘리기 위해 월터 페인을 거미에 비유하고, 그가 어린 시절 장난감을 망가트린 형을 거의 죽일 뻔 했다는 등의 묘사를 덧붙인다던가, 어스킨 소령 부인의 극렬한 질투심을 표현하는 등으로 수상쩍게 만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억지스러운 묘사는 오히려 범인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만들더군요. 제가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긴 많이 읽었나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의자를 늘리는 전개 탓에 일관성도 좀 없어요. 예를 들면, 미스 마플은 한 사람의 증언만 들으면 안되고,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야 한다는데 그 말에 따르면 헬렌은 문란한게 맞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문란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마지막에 그녀는 그냥 호기심 많은 처녀였을 뿐이라고 얼버무리는건 여러모로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시대를 초월할만큼 좋은 작품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발표된지 80여년 정도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미스 마플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사님의 다른 걸작들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여사님이 직접 뽑은 본인 작품 베스트 10이 더 좋은 선택일거에요.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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