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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6

디오게네스 변주곡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5점

디오게네스 변주곡 - 8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중화권 추리 소설의 대표작가 찬호께이의 단편집입니다. 본격적인 작가 데뷰 초창기에서부터 최근작까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했던 결과물을 모아 놓았는데 본격 추리는 물론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어서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책 뒤에 실려있는 작가의 작품별 후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썼는지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습작 1,2,3"가 쓰여진 방법이 아주 대박이었습니다. 임의로 키워드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가서 다섯 개의 단어를 얻은 뒤, 그 키워드를 순서대로 연결해서 아주 짤막한 엽편 소설을 쓴 결과물이라고 하거든요. 읽을 때는 이런걸 뭐하러 실어 놓았나? 싶었는데, 쓰여진 방법을 알고나니 달라 보이더라고요. 특히 "습작 1"이 놀라와요. 이런 키워드로 어떻게든 말이 되는, 그것도 반전까지 있음직한 엽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과연 잘 나가는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은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어지네요.

전체적으로 작품들 수준이 고르지는 않지만, 장르문학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범인, 진상 등을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란유웨이는 겉보기에는 유능하고, 사회성 좋은 청년이지만, '삼람소옥'이라는 블로그를 엿보며, 다크 웹에 접속하는 은밀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삼람소옥'의 운영자 샤오란의 가족 관계, 거주지, 체형, 취미 등 모든걸 알아낸 그는, 결국 샤오란의 집에 침입하여 여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초기작으로 제 7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 결선작입니다. 고작 사흘 걸려서 썼다는데, 그렇게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란유웨이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시작부터 상세하게 설명되는 도서 추리물로도 뛰어나지만, 란유웨이가 살해한게 샤오란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린치칭이라는 반전의 서술 트릭물이라는 복잡한 구성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린치칭이 샤오란을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위장해서 죽였다는 설정인데, 이러한 반전이 다크 웹에서의 회원들 사이 의견 교환, 삼람소옥의 글 들을 통해 교묘하게 등장해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삼람소옥 글만으로 사용자를 추리해내고, 감시하는 과정은 "망내인"을 연상케하는 점도 작가의 팬이라면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고요.

린치칭이 연쇄 살인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등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금융 위기로 전재산을 잃은 테일러는 가족을 떠나 노숙자가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른 노숙자 샘을 만나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이브날, 산타의 집에 산타클로스를 살해하겠다는 살인 예고 편지가 날아온 뒤 산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추리물로 제 역할을 다 합니다. 존의 짤막한 이야기의 몇몇 디테일을 통해 펼치는 테일러의 추리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그는 썰매 위에 흰 수염이 흩어져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피아노줄로 목을 잘리게 만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러나 죽은 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타클로스가 대역이 살해당한 걸로 꾸미고 숨었다는 진상을 밝혀냅니다. 존이 산타클로스였고, 일련의 이야기는 테일러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길이를 조금 더 줄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정도도 아주 좋았던,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소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왜 무대가 미국 뉴욕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 후기를 보니 '존'이라는 이름을 '존 도'에서 따 왔다는 복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정수리" 

아홍은 어느날부터 사람들 정수리 위에 떠 있는 '그것'을 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머리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모두가 똑같은걸 보지만 못 본채 해 왔던 것이었다! 지친 아홍이 결국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하자 아홍의 머리 위 천 뭉치가 열리고 도마뱀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2018년에 발표된 비교적 최신작입니다. 한 매체로부터 '귀신'이라는 주제로 단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합니다. 쓰여진 이유답게 판타지 일상계 호러물로 볼 수 있습니다. "환상특급"에 나오면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획일화되고,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관련된 언급은 없네요.

그러나 흥미로왔던 도입부를 지나 뒤로 갈 수록 재미를 찾기는 힘듭니다. '왜'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탓입니다. 결국 머리 위 이상한 물체들에 대한 묘사 외에는 건질게 없었어요. 작가 후기를 보니 의도적으로 논리나 추리 요소보다는 황당무계한 현실이 주는 스릴에 집중했다는데, 이래서야 고어 포르노와 크게 다를바 없는 셈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간이 곧 금" 

리원은 시간 거래 센터를 방문하여 자기 시간을 팔게 되었다. 고통을 잊고, 돈과 성공을 빠르게 누리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으로 이 역시 "환상특급"이 떠오르는 단편입니다. 

