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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

문호의 식채 - 미부 아츠시 / 혼죠 케이 : 별점 2.5점

문호의 식채 - 6점
미부 아츠시 원작, 혼죠 케이 그림/대원씨아이(만화)

독신 기자 카와나카 케이조가 본사 정치부에서 후카가와 지국으로 좌천된 후, 메이지 시대 일본 문호가 즐겼던 음식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드라마를 탐구하는 기획 기사를 쓴다는 내용의 연작 단편 만화입니다. 총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요리는 별로 대단치 않지만 해당 요리가 작가가 남긴 작품, 그리고 작가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한 시선이 생각보다 깊이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문제라면 등장하는 작품들이 별로 친숙하지 않다는 겁니다. 작가들도 반 정도 -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 를 제외하면 모르는 작가들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여러모로 색다른 식도락 만화로써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일본 근대 작가들에 대한 공부가 뒷받침 된다면, 즐길 거리가 더 많을 것 같네요.

덧붙이자면, 후속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나온다면 좀 더 친숙한 작가가 등장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추리작가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 요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나츠메 소세키 "도련님" 모미지 야키 

마돈나로 대표되는 가짜 서양식, 가짜 근대의 대척점에 있는 유모 키요를 상징하는게 모미지 야키라는 내용입니다. 가짜 근대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라는 해석인데 꽤 그럴듯합니다.

마사오카 시키 "앙와만록" 한 끼 식사. 

"앙와만록"은 먹는 것, 심지어 싸는 것까지 디테일하게 기록한 시키 만년의 일기라고 합니다. 누워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작가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썼다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깊은 울림을 전해 주네요. 

재료를 따지거나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밥상을 추구한 삶은 하이쿠에서 기교를 거부한 시키의 작품과도 닮았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작품을 발표했는지도 궁금해지고요. 조금 찾아보니, "고추잠자리, 추쿠바에 구름도, 한 점 없구나" "어린 연어가, 둘로 나위어, 오르는구나" 등의 시가 검색됩니다. 형식에 집착한 하이쿠에서 현실을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시로 표현해 나간 최초의 인물이라고 하는군요. 운율과 발음 모두 굉장히 일본적인 시라 한국어로 번역하면 여러모로 애매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대를 열은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히구치 이치요 "탁류" 카스텔라 

이 시리즈의 또다른 주제인 "작가가 먹었던, 혹은 작품 속에 등장한 음식은 무엇인가?"에 가장 충실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약간 식탐정스러운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히구치 이치요가 다녔던 학교 선배가 쓴 소설 속에 등장한 카스텔라는 "후게츠도 (風月堂)"의 것으로 아마 히구치 이치요도 먹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탁류"의 주인공인 창부 오리키가 산 카스텔라는 후게츠도의 것과 같은 고급이 아닌 빈민가에서 팔았을 "닌교야키" 였을 것이다'라는 일종의 추리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그냥 허튼 소리도 아닙니다. 가게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치요 사후 그녀의 집에 하숙한 소세키의 제자 모리타 이치요에 따르면 축제날 근처에 닌교야키 포장마차가 와 있었다는 글을 남겼다는 식으로 증거에도 충실하거든요. 이 정도면 한편의 짤막한 추리 꽁트로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가이 카후 "단장정일승" 비프 스튜, 치킨 리버 크레올 (애리조나 키친), 카시와 남반 (오와리야), 야나가와 나베, 누타, 초시 1병 (이다야), 돈가스 덮밥, 오신코, 초시 1병 (다이코쿠야) 

이른바 '단골'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신선합니다.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아 별다르게 주문하지 않아도 똑같은 음식이 나오는, 그게 단골이고 편하다는 논리는 꽤 새로왔어요. 나이든 카후가 기름진 음식을 고집한 이유, 즉 젊은 시절의 노스탤지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은 해석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논리와 해석보다 이 에피소드가 중요한 것은 유일하게 등장하는 모든 음식을 아직 남아있는 가게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현' 측면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죠. 언제 일본을 또 가게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애리조나 키친'은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도 소다츠가 카후의 식도락 순례를 똑같이 하던 에피소드도 떠오르네요. 거기서는 '나가이 가후'라고 소개되었지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혼죠 료코쿠" 쿠즈모치 (후나바시야) 

