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터펜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터펜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4/08/26

부부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 별점 2.5점

부부탐정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해문출판사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토미와 터펜스 부부 시리즈는 부부탐정이라는 설정과 부부가 함께 하는 모험이라는 이야기 구조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걸작 시리즈죠.

장편 "비밀결사"에서 등장하여 결혼에 이른 부부 토미와 터펜스. 그들은 토미 숙부의 유산으로 넉넉하게 살아가지만 이전의 모험적인 삶을 그리워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정부의 카터라는 인물로부터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탐정의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에 주목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마 연재때문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모두 2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후편으로 나뉘어진 작품도 많고 부부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게 된 경위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은 제외한다면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트릭이 가미된 유머스러운 추리 모험 활극으로 토미와 터펜스라는 부부의 유머와 재치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무엇보다 여러 명탐정을 각 편마다 인용하며 나름의 경의를 표한 크리스티 여사에게 감탄했습니다. 현재는 잊혀진 탐정들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탐정들도 있지만 이런 인용으로 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네요.

때문에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 굉장한 논리나 사건은 없지만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만큼, 부부탐정 팬 분들에게는 강추드립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작품 "차라도 한잔" 은 파리를 날리는 사무소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터펜스의 사기극(?)으로 부부의 익살과 접수 소년의 재치 등 유쾌함이 넘치는 소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 가치는 빵점이네요...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

두번째 작품 "분홍색 진주 사건"은 첫번째 사건에서 만족한 의뢰인이 소개한 의뢰인이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 값비싼 진주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은밀한 조사를 의뢰받는데 손다이크 박사를 흉내내는 토미가 단순한 사실에서 진상을 꿰뚫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것 같지는 않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세번째 작품 "이상한 불청객 사건"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블런트라는 원래 인물이 연루된 국제적인 범죄조직에 납치된 토미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로 첫부분에 등장하는 담배갑과 연관된 재치가 상당히 돋보이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토미가 인용하는 불독 드러먼드라는 캐릭터는 조금 궁금하더군요.

네번째 작품 "킹을 조심할것 &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는 초반에 토미와 터펜스가 이야기하는 신문지의 인쇄오류와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연관시켜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으로 변장 트릭이 등장합니다. 조금 흔한 트릭이긴 하지만 재치와 유머가 넘쳐 꽤 재미있습니다. 전형적인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과 전개방식이지만 캐릭터를 달리 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만드는 이야기 구성력이 돋보였어요.

다섯번째 작품 "부인 실종 사건"은 유명한 탐험가에게서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뒤 그녀가 사라진 마을에 찾아가 악덕 의사의 소굴에 잠입하여 진상을 밝혀내는 부부의 활약이 그려집니다. 서두에 토미의 셜록 홈즈 흉내가 굉장히 인상적이며 웃깁니다.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복선으로 인용하는 막판 반전이 꽤 재미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여섯번째 작품 "장님 놀이"는 제목 그대로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가 아니라 콜튼이라는 모르는 탐정이더군요)을 흉내내기 시작한 토미가 안대를 착용하고 다니다가 세번째 작품의 조직에게 다시 위협받는데 요리 주문할때의 숨겨진 암호문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긴박감이 좀 떨어지고 토미의 안대에 대한 비밀이 말 한마디로 끝나는 구조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범작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안개속의 남자"에서는 토미가 브라운 신부를 흉내내네요. 하지만 이야기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크리스티 여사의 전형적 구조로 진행됩니다. 안개에 묻혀 통행이 뜸한, 입구에서는 경찰이 서 있었던 밀실과 같은 집에서 한 여배우가 살해당한 후 진범을 잡는 내용으로 트릭이나 범인은 후대 작품에서 비슷하게 써먹은 것이 많아 신선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연대를 볼 때는 분명 여사님이 시대를 앞서 가신 것이죠. 여사님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여덟번째 작품 "위조지폐범을 찾아라"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범인역도 신선했고 모험소설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있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홉번째 작품 "서닝데일의 수수께끼"에서는 "구석의 노인"까지 등장합니다! 구석의 노인 흉내를 내던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신문을 읽으며 미궁에 빠진 서닝데일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안락의자형 탐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구석의 노인의 이야기 진행방식까지 유사하게 차용한 재치가 돋보이며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완성도 있는 작품입니다.

열번째 작품 "죽음이 숨어있는 집"에서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독화살의 집"의 아노 탐정이 인용되네요. "독화살의 집" 탐정의 인용작품 답게 저택에서 독살당한 가족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구성과 마무리까지 깔끔한 수작입니다만 모처럼 찾아온 미인 의뢰인이 독살당해 죽는다는 설정은 조금 마음에 안 들더군요....

