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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4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잇폰기 도루 / 김은모 : 별점 2점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4점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서가 없어서 수사가 난항을 겪던 와중에 진범 '백신'이 다이요 신문의 기자 잇폰기 도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인간은 바이러스이며 자신은 백신이라며 잇폰기 도루와 다이요 신문 지면을 빌린 토론을 제안했다. 잇폰기 도루는 범인의 체포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토론에 응했고, 적자로 치닫던 다이요 신문의 경영도 급속도로 회복했다. 그리고 백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발표된 뒤, 잇폰기에게 에바라 요이치로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에 배달되었던 예고장을 들고....

신인작가 잇폰기 도루의 작품입니다. 제 27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에서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우수상 수상작이었다고 하네요. 드라마로까지 제작될 정도니 꽤 인기를 끈 듯 합니다. 정통 본격물 애호가로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의 권위를 잘 알고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문사 내의 조직 체계와 구성,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 신문사의 경영 상황 등 신문에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가 61년 생으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데뷰했다는데, 분명 신문사에서 일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전성기 정통 사회파 추리물이 연상될 정도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대조'를 통해 양 쪽 모두를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사용한게 독특했어요. 신문이 수행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역할과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의 대조, 백신의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주장과 그걸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광기와 추악함 설명과 함께 에바라 요이치로 시점에서 에바라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대조시키는 식입니다. 아울러 연쇄살인범이 신문 기자와 신문 지면을 통해 토론을 벌인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로왔으며, 살인범 에바라가 잇폰기 도루에게 집착한 이유가 아들 요이치로의 친부였기 때문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요소를 잘 살렸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개의 핵심인 '토론' 부터가 문제니까요. 비슷한 주장이 반복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인 내용까지 인용해가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은 하지만, 길게 묘사될 내용은 아니었어요. 신문에 실렸을거라 생각되는 글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백신의 성명을 기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식의 기사 형태가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전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왜 토론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부터 부족합니다. 에바라가 잇폰기에게 구태여 연락을 해서 요이치로의 친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이 부분을 뺀다 하더라도 전개에 별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바라가 과거 아동 학대의 피해자로 잘 성장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암에 걸린 아내의 사망으로 갑자기 분노가 폭발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여러 등장 인물들이 모두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불필요한 일종의 맥거핀일 뿐입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기대해 볼 만한 정통 본격물적인 요소도 기대 이하입니다. 진범이 에바라였다는 반전 자체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잇폰기에게 보낼 편지를 아들 요이치로가 봤다고 착각한 나머지,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식으로 둘러댔지만 자기가 받은 예고장과 실제 보낸 예고장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은게 발목을 잡는다는 상황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예고장을 언제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게 문제에요. 이 탓에 독자들은 공정하게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래서야 정통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지요. 

불특정 다수라 생각했던 피해자들의 연결고리가 '상수리 나무집'이라는 아동 보호 센터에 맡겨진 아이가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과 취재한 기자들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들 신상부터 파악하는게 수사와 취재의 기본이 아닐까요? 물론 저 단서만 가지고 진범 에바라를 찾아내는건 힘들었겠지만, 최소한 동기만큼은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에바라가 게가사와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행했던 여러가지 공작은 눈여겨볼만 했지만, 교수의 알리바이가 없었던건 어떻게보면 '운'의 영역이고, 신문사에서 협박 전화를 걸었던게 발각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벽하게 누명을 씌웠는데, 잇폰기 도루의 추리만 듣고 경찰도 에바라가 범인이라고 여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범행 현장에 남겨졌던 담배 꽁초의 DNA는 게가사와 교수의 것이었고, 게가사와 교수 연구실에서 백신이 편지를 보낼 때 썼던 봉랍과 스탬프가 발견되었으며 그 외 여러가지 증거들 모두가 게가사와 교수가 범인임을 가리키니까요. 백신의 편지보다 훨씬 명확한 증거잖아요?

또 사회파 추리물같았던 부분도 변죽만 올리고 끝나서 아쉽습니다. 특히 적자를 보던 다이요 신문이 살인범과의 토론으로 돈을 벌어서 기사회생한다는 딜레마를 잘 끝맺지 못한 탓이 커요. 괜히 다이요 신문 관계자가 범인이 아닐까하는 분위기만 살짝 풍기는게 전부거든요. 이런 사회파스러운 내용과 정통 본격물스러운 내용이 잘 결합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분리된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아예 사회파다운 이야기로 풀어내던가, 아니면 보다 본격적인 요소를 도입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양 쪽 모두에서 기대 이하인 이도저도 못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2020/07/17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이치카와 유토 / 김은모 : 별점 1.5점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 4점 이치카와 유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국에서 개발한 소형 신예 기낭식 비행정 젤리피시의 보급이 확대되던 어느날, 젤리 피시 개발 주역인 UFA사의 기술개발부 멤버 6명 전원이 탑승한 신규 시험용 기체가 추락하여 불타버렸다. 기술 개발부 멤버도 모두 불에 탄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들 모두 불에 타기 전 살해당했다는 검시 결과가 드러났다. 독으로 죽은 두 명은 누군가 시체를 단정하게 놓았으며, 총에 맞은 사체는 남은 흔적이 근거리에서 맞은게 아니었다. 칼에 찔려 죽은 사체는 칼이 뽑혀 있었고 뒷통수를 둔기로 타격당해 죽은 사체는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마지막 사체는 머리 등이 토막나 있는 상태였다..

