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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

제츠메시 Road 시즌 1, SP - 별점 2점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 타마오가 매주 금요일 저녁 출발해서, 아무 지방으로나 내려가 차에서 1박 후 '제츠메시'를 먹고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드라마. '제츠메시'는 말 그대로 곧 사라질지 모르는 동네 식당의 음식입니다. 보통 주인이 나이가 많은데 후계자가 없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더군요.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 히트 이후 쏟아진 유사한 형태의 짤막한 일상계 구루메 드라마입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실존하는 평범한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는 내용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차로 지방을 이동해서 '차박'을 하고, '제츠메시'를 일부러 찾아 먹는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아내와 딸이 아이돌 그룹 티어드롭스의 광팬이라서 주말마다 콘서트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주말에 차박을 할 수 있다던가, 용돈 한도 내에서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차박을 한다는 설정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없어요. 일단 제츠메시 부터 별 감흥이 없습니다. 워낙 지방들이라 어차피 제가 먹으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특별한 요리도 없으니까요. 
타마오의 회사 생활과 가족 이야기도 진부한 설정 - 직장에서는 상사와 후배 사이에 치여 살고, 집에서는 아내와 딸 사이에 치여 사는 연약한 가장 - 을 답습하고 있어서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차박을 하던 중에 폭주족들의 습격을 받는다던가, 차박 동료 츠토무와 만난다던가, SP에서처럼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 뻔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차박 관련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는데 짧아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워낙에 짧아서 잠깐 잠깐 보기는 괜찮은데, 딱히 챙겨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4/10/12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이규원 : 별점 1.5점

세상 끝의 살인 - 4점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4년 9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충돌 날짜는 정확히 반년 뒤인 2025년 3월 7일이었다. 그 뒤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루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도망갔고, 아버지는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남동생 세이고는 뉴스 전부터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을 저지른 탓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었다. 매일을 운전 면허 교습을 받으며 소일하고 있던 하루는 고속도로 실습날인 12월 31일에 운전학원 실습차 트렁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여성 사체를 발견했다. 
전직 형사였던 운전학원 강사 이사가와와 함께 얼떨결에 사건 수사에 나선 하루는,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있는 하카타와 이토시마에서 펼친 끈질긴 수사로 사건에 NARU라는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런데 NARU는 하루의 동생 세이고였다. 모든건 세이고가 중학생 때 다른 친구들과 나카노 이쓰키라는 동급생을 심하게 이지메하고 괴롭혔던 과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제 68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얼마 뒤 지구는 멸망하는데 운전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운전을 가르치는 여자 교관이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한 뒤,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는 기발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도 그럴듯합니다. 세이고는 유이치, 준야와 함께 지구 멸망 전, 자기가 괴롭혔던 이쓰키에게 사과하려고 변호사 히츠미의 도움으로 그를 불러냈던 겁니다. 그런데 마침 불러낸 현장이 폭주 택시 연쇄 살인마인 경찰 이치무라가 시체를 버리던 초등학교였지요. 범행이 들통났다고 여긴 이치무라는 우선 세이고를 현장에서 살해했고, 도주한 유이치, 준야, 히쓰미를 차례대로 살해했던 겁니다. 이 때 세이고의 차를 유이치가 타고 달아나서 범인의 동선이 기묘해졌던 것이고요. 
피해자들이 방심한 상황 - 왜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서 범인이 손쉽게 찌를 수 있게 했는지 - 을 통해 범인이 경찰이라는걸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의감이 너무 넘치는 탓에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사가와 강사 캐릭터도 강렬합니다. 그외 멸망을 앞둔 상황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다채롭고요.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히쓰미의 신원을 알아내어 사건 파일을 입수하고, 피해자 준야를 처음 발견했다는 료도 형제와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고, 세이고의 '마지막 사과'와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장에 있었던 이쓰키가 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알려주고, 이치무라가 직접 나타나서 하루 등을 납치하지만 료도 형제와 중간에 만났던 소녀 나나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이사가와 강사의 추리력이 번득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본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리고 범인이 경찰 이치무라라는건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경찰차 범퍼에 가해진 손상이 비중있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폭주 택시'가 경찰차라는걸 목격자들이 놓쳤다는게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가드레일 탓에 경찰차 특유의 도장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되는데, 지극히 운과 우연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치무라의 동기가 작품의 핵심인 '지구가 곧 멸망하는데 사람들을 죽이는 까닭이 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무대 설정만 기발할 뿐, 결국 뻔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극과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면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작품처럼 그 설정이 추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에 가까운 1.5점입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특수 설정도 이야기에 잘 녹여내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다른 후보작이 어땠기에 이 작품이 만장일치 수상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2024/10/11