열한번째 작품 "철벽의 알리바이"는 동시에 두곳에 존재한 한 여인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트릭인데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 프렌치 경감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트릭 자체는 실망스러운 범작이었어요.

열두번째 작품 "목사의 딸 & 레드하우스"는 암호해독 트릭입니다. 부유한 아버지의 백모로부터 돈은 없이 저택만 상속받은 목사의 딸이 집을 팔라는 끊임없는 권유와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괴로워 하다가 토미와 터펜스에게 조사를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미 이 부분부터 눈치빠른 독자들은 "저택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라고 느끼실 것 같은데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일종의 보물찾기로 꽤 괜찮은 암호문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잘 만든 암호문입니다)이 재미있습니다.

열세번째 작품 "대사의 구두"는 설정이 상당히 기발합니다. 자신의 구두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가진 사람과 가방이 바뀌었던 미국 대사가 가방이 바뀌었다고 하며 되찾아간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토미와 터펜스 부부를 찾아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가방안에 들어있던 것은 대사의 구두 뿐이었기 때문에 토미와 터펜스는 구두 안에 무언가 다른것이 숨겨져 밀수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범인을 밝혀내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포튠이라는 탐정이 인용되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못해서 아쉽더군요. 트릭은 대단치 않지만 워낙 설정이 독특하고 모험소설적인 부분이 많아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 "16호 였던 남자"는 작품집 초반에 등장했던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스파이로 경찰이 체포를 노리는 수수께끼의 16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모험이 벌어지는 내용으로 첩보물 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트릭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2006/09/24

비밀결사 - 애거서 크리스티 / 신용태 : 별점 2.5점

비밀결사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해문출판사

소꼽친구였던 토미와 터펜스는 전쟁이 끝난 후 런던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의기투합한 둘은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청년 모험가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들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휘팅턴이라는 인물이 바로 사건을 의뢰했다. 그런데 터펜스가 즉석에서 말한 "제인 핀" 이라는 이름 한마디로 둘은 큰 수수께끼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후 둘은 정부 기관원 카터로부터 그녀가 루시타니아 호 침몰때 중요한 서류를 넘겨받아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그 서류의 존재가 대영제국의 존망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정부의 비공식 첩보원으로 일하며 그녀와 서류의 행방을 뒤쫓는 일을 제안 받았다. 

제인 핀의 미국인 사촌이자 대부호인 줄리어스와도 친분을 쌓으며 토미와 터펜스는 서서히 "브라운"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위험한 조직의 핵심에 접근해 나아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두 번째 장편이자 "부부탐정"으로 유명한 토미-터펜스의 첫 주연 데뷔작입니다. 예전에 해문에서 출간된 아동용으로 읽었었는데, 헌책방에서 싸게 팔길래 옛 기억을 되새길겸 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위에 줄거리를 짧게 요약해 놓았지만 추리물보다는 모험물입니다. 그러나 여사님의 전공을 반영하듯 몇몇 추리적 장치들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브라운"의 정체가 합당한 복선에 의해 드러난다는 점, 간호사 복장에 대한 심리적 장치 -간호사 복을 입으면 다 똑같아 보인다는-, 그리고 "마거릿" 이라는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 등의 장치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초기작답게 단점도 눈에 많이 띕니다.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이야기가 순전한 "우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겁니다. 두 젊은이가 모험가 회사를 설립한 직후 휘딩턴에게서 의뢰를 받는다는 우연, 그리고 그 전에 그들이 나누던 대화의 한 부분에서 기억한 즉흥적 대답에 따른 전개 등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모험의 거의 대부분이 우연한 요소에서 비롯되거든요. 치밀한 설정보다는 왠지 여사님이 즐기면서 쉽게쉽게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여사님 소설 주인공 중 가장 쾌활하고 즐거운 토미-터펜스 컴비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으며 기본적인 재미는 충분히 보장하는 유쾌한 활극이라는건 분명합니다. 가끔 이런 식으로의 기분 전환은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겠죠?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하시는 추리소설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5/09/13