제일 재미있던건 시간 거래에 대한 설정입니다. 시간을 팔면, 해당 시간이 곧바로 지나가고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남지만 현실감은 사라집니다. 시간을 사면 시간이 길어졌다고 느끼게 되고요. 돈 벌이, 그리고 힘든 기억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적극적으로 판 리원, 그리고 필요한 시간을 조금씩 사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연적 아리의 대비가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아리가 시간을 샀다는걸 마지막에 반전처럼 등장시켜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아리의 말대로 인생에 고통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극단적으로 팔거나 살 필요는 없고, 적당히 사고 팔면서 인생을 사는게 합리적일테니까요. 예를 들어, 군대에 가게되면 이 시간은 당연히 파는게 낫잖아요? 좋은 설정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유명 편집장이 작품을 가져온 신인 작가에게 사람을 죽여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신인 작가는 등단을 위해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을 죽일 결심을 했다. 그녀가 추리 소설, 특히 밀실 살인을 비난했기 때문에, 완벽한 밀실 트릭을 만들어 살해하는데... 

초반의 편집자의 주장은 아주 와 닿았습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고민해야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거라는 취지는 공감하거든요. 주인공 신인 작가의 범행도 그래서 설득력있었습니다. 신인 작가라면 혹할만한 주장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밀실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지만 창이 있었는데, 이 창을 통해서 끈만 집어넣어 피해자를 교살했다는 트릭이 특히 좋아요. 피해자가 직접 목을 집어 넣어야 하기에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피해자가 참가했던 연극 연습을 위해 스스로 밧줄 안에 목을 집어 넣었다는걸 꽤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학 수사를 통해 경찰이 진상을 밝힌다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이런 밀실 트릭이 21세기에 먹힌다는건 사실 말도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모든걸 뒤집는 반전이 놀랍습니다. 편집장은 가짜였고, 유명 작가가 신인 작가를 부추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후, 진상을 듣고 자기가 사건을 해결한 것 처럼 꾸며 경찰에 제보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반전이 너무 많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수작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필요한 침묵" 

지옥의 수용소에 처 넣어진지 10년만에, '나'는 친구 라오왕이 죽은 뒤 과거에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킬러였다는 짤막한 꽁트.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설명도 너무 부족하고요. 작가 후기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품 내용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화 "언디스퓨디드" 시리즈처럼 화끈하게 풀어내는게 더 재미있었을겁니다. 별점을 따로 줄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가라 행성 제 9호 사건" 

가라 행성에서 아홉번째 (제 9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전의 사고들을 일으켰던 316형 중력 붕괴 엔진의 문제를 해결한 신형 317형 엔진을 탑재한 카로카호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그러나 3명의 승무원은 상륙정으로 가라 행성에 상륙했다가,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사고 당시, 장거리 통신 시스템만 분해되어 상륙정에 실려 있었다. 

사건 조사 중 승무원이 최후를 맞는 동영상에서,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을 위해 통제와 소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파의 거두 모모코 사령관이 범인임을 암시하는 파우스타 함장의 발언이 녹화되어 있다는게 밝혀지자, 조사 위원회는 탐정 두핀핀을 불렀다. 맥켄넨 총독은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SF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단순하지 않고, 반전과 함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우선 함장의 발언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승무원들을 매수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추리가 먼저 선보입니다. 모든 주민 행동을 녹화하는 시스템 '눈'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통신병을 만났다는게 증거고요.

그러나 사건은 맥켄넨 총독이 일으켰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는 선체 엔진이 316형 엔진인 것 처럼 조작했던 겁니다. 함장은 폭발할까봐 카로카호를 버리고 탈출했고요.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상륙 후 본성과의 통신을 위해 떼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사고로 승무원들 모두가 사망했고, 총독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 두핀핀 탐정을 불러 이 모든걸 밝히끔 유도했다고 설명됩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오로지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만 경주하는 발전파도 '탐정'이라는 쓸데없는 직업의 도움을 받은 셈이라 보수파도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요. 추리와 전개 모두 합리적이며,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세운 설정 중심이라 추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작가 후기를 통해 드러난 작가의 의도가 놀라왔습니다. '후기 문제'로 인한 본격 추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본격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는데 그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거든요. 후기 퀸 문제는, 소설 속 탐정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이고 자기의 결론이 유일무이한 진실인지 여부를 작품 속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즉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정함은 탐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도 후기작에서는 독자에의 도전을 없앴다지요. 찬호께이는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단서는 '눈' 시스템에 기록된 내용을 기준으로 합니다. 두핀핀 탐정은 아예 사건과 무관한 탐정으로 이 기록만 가지고 추리를 진행하며, 무엇보다도 탐정 스스로가 '사건의 이유'가 되기까지 합니다! 

