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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봄 소재 미스터리 작품들

2024년 3월도 이미 1/3이 지나고 있네요. 아직은 조금 쌀쌀하지만, 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은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젊음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이런 점에서 '죽음'이 가득한 미스터리 작품과 잘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벚꽃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던가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삼월은 붉은 구렁을" 같이 제목에서부터 봄이 떠오르는 작품들도 많지만 보통 봄은 단순히 무대 배경으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도 '봄'이라는 계절 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작품을 몇 편 찾아서 소개해드립니다.

첫 번째는 기타모리 고의 "꽃 아래 봄에 죽기를"입니다. 하이쿠 동호회 회원 가타오카 소교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무연고자라는게 밝혀집니다. 회원 중 한 명이었던 나나오는 생전의 인연으로 왜 소교가 고향을 버리고 살게 되었는지?를 뒤쫓게 됩니다. 소교가 "원하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라는 싯구처럼 죽어갔기도 했지만, 소교의 사체가 발견된 방에 놓여있었던, 계절보다 빨리 벚꽃이 피어있었던 벚나무 가지가 다른 살인 사건의 증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벚꽃은 일본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재이기에 봄을 무대로 한 다른 작품에서도 주요한 소재로 사용됩니다. 사보에 매월 연재되는 단편이라는 주제로 묶인 단편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첫 번째 이야기 "벛꽃이 싫어"에서 처럼요. 오래된 아파트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으로 봄 벚꽃놀이와 벛꽃잎이 중요한 단서로 등장합니다. 아파트 이름마저도 '사쿠라기장(桜木荘)'이니, 이 역시 봄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이 두 편은 살인 사건, 방화 등의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무겁다기보다는 잔잔하면서도 가벼운 일상계 느낌의 단편들입니다. 봄이 소재이자 배경이라면 앞서 말씀드렸듯 미스터리를 잘 결합시키는건 쉽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인 '미시마야' 시리즈 6번째 작품 "눈물점" 수록작인 시어머니의 무덤"은 "벛꽃이 싫어"와 똑같이 봄의 벚꽃놀이를 소재로 삼았지만, 섬찟한 괴담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같은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게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괴담, 공포물로는 스티븐 킹의 "딸기봄"도 빼놓기 힘듭니다. 8~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시기로는 봄이지만 아직도 추운 비정상적인 시기에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내용이거든요. 봄이 봄답지 않게 춥다면, 확실히 미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봄을 주요 소재로 삼은 미스터리 작품 중 제가 떠올린건 이 네 편입니다. 다른 분들의 추천과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020/05/16

밤의 매미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2.5점

밤의 매미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일상계 추리의 시조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작품인 "하늘을 나는 말"은 이미 3년 전에 읽었는데, 후속 시리즈를 읽는게 많이 늦어졌네요. 

이번 권에는 세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 추리물임에는 분명한데, 최근의 일상계와는 다른 점들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분량입니다. 중편 분량의 이야기들은 다른 일상계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드니까요.
전작과의 차이도 보이는데, '나'의 친구들, 가족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전편만 보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문학 소녀 느낌인데, 이번 편을 보면 단짝 친구도 있는 등 나름 정상적인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듯 하여 반갑더라고요. 또 꼼꼼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성격이라는게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엔시 씨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친구와 가족 비중이 높으니 당연하겠지요. 전작에서는 직접 사건에 뛰어들어 해결하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결정적 순간에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해 주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 뿐입니다. 전작에서는 홈스였다면, 이번에는 '구석의 노인' 인 셈이죠.

그래도 장점인 순문학적인 흥취를 돋우는 문체와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으스름달밤', '밤의 매미'라는 각 이야기 제목이 대표적입니다.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귀족의 신분이지만, 현실은 헤이안 시대의 그것이 아니라 에도 시대의 벼슬아치쯤 된다. 생활수준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와 같은, '나'는 확실히 일본 문화 전공자구나! 싶은 표현도 즐거웠고요. 이런 묘사들이 이야기마다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근하고 멋진, 순문학적인 분위기가 본 편 사건과는 분리되어 있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분위기에 치중하지 않았다면 훨씬 짧게 요약될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만큼 추리적인 이야기와는 명백히 분리되어 있는 묘사들이었어요.