형사 마리아와 렌 컴비는 신규 젤리 피시 개발을 의뢰한 공군과 함께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세상에는 참 많은 상이 있습니다. 추리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상도 많습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은 많은 신인상 중 하나입니다. 신인상 중에서는 최초로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1989년 시작되어 2020년 30회 째 수상작이 발표되었는데, 역대 수상작 중 제가 읽어본건 가노 도모코"일곱가지 이야기", 곤도 후미에"얼어붙은 섬", 아오사키 유고"체육관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입니다. 작품들 면면을 보면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작품들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다는게 허언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26회 (2016년) 수상작인 이 작품 역시 본격 추리물 애호가로서 큰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대대로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악천후로 접근, 탈출이 어려운 등산로도 없는 설산 구석에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젤리피시가 추락하였는데, 6명 모두 타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탈출했나?'가 핵심 수수께끼인데, 이를 '젤리피시는 원래 2대였다!'라는 대담하고 스케일이 큰 아이디어로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멤버들은 공군의 요청 사항을 검증하기 위한 비교 대조 실험을 핑계로 3명씩 나누어 젤리 피시에 탑승했으며, 범인이 모두를 죽이고 한 척을 불태운 뒤, 남은 한 척을 타고 탈출했던 것이지요.

사고가 일어나고, 한 명씩 살해되는 과정과 함께 사건 발생 이후 현재의 수사 과정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는데, 사고 당시 승무원들 시점의 묘사가 이루어짐에도 이들이 함께 한 배에 타고 있는게 아니라 나누어 타고 있다는걸 교묘하게 숨기는 전개도 제법입니다. 서로 만나는 경우는 정박지에 한하고, 운항 중에는 같은 젤리 피시에 탑승한 사람들끼리만 마주치며, 통신은 무전기로 하고 있는 식으로 독자가 트릭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서술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전개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여섯 명의 탑승자 중 마지막 인물이 줄곧 이야기에 등장하던 에드워드 멕도웰이 아니라 다른 기술개발부 멤버인 사이먼 애트우드라는게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도 역시 서술 트릭에 가깝습니다. 범인인 에드워드가 미리 토막낸 사이먼의 시체를 집에 넣어 몰래 숨긴 뒤, 자신은 탈출하고 시체를 남겨놓은 건데, 마지막까지 이를 잘 숨겨서 충격을 배가시키는 솜씨는 일품이에요. "십각관의 살인"에서 모리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과 비슷한데, 그만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젤리피시 제조에 쓰이는 화학식을 이용한, 13년 전 리베카 자살 위장 사건 트릭도 괜찮습니다. 문을 틀어막은 플라스틱 조각은 밖에서 넣을 수 없었다는 상황을, 밖에서 부드러운 상태로 밀어넣은 뒤 화학 반응을 일으켜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여러가지 트릭들이 등장하고, 잘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다른 수상작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만화적인 인물들로 만화적으로 가볍게 써내려간 탓입니다.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마리아와 렌 컴비가 대표적입니다. 거유의 몸매 좋고, 어딘가 칠칠맞은 마리아와 딱 부러지고 냉정침착한 렌의 조합부터 지극히 만화적이고 평면적이에요. 수사 과정에서 빚는 갈등, 티격태격도 모두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요. 갓 대학에 입학한 리베카가 천재라서 젤리피시를 만드는 공식을 완성했다는 설정도 만화적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젤리 피시 내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 묘사도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작품 속 캐릭터 중 자신만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는 전무합니다. 80년대, 비행선이 날아다는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건 괜찮아요. 젤리 피시의 제조 방법과 그 존재가 트릭의 핵심이니만큼, 이런 기계가 떠다니는 무대가 필요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묘사도 모두 유치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비행정이 2대였다는 핵심 트릭은 좋지만 범행 자체의 설득력은 낮습니다. 모두 악당이기는 하지만, 자살로 보이는 사체를 옮겨 완벽한 자살로 위장하고, 연구 성과를 독차지한게 과연 죽어 마땅한 범죄일까요? 연구 성과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걸 리베카의 노트로 밝혀낼 수 있다면 더더욱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서 사회적인 매장을 지켜보는게 더 큰 복수일테니까요. 최소한 복수를 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그들의 영향력이 바닥에 떨어진 뒤 하는게 더 현실적일겁니다.
그리고 6명 중 유일하게 죽어 마땅한건 리베카를 능욕하고 살해한 윌리엄 뿐입니다만,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일단 멤버들을 죽이고 시작하니 이래서야 누가 악당인지도 모를 지경이에요. 목숨을 걸고 6명이나 살해한 이유가, 13년 전 몇 번 말을 나눈 뒤 사랑에 빠져서 그랬다는 동기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묘사가 유치해서 에드워드의 마음이 전혀 와 닿지도 않았고요.