SF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특히 가라 성 거주 생명체 바보우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인간에 비하면 극도로 짧은데, 이렇게 모든건 서로 상대적이라는걸 지구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재해를 빗대는 부분이 특히요.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제대로 된 하드 SF를 써도 좋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루한 설정만 참는다면, 그 이상의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내 사랑 엘리" 

나는 처제 수와 그 남편 토니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아내 엘리는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은 2층에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수와 토니 앞에서 만드는 '나'의 작전이 먼저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알리바이 트릭의 핵심은 시체를 끈을 당겨 움직이게 만드는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괜찮았어요. 수를 죽인게 토니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엘리와 토니가 불륜 관계였다는걸 입증하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둘이 불륜 관계로 함께 도망갔다고 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말이지요. 단순 실종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뒤집힐 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점에서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습작 2" 

고독을 주제로 한 짤막한 꽁트. 전염병 숙주인 남자 혼자 세상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그다지 의외성도 없고 너무 짧아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커피와 담배" 

시사 잡지 포커스의 기자인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8분에 모르는 공원 벤치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난 수요일 이후 기억은 잃은 상태였다. 몸은 간절히 커피를 원했고, 커피를 마시고자 편의점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나는 지금 세상은 담배가 합법이고 커피가 불법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결국 몰래 커피를 판다는 약국에서 커피를 입수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나는 난동을 부리다가 기절해 버리고 마는데.... 

모든건 흡연자였단 '나'의 금연 치료를 위해 루 박사가 행했던 IC 금연 치료 실험 탓에 벌어진 착각이었다는게 진상인 이야기입니다. 측두엽, 후두엽, 전두엽 간 관계 문제로 '나'는 담배를 커피로 인지했고, 이를 언어로 구성할 때는 '마약'으로 말했던 겁니다. 루 박사의 시계를 붕대로 착각하고 있어서, '나'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기묘한 상황을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이는 독특한 SF이자 판타지로, 이 작품도 "환상특급"에 사용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자매" 

'나'는 여자친구 아쉐가 기생충인 언니 아신을 죽여서 시체를 숨길 계획을 세웠다. 우선 중고 냉장고를 구입하여 아쉐 집으로 옮긴 뒤, 원래 집에 있던 냉장고에 아신의 시체를 담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화물차 안에서 시체를 꺼냈고 냉장고는 버렸다. 아신으로 변장한 아쉐가 경비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외출하도록 시켰고, 아신의 시체는 밤에 바다에 버렸다... 

시체를 바다에 버리는 범행 과정만큼은 그럴싸하게 그려진 범죄물입니다. 그런데 '나'가 아쉐와 결혼할 경우. 600만 홍콩 달러에 달하는 집 명의자에 추가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예 상속자가 되어버려 아신은 집 상속권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아신이 먼저 아쉐를 죽일 계획을 꾸몄었고, 이를 알아챈 '나'가 아신을 죽였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던,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마당 본부에서 간부 감자 괴인이 머리가 으깬 감자가 되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우두머리 바다 대왕과 살아남은 간부인 양파, 사마귀, 해삼 괴인 앞에서 코작 참모는 사건이 감자 괴인의 자작극이라는 추리를 펼치는데... 

일본 전대물 설정을 본격 추리물에 끌어들였는데, 의외로 수준이 높아서 깜짝 놀랐던 작품입니다. 감자 괴인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건 사마귀 괴인과 가면전사 1호의 무기였다는 단서가 앞 부분에 제공되고, 코작 참모의 기묘한 행동을 통해 코작 참모가 가면전사 1호였다는게 드러나는 반전이 아주 일품인 덕분입니다. 코작 참모가 이를 가자 괴인 자작극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설득력 높은 추리였고요. 재미와 추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영혼을 보는 눈"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이 잘나갔던 영매였지만, 30년 전 사건으로 몰락했다며 그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프로그래머 A씨 아내가 몸을 열 번 넘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던 사건이었다. 아내의 영혼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A씨 지문이 묻은 흉기를 찾는 것도 도왔기에 결국 A씨는 사형당했다. 그러나 다른 사건이 벌어졌고, 진범은 시체를 발견했던 가정부였다는게 밝혀졌다. A씨 아내 영혼은 A씨가 불륜녀와 행복하게 살 까봐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잡지 요청으로 귀신을 주제로 썼다는 점은 "정수리"와 비슷하네요. 하지만 공포 자체에 집중했던 "정수리"보다 못했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영혼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처음 접했는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킬러였으며 노인은 방금 죽인 타겟의 영혼이 '나'의 뒤에 있는걸 보았다는 결말도 진부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숨어있는 X" '