또 추리적으로 내세울만한 부분 역시 많지 않습니다. '일상계의 시조' 시리즈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에요. 이유는 사건들 대부분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세 편의 수록작에서 동기가 명확해 보이는건 첫 번째 "으스름달밤" 에서의 사건 뿐이며,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은 동기도 모르겠고 상황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일상 속 수수께끼를 다룬다는 명제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비일상적인 상황들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묘사와 분위기도 좋고, 읽는 것 자체는 즐겁지만 추리적으로는 그리 높은 수준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다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으스름달밤" 

나'는 친구 쇼코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에서 국문학 코너의 책 일부가 뒤집혀져 꽂혀 있는걸 발견했다. 엔시 씨와 도예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나'는,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엔시 씨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앞서 요약했던 장,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장점인 묘사는 유려하고, 분위기도 좋습니다. 작품에서 핵심적인 분위기를 잡아가는 건, 친구 쇼코의 '창작 시음회' 발표된 동명의 시구인데, 시 자체도 멋있지만 를 '밑바닥을 건넌다'고 표현하여 그 위 에 펼쳐진 무한한 밤을 의식하게끔 했다는 해석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 시구, 분위기는 쇼코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에서 책이 뒤집혀져 꽂혀있는 기묘한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분위기만 멋드러지게 만들 뿐이에요.
추리적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쇼코가 별자리를 말하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생일을 알아내는 전형적인 일상계스러운 추리는 좋아요. 하지만 책이 뒤집혀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 속 핵심 수수께끼에 대한 엔시씨의 추리는 억지입니다. 범인의 목적이 '환불'이었다는건데, 환불 목적이라면 앞서의 사건, 즉 책을 뒤집어 꽂는 사건을 범인이 일으킬 이유는 없습니다. 딱 한 번만 행할 수 있는 범죄를 위해, 그 전에 무려 3번이나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뒤집어 놓을리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사전 작업이 책 환불의 근거가 되는 책의 슬립이 잘못 꽂혀진걸 뒷받침 한다는데, 보통은 그 책을 구입한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까요?
또 책을 뒤집다가 발각될 경우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하며, '나'가 아니었다면 이 범행 자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던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아울러 라쿠고에서 본 편에 등장하는 주요한 단어에 대해 미리 설명해주는 '서설' 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 범죄를 설명하는 묘사 역시, 그리 와 닿지 않더군요. 라쿠고 및 라쿠고가 엔시 씨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한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나'가 호감을 가진 '안도 선배'의 본명이 사카이리였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나'가 쇼코에서 진심으로 분노한다는 심리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이 역시 추리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안코 + 도넛의 약자로 '안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건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6월의 신부"

가루이자와로 향하여 시간을 보내는 부분에 대한 공들인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풋풋한 대학생들의 여행을 그리고 있는데 아련하고 좋더군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또 곁다리 사건이나 이야기없이 체스의 퀸이 없어진 사건만을 다루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국 카루이자와 별장 여행을 함께 했던 다섯 명 중 한 명이 장난을 친 건 분명하니까요. '나'가 범인이 아니면 후보는 네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네 명 중 거의 그 날 처음 만난 듯한 귀공녀 미네, 가사이 선배와 요시무라 선배는 범인이라 하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가 없을테니, 에미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또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건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에미가 요시무라 선배가 체스를 두지 않고 시간을 보낸 걸 숨기기 위함이었다는 동기는 그럴듯해요. 하지만 이런 장난까지 칠 필요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딘가 다른 곳에 떨어졌다던가 하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게 상식적이죠. 실제로 트럼프 카드나 체스 말이 없어지는건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설령 이를 얼버무리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냉장고 속 달걀과 바꿔치기하고, 달걀은 휴대용 거울과 바꿔치는 등의 수고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에미와 요시무라 선배가 서로의 교제를 숨겨야 하는 상황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녁에 술을 먹으면서 미네와 가사이 선배는 어느정도 선(?)을 넘었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딱히 남녀 교제가 터부시되는 상황도 아닌데 말이지요. 여행을 떠날 때 귀공녀 미네와 가사이 선배, 에미와 요시무라 선배로 커플이 맞추어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나'가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는 일종의 추리쇼 역시, 설득력이 약합니다. 에미의 자백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밝혀내는 단서 역시 일본어 '리스 (다람쥐)'와 버금간다는 한자 '아'를 이용한 일종의 말장난이라 일본인이 아니면 어차피 알아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러한 본 편 추리보다는 차라리 '나'의 중학교 시절, 교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더 인상적입니다. 칠석은 7월 7일이니 여름같지만, 7,8,9월이 가을이라 칠석은 가을의 계어 라는 말입니다. 이유는 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름은 4,5,6월이고요. 음력은 확실히 과학적인 단위임이 분명합니다.

"밤의 매미"

언니는 교제하던 남자 미키에게 충동적으로 가부키 표를 보냅니다. 그러나 공연에는 미키가 마음에 두던 신입사원 아가씨가 와 있었고, 이를 계기로 언니는 미키와 확실하게 연을 끊지요. 문제는 사와이라는 신입사원은 이 표를 미키가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언니는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비열한 악녀가 되어 버린 상황인데, '나'가 엔시 씨의 도움으로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지요.

진상은, 언니 동료 오누키 씨가 저지른 일이었다는 겁니다. 언니는 회사 우편물을 다량으로 보내면서 미키에게 이 편지를 함께 보냈는데, 오누키씨가 미키와는 헤어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집배원에게 통사정하여 우편물을 모두 돌려받습니다. 그리고 미키 씨 이름으로 사와이 씨에게 표를 보낸거죠.

