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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입니다.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은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니까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 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불과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지요.

그러나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그외 표지들은 실제 책이 출간되더라도 구매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 한데, 차라리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직업이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어서, 대체 이 리뷰가 무슨 기준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테니까요. 새책 소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서 일까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컬럼에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18/07/08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1,2 - 차무진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무진 작가의 800여 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2015년, 한국콘텐츠 진흥원에서 주관한 원작 소설 창작 과정에서 선정된 열두 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군요. 국내 최대의 추리 소설 애호가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터리" 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 전 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서출판 들녘에서 출간된 책을 읽어보는 것도 오랫만입니다.
참고로, 정성을 다해 리뷰를 썼지만 사용하던 에버노트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다 날아가 버려 다시 쓴 터라 내용이 두서가 없고 요약된 내용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작품인데, 이야기의 핵심인 "해인(미륵의 눈)"과 "메시아(정도령)", 그리고 정만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부터가 띄엄띄엄인 탓에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설정만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정도령" 이라고 불리우는 메시아가 태어났고, 태어날 예정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도령들은 비참하게 죽거나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하늘에서 점지한 "성모"가 정도령을 제대로 낳으려면, 관계할 때 "해인"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정도령을 성공적으로 출현시키기 위해 정도령을 보필하는 초인 "박마"가 해인을 찾아 바쳐 왔지만, 이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불사의 삶을 사는 "정만인" 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오랜 세월을 통해 자신이 해인을 가지고 성모를 범하면, 성모 속 정도령으로 잉태되어 불사의 삶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걸 알고 이를 계속 시도합니다. 불사의 삶이 끔찍해서요.

6.25가 끝난 직후 어느 날, 정만인은 불사의 삶을 사는 박마를 발견하여 그와 밀약을 나눕니다. 여태껏 수 차례 다시 태어나려 했지만 실패했는데, 성모 속에 잉태되어 있을 때 그도 가사 상태에 빠지는 탓이었습니다. 그 사이 성모를 보호하거나 아이를 지키지 못해서 낙태나 성모의 죽음 등이 일어났었지요.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성모를 지켜달라는 밀약입니다. 그가 정도령으로 태어나고 박마는 정도령을 모시게 되며, 정도령이 죽을 때 함께 죽으니 불사의 삶이 끝날 거라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박마는 정만인을 배신합니다. 배신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때 실패했던 정만인은 다음 성모가 해인을 가지고 도주한 후,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아이가 죽어야 새로운 정도령이 잉태될 수 있기에 정만인은 아이를 납치하여 죽입니다.

여기까지가 1979년 김목사의 아들 소국이가 유괴되어 살해된다는, 이야기의 서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현대로 넘어와 새로운 성모 준희가 유괴된 아들 늘해랑을 찾기 위해 마음 속 괴물 "탄하"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충동대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고학력의 혼혈 스님 원정과 손을 잡고 사이비 종교 단체 교주인 "수벌"로 거듭난 정만인과 얽히게 된다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이러한 방대한 시대에 걸친 이야기가 시대별, 등장인물별로 두서없이 뒤섞어가며 전개하는 탓에 복잡하지만 쉽게 읽히며 그만큼 재미는 있습니다. 각 시대, 등장인물 별로 한 편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한 수준인데, 그 중에서도 해인에 대한 설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6.25 직후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캐릭터부터 독특한 외팔의 괴녀 고무기부터 시작하여 다른 2명의 성모가 등장하고, 사악한 박마가 관 속에서 깨어났다가 익사를 반복했다는 내용은 이 부분만 따로 떼어 놓아 한 편의 근대 호러(?)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압도적이었거든요. 

자료 조사가 뒷받침 된 설정도 탄탄합니다. 제목부터가 정만인이 불사를 끝내기 위해 성모의 몸에 대신 잉태되면 성모, 어머니가 불길함을 느끼고 아이를 낙태하는 식으로 그 계획을 무위로 돌리곤 했다는 데에서 따 온 것으로 아주 인상적이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단편 "비형도"와 마찬가지로, 좋은 설정에 비해 이야기 전개나 구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야기에 구멍이 너무 많아요.
우선 김목사가 박마라는게 밝혀지는 반전은 놀랍다고는 해도 이는 서두의 김목사 관련 이야기를 잘못 묘사한 것이라 사기에 가깝습니다. 김목사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 소국이의 정체, 해인이 무엇인지는 물론 소국이가 성모를 범하기 전에 하늘을 속이려고 8살 이하의 어린 아이를 죽여 그 피를 생명석에 바르는 "가인" 이라는 행위를 위해 죽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목사 시점의 초반부 묘사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하나도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벌이 원흉이라는 것을 알 테니, 수벌을 만난 상황에서 바로 복수를 하는게 정상입니다. 수벌이 시키는대로 목숨걸고 김갈현을 찾을 이유는 없어요. 박마는 정도령을 보필하지 수벌 정만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김갈현이 "해인"을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에? 이는 정만인에 대한 복수와는 무관합니다. 나중에 찾아도 되지요. 병원에서 구태여 김갈현을 협박해 가며 목걸이를 빼앗을 이유도 전혀 없으며 자신이 박마라고 밝히기만 했어도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김목사 설정도 문제에요. 박마 김목사가 성모와 결혼하여 메시아 정도령을 낳았다면, 정도령이 죽을 때 박마도 죽어야 하는데 김목사는 여전히 불사라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 정만인이 박마를 설득할 때 한 말이 잘못된 것일까요?

