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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이자카야 신칸센 (2021) - 별점 2.5점

"이자카야 신칸센"은 2021년부터 방영된 일본 드라마로, 보험회사 직원 타카미야 스스무가 출장 후 신칸센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현지의 음식과 술을 테이크아웃하여 기차 안에서 즐기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제츠메시 로드"와 마찬가지로 티빙을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향토 요리를 소개하며, 신칸센이 마치 이동하는 이자카야로 변신하는 독특한 설정이 특징으로 신칸센 안에서 현지 음식을 즐긴다는 발상은 기존의 음식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며, 신칸센과 음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합니다. 또한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술, 향토 요리를 상세히 소개하여 음식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짧은 러닝타임도 강점입니다. 약 23분 내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간단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드라마라는게 거의 없으며 매 에피소드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청자에 따라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라고는 원하는 음식과 술을 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긴다거나 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 '이자카야 신칸센'을 주인공 타카야마 스스무에게 전수해준 선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정도만 신선했을 따름입니다.
신칸센 내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배경의 변화가 적어 시각적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신칸센으로 오가는 지역 역시 우츠노미야 역, 신아오모리 역, 센다이 역 등 비슷한 장소가 반복해서 등장해 단조롭습니다.
음식과 술 역시 촬영도 좋고, 거의 다 맛있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구해 먹기 힘든게 대부분이라는 점도 좀 아쉬웠습니다. 맛 설명도 부족한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카야 신칸센"의 설정만큼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로 현지화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선술집 KTX"라는 이름으로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의 여정을 다룬다면 어떨까요? KTX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각 역별로 구성된 음식, 술, 디저트를 즐기는 내용으로요. 부산역에서 출발해 테이크아웃할 메뉴를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합이 떠오릅니다.

  • 술: 부산역에서 프리미엄 막걸리 '복순도가'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산역 매장에서만 파는 상품이 있으니, 술 좋아하는 분이라면 놓치면 안됩니다.
  • 음식: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삼진어묵 매장이 부산역 근처에 있지요. 바삭한 어묵 고로케, 쫄깃한 치즈 어묵, 고소한 맛의 야채 어묵이 특히 추천할 만합니다.
  • 디저트: 부산의 유명 빵집인 '비엔씨 도넛 부산역점'에서 판매하는 파이 만주가 유명합니다.

다른 지역은 제가 내려보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구성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1/17

걷는 망자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걷는 망자"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단편집으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입니다. 괴이 민속학 연구실 '괴민연'을 배경으로 영능력 소녀 도쇼 아이와 도조 겐야의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각종 괴담의 진상을 추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섯 개의 단편은 각각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며 기묘한 괴담과 이를 해결하는 추리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던 길고 장황한 민속학적 설명이 전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게 괴이 현상과 그 진상에 대한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괴이 현상과 추리의 결합도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괴담을 이야기하는 영능력 소녀 아이와 이를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덴큐 마히토 컴비의 매력은 떨어집니다. 아이의 영능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덴큐 마히토는 도조 겐야의 조수격임에도 괴담을 무서워한다는 유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 탓입니다. 이 둘이 "사상학 탐정"슌이치로의 조부모가 된다는 '미쓰다 신조 월드' 설정도 억지스러워서 별로였습니다.