그러나 이유, 동기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오누키 씨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다른걸 다 떠나서, 우편물을 거짓말을 해 가며 집배원에게서 받아내는건 범죄입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누군가의 연애를 훼방놓고 싶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빼돌렸다 하더라도 그걸 가짜 이름으로 다시 보내는건 더 지나친, 정말이지 악행인데 오누키 씨가 미키 씨 이름으로 사와이 씨에게 표를 보낸 이유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거 봐라, 둘이 사귀고 있지 않냐!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비싼 표를 누가 보내 준다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공연에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약간의 호감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고요. 단지 공연에 왔다는게 무슨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도야 어쨌건, 결과적으로 언니가 최악의 여자가 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바보입니다.

아울러 이 이야기를 라쿠고 "미끌미끌"와 연결하려는 시도도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미끌미끌"에서 광대 가즈야가 사랑에 실패하는건 본인의 실수 때문이니까요. 그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하기에, 이야기를 엮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오누키 씨가 이 상황을 모두 사와이 씨에게 말해서, 사와이 씨는 모든걸 알고 있었지만 가련한 피해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만, 문제는 사와이 씨에게 고백했는데 언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 역시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와 언니와의 관계가 아직은 깔끔하게 끝나지 않은 느낌인데, 후속권에서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2018/08/18

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 별점 3점

조선의 탐식가들 - 6점
김정호 지음/따비

조선에서 음식을 좋아했던 유명인들과 그들이 좋아했던 음식들,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을 모아 정리한 음식, 미식, 미시사 서적입니다. 

책에 따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선비에게는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이면 충분하다는 이덕무, 이익, 정약용 부류, 그리고 지금도 미식가로 유명하며 미식과 탐식을 즐겼다는 허균, 서거정 부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탐식가' 중심의 이야기들을 주로 풀어내고 있고요. 모두 총 아홉 장에 후기까지 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앞부분, 1장에서 3장까지는 소고기 관련 이야기입니다. 소고기는 금령이 내려졌지만 사대부들은 쉬쉬하면서 찾아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맛있다고 알려진건 '우심적'입니다. 소의 염통을 양념 간장을 발라 구워 먹는 것인데, 왕희지에게 대접했다는 고사 때문에 귀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많이 먹었다고 하네요. 유래도 그럴듯하지만 맛도 괜찮을 듯 한데, 왜 지금은 먹지 않는건지 궁금해집니다.
조선 시대에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비싼 음식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초식동물인 소와는 다르게 잡식성인 돼지는 먹이 문제로 보편적인 육류로 자리잡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돼지고기가 한 근에 1전 2푼, 소고기는 한 근에 7, 8 푼이었다고 합니다. 1푼을 대충 만원이라고 치면 소고기 600g에 7~8만원 선이니 괜찮은 가격이군요.
또 이렇게 소고기가 나름 널리 퍼진 덕분에, 원래 음력 10월 초하룻날은 소고기를 구워먹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는 날도 좋지만 이런 우리의 전통도 계속 이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소고기로 유명한 횡성군에서 시작하면 딱이지 않을까요?

4장에서 알 수 있는 당시의 개고기 사랑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정약용이 개고기 애호가로 몸소 레시피를 편지에 써 보낼 정도였다니까요.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로 편지가 마무리되는데 정말 좋아한다는게 절절히 느껴집니다. 심지어 왕실 연회에도 올랐다니 말 다했지요.

9장에서의 왜관의 승기악탕을 좋아했던 조선 사대부들, 그리고 이게 현재의 스키야키로 이어지는 역사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저는 여태까지 "스키야키"인 줄 알았는데, 원래 삼나무 상자에 끓여먹는 '스기야키'라는게 상당히 의외였어요. 원래 조선에서 '승기악탕'은 맛이 뛰어난 음식을 나타내는 별칭으로 '도미면' 이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관 연회에서 스기야키가 조선 관리들에게 대접된 후, 빙허각 이씨의 책 "규합총서"에서 왜관음식으로 닭찜 '승기악탕'이 소개되었고, 한글학회의 '큰사전'을 통해 '승기악탕'은 도미면과 스기야키의 조리법이 합쳐진 새로운 요리로 정의된게 현재에 이르렀답니다. 최근 '편백찜' 이라고 편백나무 상자에 숙주를 깔고 그 위에 얇게 썬 소고기를 얹어 쪄 먹는 음식이 유행하는데, 이왕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거라면 조선 최고의 음식이었던 '승기악탕' 을 현대식으로 만들었다! 고 하면서 홍보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레시피를 조금 바꾸던가, 도미면같이 생선을 재료로 쓰는 메뉴를 추가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렇게 좋은 내용이 많지만 글이 좀 정리가 안된 느낌이 강해서 담고있는 내용만큼이나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아서 별점은 3점입니다. 조선 시대 식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