또 준희가 원정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후, 협박 때문에 입을 다물었더라도 남편에게까지 그것을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당장은 이야기하지 못했더라도 해인을 내 놓으라는 지시를 들은 시점에서는 비밀을 공유하는게 당연합니다. 살인범보다 남편을 믿지 못한다는건 말이 안되니까요.
반대로, 모순희가 죽기 직전까지 해인을 가지고 있었다면 범인이 그것을 가져간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선샤인 피플 잔당과 수벌은 왜 준희가 그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모순희 살인 사건에 준희가 연루되었다는 건 이 시점까지는 정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준희가 자신의 목격담만 정우에게 이야기하고 해인에 대해서 숨겼다? 이것도 말이 안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경찰서에서 사건을 일으키느니 정우가 집을 뒤지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늘해랑의 유괴는 해인과는 무관한, 청선녀와 송팀장이 과거 선샤인 피플의 것이었던 눈먼 돈을 목적으로 벌인 범죄에 불과해서 괜히 이야기만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후 "가인"을 위해 늘해랑이 살해될 지도 모른다는, 늘해랑의 여덟 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극적 긴장감도 가면 갈 수록 힘이 떨어지고요. 가인을 위해 죽는 아이가 메시아일 필요는 없다는게 후반부에 밝혀지기 때문이지요. 그 외에도 김목사가 봉인한 수벌이 어떻게 김정우로 부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 설정도 그닥입니다. 주인공 중 한명인 정원은 문제 투성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 패스로 지금도 살인을 저지르곤 한다는 설정부터가 황당무계하며, 그와 관련된 일들 대부분이 억지스럽고 작위적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에 모순희 살인 사건을 목격당한 것, 해인을 손에 넣은 것 부터가 우연이니 더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그의 성욕에 관련된 묘사는 말초적인 자극을 위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읽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고요. 다른 캐릭터들 모두가 문제지만 정원 때문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인다는게 놀랍기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갖 고전들을 들먹이며 탄탄하게 구성한 설정도 결국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메시아 정도령에 얽힌 이야기로 한참을 풀어가다가, 결국 목적은 불사의 존재가 유한한 삶을 얻기 위함이었다는게 전부라는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전해주니까요. 수벌이 그동안 정도령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여 "바람길"을 열었다는 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와 흡입력은 갖추고 있는건 맞지만 여러모로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기에 감점합니다. 한국 장르 문학의 현재이자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긴 하지만, 분량과 가격은 좀 부담될 수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7/03/29

루미놀 - 최상규

루미놀
최상규 지음/청림출판

예전 "지상아" 등으로 법의학 관련 서적을 내 놓았던 청림출판에서 내 놓은 비슷한 기획의 법의학 서적입니다. 지금도 발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간 수사 연구"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묶은 것으로 국과수에 근무하신 최상규님의 법의학 수사 이야기를 담은 책이죠.

하지만 책 내용은 기대와는 좀 거리가 있더군요. 90%이상이 루미놀과 기타 방법을 이용한 혈흔 확인 및 혈액형 분석, 그리고 친자확인 검사 이야기뿐이며 약 20여년전의 이야기라서 "DNA"분석이 도입되기 이전이기에, 그리고 혈액형 분석 이외의 보다 자세한 분석방법이 등장하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미흡한 조사 결과 때문에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법의학적인 이야기는 수사의 보조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거든요. "혈흔" 만 가지고 증거를 삼기에는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니까요. 아울러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상투적인 문체도 흥미를 많이 떨어트리는데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몇몇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예를 들자면 혈흔에서의 혈액형 분석은 "땀"의 존재로 잘못 판단될 수 있다던가, 타액으로 혈액형 분비가 되지 않는 비분비형 사람이 인구의 15%정도 된다던가 하는 재미난 이야기들과, 사건 대부분이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강력사건들이기도 해서 나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딱 한건을 제외하고는 범인이 모두 잡혔다는 것도 뭔가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고요. "C.S.I"를 기대한다면 당연히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법의학의 한계를 그만큼 명확히 한 "실화집" 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이 살 만 하겠죠. "C.S.I"도 사실 구라가 대부분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 창작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 구입한 측면도 있는데 도움되는 요소가 몇가지 있었기에 만족합니다. 다름 작품에서는 뭔가 써먹야 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