굉장히 짤막한 내용입니다. 수필 "혼죠 료코쿠"는 아쿠타가와가 자살 2개월 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품 치고는 묘하게 밝다고 하네요. 여기서의 해석은 어린 시절, 정든 고향을 떠올리며 쓴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겁니다. 등장하는 음식점이 아직도 실존하고 있어서 찾아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나가이 카후 에피소드와도 같고요. 단, 멧돼지 전골 등 딱히 땡기는 음식이 아니라는 차이점은 있습니다.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비잔" 비잔 세트 (장어 덮밥 세트) (와카마츠야) 

다자이 오사무는 그 속마음을 당쵀 알 수 없는 작가라는 결론이 전부였던 작품. 상당히 허무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하면 내용과 깊이 모두 찾아보기 어렵고요. 다자이 오사무라는 유명 작가를 등장시키기 위한 목적 외의 가치를 찾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이 책 수록작 중에서 워스트입니다.

2015/02/03

이야기꾼 여자들 - 기타무라 가오루 / 정유리 : 별점 2.5점

이야기꾼 여자들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북하우스

"하늘을 나는 말"로 유명한 기타무라 가오루의 단편집. 모두 1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은 이 작품 외에 "시미가의 붕괴"뿐으로, 유명세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소개가 안되네요.

이야기를 해 주는 여자와 계절만 바뀔 뿐, 부유한 한량이 여러 여자들에게서 특이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동일한 형식을 지니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액자식 구성의 연작 단편이라 할 수 있는데 구성은 "천일야화"가, 내용은 모리 히로시의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가 떠오르더군요. 

담고 있는 장르의 폭도 넓습니다. 서늘한 느낌, 기묘한 맛 류의 전형적인 환상 문학 이야기들 중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추억담,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추리적 속성은 전무합니다. 

그래도 환상 문학 쪽 장르물은 마음에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환상 문학 단편에 작가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결합되어 있어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건 좋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초록 벌레"

초록색 벌레가 입에 들어왔는데 그 이후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 반전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내가 아니야"

너무나 바쁜 아내를 복제한 마네킹을 사랑하게 된 남편의 이야기. 흔히 있는 설정이지만 잔잔한 전개와 마지막 여자의 말은 기억에 남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 작품집을 샀는데, 알고 있던 메로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실려있더라는 내용입니다. 작품의 메로스는 친구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는군요. 환상 문학이 일상계와 결합한 좋은 결과물이라 생각되네요.

"걸을 수 있는 낙타"

중동 지역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산 기념품인 "유리병 그림" 속 낙타가 움직이더라는 이야기. 약간 스멀스멀한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어둠의 통조림"

여섯 명의 친한 주부가 모여 라벨을 벗긴 통조림을 추첨하는 행사를 갖는데 통조림이 일곱 개가 등장했다는 이야기. 괴통조림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다는 결말은 "환상특급" 느낌이 났습니다.

"선물"

아, 이, 우, 에...로 이어지는 선물을 해 주는 남자 동료에 대한 이야기. "에가오"의 선물은 지하철에 있는 마크에 그려진 웃는 얼굴(스마일 마크)이라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로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전개가 좋았습니다.

"바다 위의 보사노바"

장거리 페리 가수가 무례하고 매너없는 손님들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비결을 그린 작품. 내용은 그냥 그런데, 비결만큼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음악은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의 귀에도 들리기 때문, 즉 공기와 같은 것으로 들을 생각이 없어도 공존하고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한다고 하네요.

"마술"

마음에 들었던 남자들이 모두 마술도구인 "P"가 그려진 상자를 꺼내더라는 일상 속 기묘한 이야기. 결말이 조금 난데없어서 아쉽기는 하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mbarvalia"

자기와 똑같은 취향의 친구가 결혼을 하자, 자신이 결혼해야 할 남자가 그 남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남자의 애독서를 바꿔치기하여 혼자 즐긴다는 내용입니다. 일상계 불륜물이랄까요? 여튼 기묘한 사고방식이 꽤 괜찮았어요.

"스이코(水虎)"

제목의 스이코는 갓파를 뜻합니다. 이야기꾼 여자의 회사 동료가 갓파의 후예라는 내용인데 만화 등에서 흔하게 보아온 설정을 일상계스럽게 전개한 것이 독특했습니다.

2016/11/19

백미진수 - 단 카즈오 / 심정명 : 별점 4점

백미진수 - 8점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한빛비즈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일본 현대 문단의 원로로 다자이 오사무와 친구이기도 했던, 단 카즈오의 4계절 음식을 다룬 에세이집입니다. 저자가 음식을 정말로 좋아하고, 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재에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단의 실력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으니 애초에 재미가 없기는 힘들겠죠? 짙은 애정이 묻어나는 재미있고 좋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묘사 역시 빼어납니다.