부머랭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 신용태 : 별점 3점

부머랭 살인사건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해문출판사

영국 웨일즈 지방의 작은 해안도시 마치볼트. 그곳 교구 목사의 아들 바비 존스는 골프를 치던 중에 한 사내의 죽음을 목격한다. 사내가 죽어가며 남긴 말은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바비는 검시심문에서 죽은 남자 알렉스 프리처드의 여동생을 만나 몇가지 정보를 주고 사건을 잊어버리지만 그 직후 바비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급기야는 죽을 뻔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후 그는 생명을 지키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마을 제일 귀족의 딸 레이드 프랜시스 더웨트 - 프랭키 와 같이 사나이의 죽음과 관련된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애거서 여사의 모험소설(?). 두 남녀의 유쾌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지루하지 않게 펼쳐져서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정통 추리물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내용은 좀 약하지만 사건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고요. 확실히 여사님이 거장이구나 싶은 느낌이에요.
또 캐릭터들이 굉장히 생생하다는 것이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악하고 치밀하며 유머스러운 악당 로저의 캐릭터가 정말 대단해요! 독특할 뿐더러 개성이 넘쳐 이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 정도에요.
프랭키는 제가 싫어하는 여사의 부르조아틱한 취향을 반영한 귀족 딸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다지 귀족 답지 않은, 오히려 왈가닥 아가씨의 전형처럼 그려져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 목사의 아들 바비와 연결되는 엔딩이 꽤 그럴 듯 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여사님이 소일거리삼아 쉽게 쓴 느낌이 강합니다. 마지막 대 위기의 상황에서 바비의 친구 배저가 난데없이 등장해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복선이고 뭐고 없이 우연에 의지할 뿐이라 많이 황당했어요.

그래도 짤막하게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는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토미-터펜스 부부류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즐길 요소가 많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원제대로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로 출판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전혀 상관없는 "부머랭"이 갑자기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제대로 출판된 다른 출판사 책도 있긴 하지만 해문판이 마음에 드는데, 이런 것들은 앞으로라도 좀 신경써 주었으면 하네요.

2021/09/17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설혜심 : 별점 3점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6점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지적인 흥분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전해주는 여러 미시사 저작물을 발표했던 설혜심 교수의 신작입니다.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하는 서두를 보니, 코로나로 인해 여러모로 쌓였던 스트레스 해소 차 썼다고 합니다. 본업과 별개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만한 책을 쓸 수 있다니, 그 내공이 정말 놀랍네요.

하여튼, 저자 스스로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 다시 읽기'로 요약할 수 있다는데 독자가 보기에는 'B급 문학을 역사 연구의 소재로 활용'해보는 모험적 시도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통해 당시 '영국의 세계관'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니까요. 그만큼 여사님 작품이 당시의 실재를 잘 반영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사님 작품에 온갖 저택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여사님 본인이 집 보러 다는게 취미일 정도로 열성적인 부동산 투자자이기도 했습니다만, 당시 영국인들이 대체로 집에 대한 집착이 어머어마했다는걸 설명해 주거든요. 이 집착이 '대영제국'을 만들었다는 해석도 그럴 듯 했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인들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면 거창하고 복잡한 소유권 선언 의식부터 했는데, 영국인들은 사는 집부터 짓고 자기 영역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랍니다. 점유를 통해 해당 땅을 지배한다는 현대적인 부동산 논리인 거지요. "아무리 낡아 빠진 집이라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다."푸아로가 말하는 작품도 있는데, 이제야 그 좀 납득이 되네요.

1차, 2차 세계 대전 중 '병역 면제'에 대한 사실과 사회적 인식도 여사님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머랭 살인 사건"의 주인공 보비 존스가 입대 직후 시력 문제로 제대했던 이유부터 볼까요? 1차 대전 때 입대 전 신체 검사를 민간 의사들이 시행했는데, 이들의 수당을 적합 판정을 내린 신병 수만큼 지급했던 탓이랍니다. 그래서 '적합' 판정이 남발되어서 군대에 가면 안되면 보비 존스조차 입대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건 1차 대전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2차 대전 때는 징집 대상이 여성까지 확대되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직업군은 오히려 병역이 배제되었으며, 여기 농부가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 농과 대학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는 등의 사실을 "파도를 타고"의 롤리와 린을 통해 알려줍니다. 전쟁 당시 롤리는 일하던 농장에 묶였지만, 약혼녀 린은 징집되어 참전했었다는 설정이거든요. 더불어 롤리가 지옥같다고 묘사한 이 상황으로 당시의 사회적 인식도 쉽게 알 수 있고요. 

또 "쥐덫" 등 여사님 작품들은 대체로 군대에서 복무했던 여성들은 똑똑하고 유능했던 반면, 남성들에게는 군대가 지능이 별로 필요없는 집단이라는걸 드러내는 묘사가 많았다는 걸로 당시 군인에 대한 여사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실패했던 첫 결혼의 상대방이 장교 출신인 탓도 어느정도 있었겠지요? 당시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대접받고 경쟁할만한 곳은 전시 군대가 유일했다는 점도 한 몫 했겠지요.