나'는 강의 후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 탓에 옆 강의실의 '추리소설의 감상, 창작, 그리고 분석'이라는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다. 강의 시작 후, 학생들과 대화를 하던 교수 '수염남'은 학생들에게 추리 게임을 제안했다. 지금 강의실에 조교가 학생인 척 숨어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이유와 증거를 제시해 보라는 게임이었다. 정답을 맞춘 한 명에게 무조건 A학점을 주겠다는 말에, 강의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게 되는데.... 

찬호께이는 후더닛물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클리셰를 벗어날 수 없고(아마 가장 수상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그런걸 의미하는 말 같습니다), 독자가 직감으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후더닛물의 변주를 고민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창작 의도에 걸맞게 클리셰는 먹히기 힘듭니다. 애초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각자의 별명. 그리고 생김새와 성격 묘사만 있을 뿐이니까요. 이 정도 단서로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기에 벅차지요. 범죄도 아니기에 동기나 범행 수법으로 당사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목받은 사람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야 하고, 지목에 실패한 사람은 탈락한다는 게임의 기본 룰과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수수께끼는 풀리며, 교수인 줄 알았던 수염남이 조교였고 학생인 줄 알았던 '코다 쿠미'가 교수였다는 진상도 깜짝 놀랄만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화자이자 주인공 '냉커피'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수여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반전섞인 결말도 아주 깔끔했고요. 눈으로 고립된 산장에 초대받아 방문한 서로를 모르는 투숙객들 중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을 찾아내는 정통 추리물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완성도높게 구현한 수작이에요.

물론 게임이 이렇게 강의 시간안에 딱 맞게 잘 끝났을지는 사실 의문이에요. 교수가 수수께끼를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의도가 더 많았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무조건 차례대로 한 명씩 지목하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생기고 그 사람이 진상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결정적 약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게임'이 작위적이라고 감점하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4/05

무증거 범죄 - 쯔진천 / 최정숙 : 별점 2점

무증거 범죄 - 4점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현장에 지문과 ‘날 잡아주세요’란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다른 어떤 허점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네 번째 특별조사팀마저 성과 없이 해산되자, 경찰은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 한순간의 실수로 불량배를 죽이게 된 청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증거를 없애줄 테니 범죄를 부인하라며 경찰 대처법을 가르쳐주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수정 인용)

중국 추리 소설찬호께이의 작품 3편 - "13 .67", "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 과 원샨의 "역향유괴" 만 읽어보았습니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대체로 평작 이상이었지만 원샨의 작품은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어떨까 싶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트릭이 존재하는 본격 추리물은 아니며, 범죄자와 탐정두뇌 싸움이 핵심인 범죄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제목의 '무증거 범죄'가 의미하는 완전범죄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전前 수사전문 요원이었던 뤄원이 깡패 소태보가 살해된 현장을 조작하는 과정의 디테일, 그리고 이 사건이 범죄논리학자 옌량에 의해 하나씩 단서가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볼 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만 위안이 넘는 큰 돈을 하트 모양으로 작게 접어서 사건 현장에 숨겨 놓는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어요. 이 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현장이 훼손되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아주 설득력 넘쳤습니다.
이 사건과 항저우 시에서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모를 남기고 벌어진 연쇄 살인극이 맞물리는 전개도 좋습니다. 뤄원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 현장에 남겨진 지문의 소유자를 찾기 위해, 그 지문의 소유자가 범인인 살인극을 조작하여 일으켰다는 동기였는데 대담한 아이디어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설득력 덕분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됩니다. 