총평하자면, "걷는 망자"는 개별 단편마다 흥미로운 설정과 논리적 추리를 선보이지만, 일부 이야기는 완성도가 아쉽고 설정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담, 민속적 분위기와 참신한 트릭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 트릭 등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걷는 망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망자길'에서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남자 구지라다니 쇼지를 목격했던 도쇼 아이의 경험담에서 시작됩니다. 쇼지는 산책 후 귀가했지만 곧바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수사하며 요시코라는 여성과의 밀회에 주목하지만, 아이가 목격한 쇼지의 존재와 가정부의 증언이 요시코를 범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사건의 진상은 덴큐 마히토의 추리를 통해 밝혀지는데, 범인은 요시코가 맞았습니다. 그러나 쇼지의 머리를 잘라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 '망자길'을 통해 귀가한 척한 요시코의 동생 무쓰코 덕분에 알리바이가 생겨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망자'라는 괴이와 알리바이 트릭을 논리적으로 엮은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무쓰코의 키와 마을 여성들의 특이한 풍습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치밀하게 연결된 점도 인상적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어린 시절 가즈히라가 목격한 '가슴은 크지만 머리가 없고 닭 같은 다리를 가진 여자'라는 괴이에서 출발한 사건은, 가즈히라의 친구 다케루의 집에서 이 괴이를 목격한 가정부 다도코로 스에가 습격당하며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덴큐 마히토는 머리 없는 여자가 다케루의 변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물구나무를 섰기 때문에 가슴이 크고 다리 관절이 반대로 보였던 것이지요. 다케루는 이 괴이를 통해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려 했습니다. 스에 습격 사건에서는 사당 장지문 둘레에 금줄을 둘렀다는 일종의 원격 조작 장치 트릭이 사용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3.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소인'이 살고 있어서 집이 작았으며, 더 작아진 이유는 '소인'에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괴이 현상의 진상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소인이 피해자 아이들 배를 갈랐다는 진상 역시 마찬가지고요.
폐쇄적인 마을과 몰락한 지배 가문이라는 배경 설정은 식상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식 발음을 이용한 트릭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영역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괴담 연구회 회원들이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여관방을 봉인까지 해 가며 철통같이 지켰지만, 다카코 회장이 습격당하고 말았다는 괴이 사건이 등장합니다.
진상은 여관 주인의 동생이 여관을 방문한 여대생을 공격해서 괴이 현상을 가장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힙니다. 핵심 밀실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2층에서 자던 마사요를 옮긴 뒤 그 밑의 다다미를 들어올려 1층에 있던 다카코의 목을 졸랐다는 건데, 모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걸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건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서 있는 쿠치바온나

이 단편에서는 민속학자(도조 겐야 선생)이 고갯길에서 입이 초생달처럼 찢어진 여성 '쿠치바온나'와 만났던 것, 그리고 마을 장례 행렬을 미행하다가 우연찮게 관에서 시신이 빠져나오는걸 보았다는 두 가지 괴이현상을 다룹니다.
쿠치바온나는 밤길에서 남성을 만난 젊은 여성이 긴 머리를 입에 물고 변장한 모습이었으며, 관에서 빠져나온 시신은 마을 사람들이 학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폐쇄적인 마을이었다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덕분에 연극을 벌인 이유도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두 괴이 현상이 마을의 이상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1/15

11장의 트럼프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3.5점

11枚のとらんぷ - 6점
아와사카 쓰마오/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주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즈타 시마코가 살해당했다. 그녀가 소속된 마지키 클럽의 마술 공연 중이었다. 시신 주변에는 부서진 여러 가지 물건들이 널려 있었는데, 이는 클럽 회원인 카가와 슌페이가 쓴 "11장의 트럼프"라는 마술 트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품들이었다.

사건 직후 마지키 클럽의 회원들은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마술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프랑스 마술사 프랑수아 란슬롯의 카드 마술을 보게 된다. 이를 본 카가와 슌페이는 미즈타 시마코 살인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되고, 회원들 앞에서 범인이 클럽 회원 중 한 명인 마츠오 쇼이치로임을 밝힌다. 이후 마츠오는 사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건 시마코의 조상인 마술사 호큐사이의 유품때문이었다.

"아아이이치로 시리즈""복잡한 기계장치" 등으로 유명한 아와사카 쓰마오의 또다른 대표작 장편입니다. 여러 리스트(이거라던가, 이거 등)에 높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는 작품이지요. 명성만 보면 왜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는지 의아합니다. 항상 읽고 싶었었는데, 이번 기회에 도전하여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원서라 그런지 완독하는데 거의 1주일이 넘어 걸렸네요.

