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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

도쿄의 가장 밑바닥 - 겐콘 이치호이 / 김소운 : 별점 2.5점

도쿄의 가장 밑바닥 - 6점
겐콘 이치호이 지음, 김소운 옮김/글항아리

1893년, 저자 겐콘 이치호이(본명: 마쓰바라 이와고로)가 빈민가로 알려진 시타야 만넨정, 요쓰야 사메가하시, 시바 신아미정 등 3대 빈민굴을 직접 찾아 하층민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이를 생생하게 글로 옮긴 논픽션입니다. 일본 근대 르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네요.

특징이라면 단순히 빈곤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빈민들의 식생활, 일상적인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차부'(인력거꾼)에 대한 상세한 설명처럼요. 그들의 영업과 업무 행태, 하루 벌이, 주요 먹거리, 생활상과 나이 들었을 때의 비참한 모습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그들의 생존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드리운 가난의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되고요. "경성탐정록"의 "운수 좋은 날"을 쓰기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차부 외에도 고물상, 경매 시장, 일용직과 도급 인부들, 아침장과 야시장 등 다양한 하층민 직업에 대한 설명 및 하층민들의 생계 방식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잔반을 모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잔반야'의 존재와 그들이 판매하는 잔반들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생존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식들 설명도 많은데, '후카가와 메시'가 차부들을 대표하는 식사 중 하나로 바다 비린내가 심해서 먹기 힘들다는게 새롭더군요. 지금은 지역 먹거리로 유명한 음식이니까요. 조리법의 문제였을까요? 원래는 꿀꿀이죽과 다를게 없었던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의 유래와 현재 위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망하면 3년을 못 간다는 '좌식산공'에 대한 언급,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자들의 무자비한 행태, 가증스러운 도급업자들에 대한 서술은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막걸리는 1홉(0.18리터)에 2센이며 잘 마시는 사람은 한 번에 5동이에서 7동이를 해치운다. 그중에는 옷가지를 잡히고 홧술로 10동이 이상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은 더 말할 것도 없을테고요.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 모두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빈민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1/14

[단상] 현실로 다가온 모듈러 하우스 기사를 읽고.

오늘, 건축 기술의 혁신을 보여주는 ‘모듈러 하우스’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는 건물의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여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세종시 산율동 행복주택 아파트는 416가구 규모로, 주거 공간의 약 80% 이상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했습니다. 이후 현장에서는 모듈을 크레인으로 옮겨 조립해 공사를 마쳤고, 약 100일 만에 모든 적층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이 공법은 공사 기간을 크게 단축하고 현장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1974년에 발표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흑마술의 여자"입니다. 작품 속에서 모듈러 공법과 흡사한 ‘유니트 하우스’로 이루어진 별장촌에서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밀실이었던 2층은 사실 옆 별장 유니트로, 범행 후 방만 통째로 이웃집과 교체하지 않았을까?라는 추리가 펼쳐집니다. 모듈별로 끼워 맞출 수 있는 유니트 하우스라서 가능한 추리입니다. 

이렇게 50년 전 작품에서 상상으로 그려졌던 기술이 이제야 현실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다는게 신기하네요. 또 상용화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해졌는데, 지금도 이 공법은 기존 방식보다 공사비가 약 30% 더 든다고 하니 비용 문제일까요? 그래도 재미있는 기술이고,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이니 보다 기술이 최적화되어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밀실 살인을 위한건 아닙니다...

2025/01/12

장송의 프리렌 : season 1 (2023~2004) - 사이토 케이이치로 : 별점 4점

용사 힘멜 일행이 마왕을 물리치고 80년이 지난 후,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용사 힘멜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총 28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정통 판타지 설정의 잔잔한 힐링물이라는 점입니다. 프리렌이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운 기억을 쌓는 여행 와중에 드러나는 소소한 추억들 - 힘멜이 동상을 세우는 이유, 프리렌이 꽃밭을 만드는 마법을 좋아하는 이유 등 - 은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힘멜이 경련화 반지를 선물하는 장면은 정말 희대의 명장면이었고요.
장명종 종족이 단명종 종족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던전밥"의 마르실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슬픔을 극복하기 어려워하는 마르실과는 다르게 프리렌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더군요. 장명종으로 시간을 개의치 않는 성격도 곳곳에서 드러나서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단순한 레벨업 구조를 벗어나, 캐릭터들의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돋보입니다. 괴물 한, 두 마리 잡았다고 레벨이 오르는게 아닙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실력이 오르는 것이지요. 당연히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성공하기는 하지만, 그건 현실도 그러하니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관 최강의 마법사 중 한 명인 프리렌조차 마족을 쉽게 이기기 위해 마력을 숨기는 속임수를 쓰는 등, 마법사들의 대결에서는 레벨 대결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걸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도 좋았고요.

힐링물임에도 액션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슈타르크와 홍경룡의 격투나 마족 단두대 아우라 일당과의 전투는 강렬한 작화와 연출로 박진감을 더해 줍니다.
소소한 개그씬들, 귀여운 캐릭터들 역시 매력적이에요. 특히 어린 시절의 페른은 너무 귀여웠어요. 피규어가 출시되면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수천년을 살아왔지만 귀여운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프리렌도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다만 중반 이후의 1급 마법사 시험 이야기는 아쉬웠습니다. 정통 판타지의 힐링물이라는 방향성이 흐려지고, 배틀물로 변질된 느낌이 드는 탓입니다. 마법사의 등급 구조나 마법 상성 설정, 마법사들이 주요 마법 하나에 의존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왜 다른 마법을 배우지 않는걸까요? '닌자물'도 아닌데 말이지요. 

"오징어 게임"이 떠오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시험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도 없었고, 마력의 양으로 승부가 나는 상황도 시험의 필요성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이럴 거라면 목숨까지 걸어가며 시험을 치룰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마력 순으로 줄세우기를 하면 되니까요. 애초에 프리렌이 1급 마법사 시험을 치루는 상황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북부 제국은 위험해서 1급 마법사만 갈 수 있다는 이유인데, 현 시점에서 마족을 가장 많이 죽인 마법사는 프리렌입니다.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는게 타당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누가 보아도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제 딸 아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