옌량이 추리한, 뤄원이 주후이루와 궈위가 저지른 살인 은폐를 도와준 이유도 그럴듯합니다. 뤄윈이 소태보를 애초부터 살해할 목적이었지만, 선수를 빼앗긴 뒤 은폐를 도와주었다는 이유인데,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그게 사실이라는걸 암시하니까요. 좀 작위적이기는 해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외에 익숙치 않은 중국식 묘사들도 흥미로왔습니다. 제목의 '무증거 범죄(완전범죄)'를 비롯하여 상식적이다, 이론적이다라는 말을 '유물론자'라고 표현한다던가, 범인이 경찰 수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 걸 '역수사 능력' 이라고 표현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두뇌 싸움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옌랑과 경찰이 뤄원을 잡아 넣을 증거를 찾아내는데 결국 실패하는 탓이 가장 큽니다. 옌량의 활약이 없는건 아니지만, 두뇌 싸움의 결과는 일방적입니다. 게다가 고차방정식 운운하며, 증거가 없으니 범인부터 대입해서 시나리오를 짠다는 옌랑의 방법론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조작극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이는 뤄원이 "모든 이야기가 들어맞는다고 해서 내가 범인이라곤 할 순 없어. 자네의 시나리오는 아무한테나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범행 동기를 설명할 수 있지."라고 통렬하게 부정하지요. 옌랑은 마지막에는 감정에 호소해서 어떻게든 자백을 이끌어내는게 전부로, 한 마디로 뤄원한테 완패한 셈입니다. 이래서야 공정한 두뇌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죠.
또 뤄원이 연쇄 살인극을 벌이는 와중에, 과연 단 한 번도 경찰 수사 물망에 오르지 않을 정도의 완전범죄가 가능했을지?에 대한 설명도 많이 부족합니다. 뤄원이 대단한 전문가라는걸로 퉁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 공원에서의 범행은 목격자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긴, 이는 뤄원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범죄가 완전범죄가 된 것에 비하면 약과이기는 합니다. 우발적으로 급작스럽게 벌인 범행인데도 불구하고, 경찰 최고의 전문가가 사력을 다해 찾았지만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할 완전 범죄가 성립된걸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는게 가능할까요? 작 중에서 뤄원의 능력이 시종일관 대단한걸로 묘사되는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해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옌랑이 뤄원을 수상하다고 여긴 계기가 된 뤄원의 차에 대한 감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뤄원답지 않은 좋은 차는, 범행을 저지르고 용의선상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함이라고 추리하지만, 뤄원이 과거 출원했던 특허로 성공한 부자라고 설명되는 만큼, 좋은 집과 좋은 차는 그 재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심을 할 이유는 없어요. 또 그게 수상했다면 좋은 집에 사는 건 왜 트집을 잡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사소할 뿐, 가장 큰 문제는 책 뒤 해설에서도 실려 있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너무나 비슷한 구조라는 점입니다. 수학, 과학과 관련된 천재들의 두뇌 대결, 순전히 선의에 의해 사건 은폐에 가담한다는건 완전 판박이입니다.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던 두 청춘 남녀가 결국 파멸한다는 결말까지도 똑같고요. 작가 스스로도 영향을 받았다는걸 인정했다는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무언가 새로운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는 중국이라는 무대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리지널 만큼의 수작은 아닙니다. 그나마 캐릭터를 가져오려면 제대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옌량과 뤄원 모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갈릴레오 유가와 역인 옌량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범죄자와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으며, 뤄원은 아무리 아내와 딸 실종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잔챙이 범죄자들을 다섯 명이나 살해했기 때문에 동정심을 가질 여지가 없으니까요. "용의자 X의 헌신" 속 이시가미처럼 뤄원이 아내와 딸의 실종 이후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독자에게 잘 공감시키지 못하기도 했고요. 이건 작가가 놓쳤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죠. 어설프게 캐릭터를 베끼지 말고, 초반부에 옌량이 똥이 있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뒤 벌어지는 사고는 재미있었던 만큼, 이런 식으로 좀 어설픈 인물로 그려가는게 차별화되고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지만, "용의자 X의 헌신"에 비교하자면 한없이 부족하네요. 중국 추리 소설이 궁금하신게 아니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만 믿고 가야겠습니다.

2019/08/15

역향유괴 - 원샨 / 정세경 : 별점 1.5점

역향유괴 - 4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호의 후손 즈덩런은 투자 은행 A&B의 IT 부서근무 중에 퀸타스 투자 계획에 관련된 기밀 자료가 납치(?)된 사건에 말려들었다. 투자 계획 컨설팅 팀원 중 한 명인 샤오루가 즈덩런에게 자료가 사라진 사실을 처음 알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기를 꺼린 본부장 존은 팀원 모두와 즈덩런을 자료 몸값 지불일인 3일 뒤 까지 A&B 소유 아파트에 경찰과 함께 연금시켰다.
즈덩런은 사건에 샤오루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몇 가지 조사를 통해 이를 확신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은 몸값에 주식 시장에서 한 몫 잡으려는 움직임도 없어서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지는데...