이른바 '영국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다양한 작품에서의 등장인물들 대사로 제국주의, 인종 및 타 국가에 대한 편견과 같은 당시 영국 국민들 의식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여사님 스스로가 이를 '섬나라 근성'이라며 비꼬는 묘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이유보다 현상만 채집하여 선보이고 있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런게 실재하는 역사이자 진정한 사람들 관점의 미시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돈" 항목은 이런 관점의 미시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펜스가 "비밀 결사"에서 이야기했던, 오직 세 가지 뿐인 돈 버는 방법에서 시작됩니다. "물려받거나, 결혼하거나, 직접 벌거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사님 작품에 많이 나오는 몰락한 귀족과 미국 부자의 결혼이라는 상황과 실제로 20세기 초반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미국 대부호 딸과 결혼했던 사례를 연이어 소개해 줍니다. 대표적인 "달러 프린세스"로 소개된건 처칠의 어머니 레이디 랜돌프 처칠이었고요. 실제로 돈을 벌어 자수성가한 사람들 이야기가 없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여사님 작품 속 이야기를 실재 역사적 상황과 맞추어 설명한 아주 좋은 사례라 생각되네요.

하녀, 하인들 이야기가 주로 소개된 "계급"도 미시사적인 측면에서 볼 만 합니다. "돈"과 마찬가지로 하녀에 대한 당시 시각과 인식을 여사님 작품은 물론, 여러가지 실제 자료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식과는 다르게 20세기 초만 해도,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하녀 일을 추천했었다는게 기억에 남네요. 도시의 악덕으로부터 젊은 처녀를 보호하고, 상층 계급의 사회적 규범을 익힐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나요? 운만 좋으면 좋은 혼처를 찾을 수도 있었고, 여사님 작품에서처럼 거액의 돈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상류층들도 하인에게 예의를 갖추는게 제 1원칙이었다니 지금보다도 고용살이하기는 더 나은 시대였을걸로 생각도 되고요. 물론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주머니 속의 호밀" 등 하녀가 불쌍한 희생자가 되는 작품도 제법 많습니다만....

그 외에도 심령 현상, 강신술과 관상 등으로 대표되는 '미신'에 대한 당시 인식, 미스 마플 이야기와 미시사라는 학문의 핵심이 일치한다는 주장 등도 모두 미시사적으로 볼만 했었습니다. 미시사에 대한 이론은 특히 와 닿았습니다. 저는 그냥 쉽게 특정한 분야, 특정 시기만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게 미시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미스 마플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처럼, 일반적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일반 사람들과 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런 부분을 좀 더 유념해서 책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순수하게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팬으로서 즐길 요소도 많았습니다. 탐정 에르큘 푸아로 캐릭터 유래처럼요. 그가 벨기에인이었던건 여사님이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쓸 무렵, 근처에 살고 있었던 벨기에 난민을 떠올렸던게 계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국인들 도움에도 별로 고마와하지 않고 불평을 늘어 놓았는데, 거기서 푸아로의 까탈스러운 성격이 빚어졌다고 하네요. 푸아로는 벨기에라는 나라가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무시해도 좋을' 나라라서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프랑스 인이었다면 지금의 푸아로와 같은 인기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탈 것'을 통해 여사님 작품 속 자동차, 기차, 비행기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리엔트 특급이 대표적이에요. 밀실처럼 폐쇄된 공간이고, 승객들은 모두 우연히 모엿으며, 갇혔지만 창 밖을 볼 수 있고 중간중간 정차해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기차는 추리 소설 무대로 적합하다는 이론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산행"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와 일치했던 덕분입니다.
그런데 탈 것에 '배'가 등장하지 않는건 좀 의외네요. "나일강의 죽음"의 주 무대가 유람선이었는데 말이지요. 외국 여행을 위해 유람선에 모인 영국인들은 미시사 적으로 해석하기 아주 적합한 소재인데 왜 빠졌을까요?

하지만 모든 주제가 여사님 작품으로 당시 영국 세계관, 상황을 돌아볼 수 있다는 목적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예컨데 "독약"은 당시 영국 상황보다는 애거서 크리스티 개인에 관련된 주제였습니다. "교육"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상황들도 마찬가지에요. 여사님이 사립학교 출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건, 해로 출신이자 난봉꾼이었던 오빠 몬티 탓, 그리고 여사님이 제대로 된 학교 생활 경험이 없다는 탓이 컸으니까요. 