이상한 그림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이상한 그림 - 6점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북다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사키는 후배 쿠리하라의 도움으로 '나나시로 렌'이라는 블로거가 올린 이상한 내용과 그림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의 크기를 원래대로 맞추고, 기준점(번호) 중심으로 정렬하자 나나시로 렌의 아내 유키가 출산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아들 유타와 둘이서 살고 있는 나오미는 어린이집 선생 하루오카로부터 유타가 그린 이상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날, 누군가가 나오미를 쫓다가 집의 위치를 알아낸 후 유타가 사라져버렸다. 하루오카 선생은 그림을 통해 유타가 학대받았다고 추리했지만, 유타가 그린 그림은 '묘비'였다. 묘비의 주인은 유타의 친모 유키였고, 알고보니 나오미는 유타의 할머니였다.
1992년, 고등학교 미술 교사 미우라 요시하루가 살해당했다. 3년 뒤,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 미우라의 제자였던 신문기자 이와타는 실제 사망 당일 미우리의 행동 그대로 등산에 나섰다. 그리고 미우라가 죽기 전 영수증에 그린 풍경 그림은, 미우라가 사망했다는 시각에는 역광이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는걸 알아냈다. 이를 통해 미우라의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했지만, 그날 밤 이와타도 진범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상한 집"으로 유명한 우케쓰의 후속작. 크게 세 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 소설로, 모든 이야기에 미우라 요시하루의 아내 나오미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책 서두에 등장하는, 모친을 살해했다는 소녀 - 그리고 이상한 그림을 그린 - 가 나오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블로그 속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암시되어 있는 인물도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나나시로 렌의 친모이며, 유키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합니다. 유타의 모친처럼 보였지만 알고보니 할머니였다는 나오미도 바로 이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남편 미우라가 아들 다케시를 힘들게 하자 그를 살해했습니다.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당했던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키가 낳는 아기도 자신이 모친이라는 이상한 모성애가 발동하여 유키가 출산 중에 사망하도록 몸을 악화시켰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케시가 자살했던 겁니다. 유타와 함께 살아가던 나오미를 쫓았던 건 이와타의 선배 구마이였습니다. 그는 이와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지난 10년간 고민하고 추리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제목처럼 '이상한 그림'을 가지고 펼치는 수수께끼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그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림에 포함된 번호의 동그라미를 기준으로 크기를 맞추고, 번호대로 겹치면 무서운 그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산모 배에서 아이를 억지로 꺼내는 듯한 그림이지요.
미우라 요시하루 사건에서의 그림도 흥미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림을 왜 그려서 남겼을까?라는 수수께끼인데, 이는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을거라는 증거로 그림을 남겼다는 다이잉 메시지로 설명됩니다. 미우라가 먹은 하나야기 도시락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각이 추정되었는데, 그건 아침에 범인이 억지로 먹였던 것이고요.
그 외의 수수께끼들도 소소하지만 적절하게 사용됩니다.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글을 통해 드러나는 또다른 동거인, 미우라 사건에서 범인이 팥빵과 침낭을 가져간 이유 - 전날 저녁에 미우라가 먹은건 돈가스 샌드위치였고, 침낭으로 하룻밤을 보냈기에 범인은 이를 숨기기 위해 샌드위치와 함께 샀던 팥빵과 침낭을 가지고 사라졌던 것. 범인이 먹을걸 전부 가져갔다고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침낭은 잤다는 흔적이 남아있어서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 연약한 여자가 미우라와 이와타를 살해할 수 있었던 방법 - 침낭에서 자던 피해자들이 나올 수 없게 침낭 자체를 묶어버렸다 - 등이 그러합니다. 유타의 엄마로 보였던 나오미가 할머니라는게 밝혀지는 이야기는 서술트릭 기법이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나오미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앞서의 사건으로 설득력을 높여주며, 사뭇 달라 보이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묶이는 구조도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작은 인터넷에 올렸던 상상에 허황된 설정이 결합되어 있을 뿐인, 완성된 소설로는 보기 어려운 망작이었던 반면에 이 작품은 최소한 한 편의 완성된 소설입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하지만 그림을 가지고 풀어내는 수수께끼 자체만큼은 주택 평면도에서 기묘한 범행을 추리해내는 전작이 더 괜찮기는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그림 수수께끼는 재미는 있는데 상황 자체가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그린 그림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그림을 남길 이유는 알기 힘듭니다. 그냥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면 됐을 겁니다. 왜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또 이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들, '아이를 낳다가 죽는 미래'로만 보일 뿐입니다. 특별한 범죄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유키가 그린 기도하는 모습의 여성이 '나오미'였다는걸 남편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유타가 묘비를 그리려다가 지운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우라 사건의 풍경화는 더 억지스럽습니다. 나오미가 풍경화를 눈치챘지만, 오히려 '알리바이가 있는 오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남겨두었다는게 특히 그러합니다. 용의자 중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건 유키 뿐인데, 애초에 유키가 알리바이가 없다는걸 이 시점에 나오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흉폭하게 사체를 훼손했다 한 들, 1992년의 법의학이 사망 추정 시각을 단순히 소화 상태에만 의지해 발표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들은 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잘 풀어냈다는건 분명합니다. 작가로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