시마다 소지 상을 수상한 중국 추리 소설입니다. 찬호께이의 작품들로 중국 추리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커진 탓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A&B를 협박한 '기밀 문서(재무 자료)' 납치 사건은 즈덩런을 3일 동안 일종의 연락 두절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는 진상, 반전은 좋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태를 유괴된 걸로 위장하여 거액의 몸값을 받아내려는 계획이었지요. 즈덩런이 즈리 은행의 후예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별 의미없어 보였던 도입부의 '술 먹기 게임'의 벌칙 - 즈덩런을 의자에 묶어 놓은 것 - 때 찌은 사진을 이용하고, 중간에 즈덩런의 자는 모습을 찍은 걸 살아있다는 증거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단서와 복선을 배치한 솜씨도 제법입니다.

기밀 문서의 몸값, 그리고 최종적으로 즈덩런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과정도 꽤나 합리적입니다. 먼저 백 명의 협력자들에게 인터넷 옥션에 콘플레이크 박스를 고가로 출품하게 하고, A&B가 이를 낙찰받는 방식으로 10만 달러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콘플레이크 박스를 경찰이 A&B로 가져오게 만듭니다. 사실 박스 중 하나에는 즈덩런의 몸값인 5백만달러에 상당하는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거든요. 다이아몬드는 박스 속 알람 시계가 울리는 혼란 와중에 챙기고요. 박스를 범인이 의도한대로 쌓아놓게 만드는 디테일, 백명 단위가 필요했던 협력자들 모집을 일종의 폰지 사기 방식으로 끌어모으고 다이아몬드도 폰지 사기 형태로 벌어들인 현금에 대응하여 기존 투자자에게 돌려주어 증거를 인멸한다는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시각적인 볼거리가 연상되는 장면도 많아서 즐겁습니다. 콘플레이크 박스 회수 작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일종의 플래쉬 몹 처럼 회수자와 똑같은 복장을 차려 입는다는 묘사가 대표적이죠. 전개도 복잡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라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큽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몇몇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A&B가 투자 성공을 위해 사력을 타하는 퀸타스의 사업이 너무 유치해서 몰입하기 힘듭니다. 차후 그들이 주력으로 내세운건 흔하디 흔한 IoT 서비스일 뿐인 탓입니다. 이런 서비스는 이미 전세계 모든 제조사가 하고 있으니까요.
진짜 핵심이라는 '초크' 프로젝트의 K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상 세계에서 얻은 포인트를 현실 세계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개념부터가 별로 새롭지 않습니다. 가상 세계에서의 적극적인 행동 - 별점을 준다던가 - 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을 차별화로 내세우지만 자동으로 쌓이는 카드, 통신사 서비스보다는 오히려 뒤떨어진 개념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런 서비스는 퀸타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휴대폰 제조 업체가 진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상화폐를 만들었어요! 1K포인트는 1달러에요! 라고 이야기해봤자 쓸모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장에서 그걸 받아줘야 성립되는 사업 모델인데, 이런 신규 통화가 시장에 자리잡는건 불가능에 가깝지요. 이런 이유로 퀸타스의 사업 문제가 금융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건 영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어설픕니다. A&B 사건을 맡은 T시의 탕푸 경감이 A시 경찰이 맡은 즈덩런 유괴 납치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유력 인사의 아들이 납치된 사건에서 그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관련 정보가 알려지지 않는다? 각 도시별 관할이 다르다는 언급 정도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또 A시 경찰이 A&B 본사 건물을 감시할 때, 이들을 탕푸 경감이 체포했더라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거라는 문제도 있고요.

샤오루의 완벽해 보이는 범행 계획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합니다. A&B는 단돈 4만 8천 달러만 손해본 걸로 - 5만 2천 달러는 폰지 사기 형태로 이전 참여자로부터 선입금을 받은 덕분 - 사건에서 손을 뗍니다. 투자 계획과 신용의 문제라 이 정도 손해는 입다물겠다는 A&B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즈덩런 유괴 사기 사건은 상황이 달라요. 무려 5백만불을 손해 본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건 무리입니다.
진상이 드러나면 퀸타스 투자 위험성이 함께 밝혀지고, 연구 개발 증권의 흐름이 막혀 금융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한다는 설명도 말이 안됩니다. A시 경찰한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샤오루의 일종의 폰지 사기 역시 협력자와 투자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연결고리가 많으면 많을 수록 한, 두 군데에서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건 백명 단위를 넘어가니까요. 단적인 예로 다이아몬드를 투자자들에게 전해주는 방법이 그러합니다. 직접 편지를 배달하던가, 최소한 누군가를 시켜야 하는데 백 명 이상에게 이런 짓을 하면 들키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요.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없이 차라리 퀸타스 문서를 인터넷에 뿌리고 주식으로 차익을 얻는게 더 손쉬웠을 겁니다.