그리고 "섹슈얼리티", "신분 도용"은 여사님 작품 속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잘 분석되어 있는 결과물로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여사님 작품 속 동성애,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의 관계 분석은 팬으로서는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그러나 이를 당시 시대상과 잘 엮어서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호텔"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보이 호텔과 리츠 호텔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버트램 호텔에서"의 버트램 호텔 모델이 어디인지에 대한 해석이 거의 전부로, 일종의 미시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호텔에 국한된 내용이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배급제"는 전쟁 때 시작되어 1950년대까지 이어진 배급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만, 정작 여사님 작품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여사님 관련 이야기도 작품보다는 자서전 내용이 중심이고요. 또 앞서 말씀드렸던 미시사적인 부분들도 재미는 있지만, 뒷받침하는 사료와 근거가 많지 않고, 분량도 적어서 깊이있는 내용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유명 작품, 여사님이 직접 뽑은 베스트 10 과 같은 작품보다 "파도를 타고"와 같은, 특정 작품에 등장했던 상황과 대사 소개가 많은 것도 아쉬웠어요. 여사님의 전작을 둘러본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으니까요. 저자가 소개한 소재도 미시사적으로 좀 더 의미있게 선보였다면 좋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탈 것"에서 다양한 차들을 열거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 차들의 연대 순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식으로 말이지요. 아울러 저자의 책 치고는 도판도 딱히 볼만한게 없었습니다. 여사님 소싯적(?) 사진들 정도가 눈에 뜨이는 정도입니다. "탈 것"에서 열거된 차들 사진과 같은 도판은 수록해주는게 좋았을 거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역사적인 깊이 측면, 그리고 여사님 작품의 깊이 있는 분석 양쪽 모두에서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래도 여사님 팬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다가, 여사님 작품을 미시사적으로 접근한다는 아이디어 만큼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글도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고요. 추리 소설, 역사 관련 저서를 모두 좋아하는 저에게는 불만없는 독서였어요.

2007/10/09

반드리카 초특급 (Lady Vanishes)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3점


북유럽의 조그만 나라 반드리카를 여행하던 영국인 처녀 아이리스 헨더슨은 내키지 않은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귀국하려는 중, 역전에서 자신의 사고를 도와준 중년의 영국 부인인 프로이 부인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리스가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앞에 앉아있던 프로이 부인은 사라진 상태였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들 부인을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들 모두 아이리스가 착각했다고 했지만, 프로이 부인의 존재를 확신하던 아이리스는 전날 여관에서의 악연으로 알게 된 음악가 길버트와 함께 프로이 부인을 찾아나선다.


히치콕 감독의 초기작입니다. 영국에서 감독한 흑백 영화이지요. 거의 70여년이 넘어가는 세월을 반영하듯 영화적 문법이나 전개는 무척이나 심심합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편집으로 지금 봐도 그렇게 촌스럽지 않고 재미있다는게 히치콕 감독의 능력을 증명해 줍니다.
특히, 반드리카 급행 열차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등장인물도 몇몇 없는 연극적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적 제약하에서 프로이 부인의 실종과 그것을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한 덕분입니다. 창문에 쓴 글자가 도드라지는 장면이나 차봉지가 창문에 붙었다 떨어지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그리고 인물 설정과 묘사도 재미납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 여사의 토미와 터펜스를 연상케 하는 길버트-아이리스 커플의 재치와 궁합은 지금 보아도 일품이었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이유가 타당한 등장인물들의 설정도 기가막힙니다. 특히 크리켓에 미친 영국인 2명의 설정이 압권이었아요. 아울러 악당이 독일인이라는 것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초기 걸작인 "39계단" 등과 비교해 봤을 때 각본의 짜임새가 떨어진다는게 좀 아쉽더군요. 프로이 부인이 실종된 이유가 너무 황당무계한 탓이 큽니다. 노부인이 국제적인 스파이라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결말 역시 좀 시시했고요. 때문에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고 소품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거장의 초기작 정도의 의미로 가볍게 볼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와 같은 히치콕 팬이라면 꼭 챙겨 볼만한 수준의 유쾌한 추리-스릴러 물임에는 분명해요. 고전 영화, 그리고 히치콕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PS : 한글 제목이 왜 "반드리카 초특급" 인지 궁금하네요. 기차가 중요 무대이긴 하지만 초특급 운운할 정도의 열차도 아니고 원제가 더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