"바깥 껍질을 벗긴 멍게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오이와 함께 식초로 무쳐 먹으면 후두부를 콕 찌르는 것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와 맛이 난다. 잊고 있던 여름. 잊고 있던 유카타를 입은 여인. 잊고 있던 여인의 색정. 문득 입에서 후두부 언저리에 걸쳐 이런 것들을 까닭도 없이 상기시키는 듯한 희한한 느낌이다.", 예레반이라는 도시의 코냑을 설명하며 "내게 천상의 여인이 아니라 지그시 다가오는 지상의 여인 같은 맛이었다."처럼 공감각적이면서도 소재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그려낸 묘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요리를 즐겼다는 말에 어울릴만큼 인상적인 레시피도 몇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몇가지 참고삼아 정리해 봅니다.

"금병매"에 적혀있는 족발 삶는 방법.

'돼지 발의 털을 깨끗이 밉니다. 그리고 긴 땔나무를 하나만 아궁이에 넣고, 기름과 간장을 큰 그릇에 가득 채운 뒤 향신료인 회향과 팔각을 더해 잘 섞은 다음 뚜껑을 꼭 닫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좋은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서 다섯 가지 맛이 고루 갖춰지는데, 그러면 이것을 깨끗한 큰 접시에 담아 생강과 마늘을 넣은 작은 접시와 함께 찬합에 넣어...'

본인 스스로 본고장의 맛 (클램차우더?)과 비슷하다는 바지락 차우더.

우선 냄비에 물을 두세 컵 정도 넣어 끓인 뒤 바지락을 집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바로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힌다. 베이컨은 가능하면 뜨거운 물에 데쳐 작게 조각내고 양파는 잘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약한 불로 살살 볶는다. 이 때 마늘을 조금 넣고 볶는 편이 더 맛있다.

양파가 반투명한 색이 되면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볶다가 밀가루, 베이컨, 양파가 흐물흐물 이겨지면 바지락 맛국물을 붓고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성껏 섞는다. 다 풀렸다면 약한 불에서 잘 저으면서 우유를 두 통쯤 부으시라. 적당히 걸쭉하다 싶을 때까지 우유나 바지락 맛국물을 보태면서 끓인 다음 소금 간을 하면 수프는 완성이다.

이제 건더기 차례다. 바지락을 껍데기에서 분리해 조금 남은 맛굴물 속에다 헹궈 모래를 제거한다. 바지락은 기호에 따라 잘게 써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셀러리도 잘게 썬다. 그 외에 감자를 작게 깍둑썰기 해서 오 분 정도 소금물에 삶아 꺼내놓는다. 그다음 미리 만들어둔 걸쭉한 수프를 불에 올리고 셀러리와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기 시작할 즈음 바지락을 더해주면 끝이다.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고 너무 되다 싶으면 우유로 묽히고 부드러움이 부족하다 싶으면 버터를 더 녹인다.

중국의 동남참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우선 동남참게를 잘 씻은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실로 묶는다. 따로 자잘한 톱밥을 준비해 이 톱밥 속에 다진 생강, 다진 파, 후추 등을 섞어둔다. 여기에 고급술과 식초를 따라 흠뻑 스며들게 한다. 이제 동남참게의 표면을 톱밥으로 빈틈없이 감싸고, 그 위에다 잘 반죽한 점토를 동그랗게 둘러싸서 굽는다. 점토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재빨리 점토와 톱밥을 치우고 아직 뜨거운 게살을 입맛에 맞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맛의 달인에서 완벽한 찜요리 대결에 나옴직한 독특한 조리법이네요. 뭔가 걸식계도 떠오르고요. 