깊이있는 캐릭터 형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심리 묘사도 얄팍한 캐릭터들 모두 전반적으로 수준 이하입니다. 대부호의 후손이자 컴퓨터 천재라는 즈덩런이 개중 최악입니다. 만화적인 설정부터 별로이며 무엇보다도 하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IT 관련된 지식 수준도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요. 찬호께이의 "망내인" 속 아녜와 비교하면 초등학생 이하로 보일 정도에요. 다른 캐릭터들 모두 평면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하며, 천재 미형 악역인 샤오루 역시 뚜껑을 열고보면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치는 사기꾼일 뿐입니다. 마지막에 'A&B'에서 더 배울게 없다'는 범인 샤오루의 뻔뻔함과 당당함에는 어이가 없어집니다. 모자라 보이는 개그 캐릭터 폴 형사는 대체 왜 나왔나 싶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고 핵심 아이디어는 반짝반짝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설정들 모두 설득력이 결여됐다는게 문제죠. 영화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나중에 한국에 소개된다면 영화로 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2019/07/26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김성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6점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미타는 택시 안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렸는데, 그것을 주운 남자가 폰 속 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에게 반하고 말았다. 남자는 전문 해커이자 연쇄 살인범으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사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한 편, 인적이 뜸한 야산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변사체가 잇달아 발견되어 경찰은 수사에 나서는데...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최종 수상작입니다. 최근 상당히 화제가 된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쓰는 반면, 해킹에 취약점이 많아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활용한 작품이 개중 많은 편이고요. 해킹에 촛점을 맞춘다면 찬호께이"망내인"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실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때문에 대단한 해킹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현실적입니다. 특히 살인 직전까지 페이스 북 등을 잘 활용하여 피해자를 옭아매는 과정은 설득력이 높아요. 비슷하게 페이스 북을 주로 활용했던 "리얼 라이즈"는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말이지요. 아마 이런 부분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우선 범인은 습득한 도미타의 핸드폰의 비번을 풉니다. 도미타의 생일이 비밀번호였지요. 그런데 이를 알아낸 방식이 기발합니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애인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조사한 뒤 바탕 화면 사진과 일치하는 가입자를 찾아냅니다. 이를 통해 도미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내어 생일을 확인했던 겁니다.
다음으로는 도미타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놓은 후 폰을 돌려줍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도미타, 아사미와 관련된 가짜 페이스북 친구들을 다수 만들어 연결하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사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둘씩 입수하면서 도미타 폰에 고의로 랜섬웨어 감염을 일으킨 뒤, 친구 소개를 가장하여 보안 전문가로 직접 나타나 도미타와 아사미의 신임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사미에게도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해 준 뒤, 틈을 타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페이스 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건 약점이며, 도미타의 직장 동료로 가장한 고야나기의 질척거림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한 현실 속 해킹 수법이라 생각됩니다. 도미타 핸드폰 속 사진의 GPS 정보를 분석하여 아사미의 집이 어디 근처인지를 알아낸다던가 하는 디테일들도 괜찮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범인이 이미 살해하여 유기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피해자들의 스마트폰만 살려 놓은 뒤 가끔 문자 메시지 연락을 하는 정도인데 이게 아주 잘 먹히거든요. 가족, 친지와 멀어지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했던 속임수이지만, 실제로 아주 그럴듯해 보여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사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실제 범행 쪽 이야기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우선 아사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보안 전문가 우라노로 가장하여 신뢰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범죄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다케이와의 불륜을 암시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을 해킹하여 게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이의 행동을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한데 다케이가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범행을 통해 다케이를 아사미로부터 떼어 놓는다고 해도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이보다는 작품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리얼 라이즈" 수준 정도의 페이스 북 조작이 더 현실적입니다. 조작한 나의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려 내 개인의 평판을 망가트리는 정도요. 평판을 망치는 것 외에 페이스 북을 통해 상황을 제어하거나 조작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납치는 방심한채 술을 마시는 아사미를 만나 그녀의 술에 약을 타는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럴 생각이었다면 도미타, 다케이를 떼어버리고 차분히 보안 전문가 우라노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든 뒤 당당히 집에서 납치하는게 정답이었어요. 이미 연쇄 살인사체 유기가 발각되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범행을 서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텐더가 분명 아사미와 함께 나가는 범인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사미를 납치한 뒤 그녀가 Siri로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된다는 결말이 가장 문제입니다. 해킹 전문가인 범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어요. 폰이 아이폰이라는걸 명확히 알았는데도 이 기능을 간과한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전화를 받은 도미타가 이전 해킹 덕분에 아사미 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해킹과 폰 위치 추적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백신을 설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도 부족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견고하지 못해요. 도미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전편에 걸쳐 아사미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찐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사미를 구해주고 그녀의 과거마저 모두 이해한다는 대인배로 급작스럽게 거듭납니다. 반면 왠지 모르게 계속 좋은 사람, 훈남으로만 묘사되는 다케이는 반대로 단 몇 줄의 묘사를 통해 불륜을 즐기는 인간 쓰레기로 돌변하여 리타이어해 버리고 말고요.
여기에 더해 아사미가 과거 AV 배우 야마모토 미나요였다는 설정은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아사미로 가장한 미나요가 아사미의 대학 시절 잠깐의 연애 상대였던 다케이와 다시 만나는 행동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화를 불러올 이유는 없잖아요? 이 과정에서 그녀가 진짜 아사미인 것처럼 심리묘사를 해 가며 독자를 속일 이유 역시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톡톡 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닥 기대에 값하지는 않았습니다. 해킹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망내인"을 읽는게 훨씬 낫습니다.