이 작품의 제일 큰 장점은 마술과 트릭의 절묘한 결합입니다. 특히 마츠오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활용한 트릭이 대표적이에요.
마츠오가 공민관 무대에서 펼쳤던 카드 마술은 관객이 고른 카드를 정확히 맞추는 마술이었는데, 마지키 클럽 회원들은 공연 당시 조명을 조작하던 시마코가 카드를 확인한 뒤 특정 위치에 조명을 비추어 맞추도록 한 트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마코가 그때까지 살아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지요. 사실은 이미 살해된 후였는데도요. 마츠오가 카드를 맞출 수 있었던건 시마코의 도움이 아니라, 관객의 핸드백 금속 장식을 사용했던겁니다("타짜"의 지포라이터같은거지요). 또 이건 카가와가 프랑수아 란슬롯의 카드 마술을 보고 깨닫게 되는 핵심 요소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란슬롯의 책을 열심히 읽었던 추종자 마츠오가 란슬롯의 말대로 관객이 카드를 정말 자기 의지로 선택하게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츠오의 공연 직후 이어진 오타니 난잔이 벌인 '주머니 속의 미녀' 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원래는 시마코가 미치코의 대역을 맡는 마술이었으나, 마츠오가 1인 2역을 소화하면서 시마코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착각을 관객들에게 심어줬던 거지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11장의 트럼프"라는 소설도 흥미롭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마술 트릭들이 소개되어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중요한 단서로 활용되기도 하거든요. 특히, 카가와는 시마코가 살해된 현장에서 가스 밸브가 열린 것을 범인이 알아채지 못한 점에 착안하여 범인이 후각을 상실한 사람일 거라 추리합니다. 그리고 누가 후각이 없는지는 "11장의 트럼프"를 통해서 밝혀내게 됩니다.

사건의 동기도 독창적입니다. 시마코가 물려받은 일본 초기 마술사 호큐사이의 마술 비법이 동기라는 설정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복잡한 기계 장치"의 '가라쿠리'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게 일본 초기 마술의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덕분입니다.

또한, 마지키 클럽의 마술 공연에서 벌어지는 소동도 유쾌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주머니 속의 미녀' 마술에서 미치코가 탈출해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다, 입장권이 없어서 접수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아주 기발했어요. "아아이이치로" 시리즈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으로는 여러 가지 설정과 캐릭터들의 반응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가 벌어졌음에도 주요 인물들이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이질적이었어요. 피해자가 함께 활동하던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가볍게 대응하는 듯한 모습은 영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클럽 회원인 게이코와 다른 인물들이 범인인 마츠오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범행 동기였던 호큐사이의 마술 비법을 함께 이용하려는 속셈이 엿보이는 결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범인이 현장을 "11장의 트럼프" 속 물건들로 꾸미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호큐사이의 마술에 대해 누군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세간의 이목을 끌고자 했다는 의도가 앞뒤가 맞지 않는 탓입니다. 호큐사이의 마술을 아는 사람이 사건을 접했다 하더라도, '시마코는 호큐사이의 마술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주장할리가 없잖아요. 더군다나, "11장의 트럼프"라는 소설은 거의 판매되지 않아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요. 사건을 일부러 극적으로 연출하려 했다면, 시체의 목을 자르는 등 보다 직설적인 방법이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사건 현장에서 ‘가스 밸브가 열린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단서 역시 비약이 심합니다. 이를 근거로 범인이 후각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추리였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마술과 본격 추리 소설을 잘 결합하고 있으며, 독자에게 모든 단서를 공정하게 제공하며 추리의 재미를 충실히 전달해 줍니다. 마술 트릭과 사건의 연결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으며,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도 좋고요.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한 설정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며, 마술 트릭을 활용한 본격 추리 소설로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마술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 중(이 작품이나 이 작품, 이 시리즈...)에서는 가히 최고를 다툰다 할 수 있으니까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