단순히 음식 이야기 이외의 다른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터운 작가의 인맥을 활용한 이야기들, 또 전쟁 당시에는 중국에서 보도반원 생활을 했고, 그 외 해외 여행 경험 등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기에 담고 있는 소재의 폭도 넓어요. 여기에 본인의 유쾌하면서 대책없고 화끈한 성격이 더해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 에피소드는 중국 신징 근처 러시아인 부락에서 러시아인 바우스 부부와 1년 정도 함께 살 때의 잼 만들기 에피소드입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잼 만들기를 하는데 부부가 다른 곳으로 가게되어 단 가즈오가 잼 젓기를 맡았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 까지 젓기만 해서 결과물이 잼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결말입니다. 러시아인과 보드카, 그리고 단 가즈오가 만나서 제대로 시너지를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즐겁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유용한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최근 읽은 음식, 요리 관련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로 꼽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음식과 요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이자면 "술안주라는 놈만큼 반가운 게 없다. 정말 술꾼에게만 주어진 하늘의 은혜 같다.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신의 가호를 많이 받는다니, 술꾼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은가."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대단한 애주가라는게 눈에 띄는데, 이러한 점과 대책없고 유쾌한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로산진이 우미하라(가이바라)라면, 단 가즈오는 이와마 소다츠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만에 준 4점이라는 높은 점수는 제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광팬인 탓도 클 듯 합니다.

2023/04/08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에 요시와라라는 중고업자가 방문했다. 비블리아가 꼭 구입해야 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만원>>을 팔기 위해서였다. 
비블리아의 약점을 알고 책을 거액에 팔아넘긴건 시작에 불과했다. 요시와라는 시오리코의 할아버지였던 악덕업자 구가야마의 수제자로 지에코, 시오리코를 망신주고자 음모를 꾸몄다. 그 중심에는 구가야마의 유품인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가 있었다. 
세 권의 퍼스트 폴리오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 세 권을 모두 입수한 요시와라는 경매에 책들을 출품했고, 시오리코는 전재산을 걸어서 어머니 지에코를 누르고 진짜라고 생각한 책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경매가 끝나고 요시와라는 책은 모두 가짜였다고 말하는데..... 

어쩌다보니 홀수권만 띄엄띄엄 읽게 된 인기 일상계 단편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일단은). 
마지막 권답게 드디어 다이스케와 시오리코가 결혼을 약속할 뿐더러, 시오리코의 어머니 시노카와 지에코가 가정을 떠났던 이유가 밝혀지는 등 시리즈 내내 유지되었던 여러가지 수수께끼와 사건이 모두 해결됩니다.
그 덕분인지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여러개의 단편이 아닌 긴 장편 느낌으로 오롯이 한 권이 진행됩니다. 초반부에 시오리코의 외할머니 에이코의 의붓손주 미즈키 류지의 비밀에 대한 일상계스러운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단순한 흥미요소일 뿐 내용과는 별 관계는 없습니다. 시오리코의 할아버지이자 지에코의 아버지였던 악덕 고서점 주인 구가야마 소헤이가 낸 수수께끼이기도 한, 셰익스피어의 발견되지 않은 퍼스트 폴리오는 그가 남긴 세 권의 책 중 어떤 책인지? 를 밝혀내는게 이야기의 핵심이니까요.
퍼스트 폴리오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꽤 흥미롭습니다. 고서회관 경매장에서 지에코와 시오리코의 경매 대결, 뒤이어 모녀를 망신주려고 획책했던 요시와라가 책 세권은 모두 가짜라고 밝히지만, 뒤이어 시오리코가 진짜 퍼스트 폴리오가 어디있는지 - 책 속 공간에 숨겨져 있었다! - 를 밝히는 일종의 추리쇼 등 볼거리가 많은 덕분입니다.

다만 애초에 요시와라가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해 X-ray 촬영을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건 다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수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퍼스트 폴리오인데 말이지요.
지에코가 요시와라의 음모를 미리 눈치채고 이를 방조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세 권 중 한 권이 진짜라는게 분명하다면, 모든걸 요시와라가 독점하도록 놔 두는건 바보짓이잖아요? 최소한 자기가 입수할 수 있었던 한 권은 챙겼어야 했습니다. 그게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케일이 커진건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1억엔이 넘는 퍼스트 폴리오는 작은 헌책방이 다루기에는 너무 부담이 큰 물건이에요. 그걸 작은 일본 내 고서 경매에서 처리한다는 것도 비상식적이고요. 시오리코의 책 관련 지식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 것도 시리즈 정체성을 흐립니다. 퍼스트 폴리오의 진위 여부 감정은 책에 대한 정보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책 좀 좋아한다고 이걸 감정까지 해낸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저는 헌책 관련 일상계 이야기가 주였던 시리즈 초반부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드네요. 따뜻하고 인간 냄새 넘치는 비블리아 고서당과 1억엔이 넘는 퍼스트 폴리오, 원하는 책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악당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요. 현실적이지도 않았고요.

장편 분량에 맞는 재미와 디테일은 챙기고 있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의미가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설정과 전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오롯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만 독립적으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