2018/12/16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 - 프랭크 에이헌 / 최세희 : 별점 2점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 - 4점
프랭크 에이헌 지음, 최세희 옮김/씨네21북스

오랫동안 스킵 트레이서, 즉 의뢰인이 요청한 누군가의 그 어떤 정보도 찾아서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 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일단 저자의 직업부터가 사기꾼 같아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FBI 운운하면서 잠적을 원하는 사람의 어설픈 행동을 우연히 본 게 계기였다는 책을 낸 동기 등 전체적으로 허세가 가득해 보여서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반 이상의 분량이 미국에서의 삶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표적인게 여러차례 언급되는 선불카드와 선불폰 사용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기 쉽지 않잖아요? 여러개의 사서함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우편물을 받는 거창한 방법에 대한 소개 역시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서 우편물을 직접 받을 이유가 우리나라에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즉 이 책에 수록된 흔적없이 사라지는 방법 중 우리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방법만 추린다면, 모든 소셜 네트워크를 탈퇴하고 계정을 삭제하라, 온라인에 올려 놓은 개인에 대한 정보도 모두 삭제하라, 새 컴퓨터를 사고 인터넷은 공공망에서만 이용하라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 뿐이라면 너무 단순해서 책을 살 필요도 없지요.

인터넷 시대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문제입니다. 스킵트레이스가 소셜엔지니어링을 통해 잠입을 원하는 사람의 예전 주소를 손에 넣은 후, 근처 서점에 전화를 걸어서 거기서 어떤 책을 샀는지를 보고 도피하려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내용처럼요.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는 현재 트렌드를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책 구입 목적이 도피하려는 지역에 대한 정보라면 인터넷 검색을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런걸 대단한 사례인 것 처럼 내세운다는 점에서 영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이 책 보다는 찬호께이의 "망내인" 쪽이 소설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의 개인 정보 획득 측면에서는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물론 잠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실효성 있는 정보가 없는건 아닙니다. 실제 저자가 경험했던 다양한 정보 획득 사례와 경험에서 비롯된 각종 팁들도 인상적이고요. 그 중에서도 특히 채무 관련 팁은 눈여겨 볼 만 했어요. 가는 곳이 어디 건,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하는데 이유는 잠적은 채무를 없애주지 못하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내용입니다. '빚투' 라는 말로 최근 불거진 요새 분위기에 정말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더군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국내에서는 써먹기 어려운 과장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잠적에 관한 컨텐츠를 기획하는 분이라면 실제 사례 참고 차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18/10/26

망내인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망내인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며칠 뒤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아이의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인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이며,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며,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서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그럴듯하지만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요. 용의자도 적고,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아녜가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니까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고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습니다.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 합니다.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칩니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여 식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