트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헛점 투성이입니다. 사건에 사용된 젤리피시는 새로 만든 것과 첫 개발자 (로 알려진) 교수가 소유하고 있던 영호기를 개조한 것 두 대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젤리피시는 거의 백만 달러에 이르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경찰과 주변 인물들이 그 존재를 아예 모른다는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거의 집 한채 크기의 비행정이 2대가 비행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석연치는 않고요. 시간차를 두고 비행했더라도, 분명 눈에 띄었을텐데 말이지요.

증거도 빈약합니다. 마리아가 증거라고 이야기한, 젤리피시의 잔해가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는 암벽 밑이 아닌 남쪽에 치우쳐져 발견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사고 후 눈사태가 일어났다는 설명도 있고, 크고 무거운 기체가 비상 착륙했다면 그게 어디건 착륙 위치에 머물러야지 암벽 밑에 옮기지 못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사이먼의 시체와 5명이 비행한게 아니라, 비행정에는 6명이 탑승했다는 증거가 정박한 체크포인트 다섯군데에서 일용품을 산 행위라는 것도 어설픕니다. 물건을 산 사람이 전부 다른 사람이라는게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지도 않았고 교수가 물건을 사러 내리지 않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설령 술에 절어 있는 교수를 제외한 서로 다른 5명이 번갈아 물건을 샀다고 한 들, 그들 중 한 명이 사이먼 애트우드가 아니라 에드워드 맥도웰이라는게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죽은 여섯 명이 모두 살해당했다는걸 곧이 곧대로 믿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먼 거리에서 총이 발사되도록 한다던가, 뒷통수를 둔기로 맞게 만든다던가, 죽은 뒤 칼이 뽑히던가 하는 식의 트릭은 많잖아요? 현장이 불에 탔다면 이런 트릭을 위한 흔적을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솔직히 말해 범인 에드워드가 누군가가 다 죽이고 자살한 것처럼 현장을 조작하지 않아서 사건을 미궁에 빠트린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5명이나 (정확하게는 4명) 죽인 살인범이 사건을 일부러 미궁에 빠트릴 이유는 없어요.

범행을 위한 전개도 엉망입니다. 비교대조 실험을 핑계로 2척이 비행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이먼이 비행에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빌이 사이먼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에드워드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야 했는데 말이죠. 에드워드가 정말로 살인을 계획했다면 직접 사이먼을 살해하고 그가 도주한 것처럼 꾸민 뒤, 핵심 멤버로 비교대조 실험을 내걸어 2대의 운항을 끌어내는 게 타당했습니다. 사이먼을 죽인 뒤 진정한 복수귀로 거듭났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식으로 말이지요.

살인 계획도 스케일은 크지만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젤리 피시 2척의 자동 항행 프로그램등을 건드려 악천후 속에서 설산에 착륙하게 만든다는 계획부터 그러합니다. '천운'이 따른 덕분에 두 척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고 범인이 직접 이야기할 정도거든요. 네빌을 독살시킨, 컵에 독을 넣는 방법도 운에 의지한건 마찬가지고요. 크리스가 몰래 가지고 온 총의 존재를 몰라 위기를 맞는다는 돌발 상황이야 있을 수 있다 쳐도, 위기를 넘기는 것도 순전히 운이고.... 마지막 생존자인 윌리엄에게 칼과 총이라는 무기를 모두 넘겨주고 습격한다는 마지막 살인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총은 넘겨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한 명의 응징자에게 여러명이 차례로 살해된다는 이야기를 보시려먼 차라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십각관의 살인"을 추천드립니다. 같은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도 "얼어붙은 섬"이나 "시인장의 살인"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클로즈드 서클 계열인데 이 작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작품은 지나칠정도로 만화적이니만큼, 만화화되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만화적이라는 점에서는 아유카와 데쓰야 상이 아니라,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었다면 차라리 납득이 되었을 듯 합니다. 메피스토 상은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만화적이고 가벼운 설정의 작품에 수여되곤 했으니까요.

2019/01/13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시인장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립 신코 대학의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 아케치 교스케와 조수? 하무라 유즈루는 소녀 탐정 겐자키 히루코의 부탁으로 영화 연구회 여름 합숙에 참가했다. 영화 연구회 합숙은 이상한 협박장 때문에 취소되기 직전이었던 탓에, 외부인의 참석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합숙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급작스러운 좀비떼의 습격으로 일행은 3명의 사망자를 낸 채 합숙 장소인 '자담장'에 갇히고 말았다. 일행은 여러가지 바리케이트로 좀비의 습격을 막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려 했지만 첫 날 밤이 지나고, 영화 연구회 회장인 신도가 좀비에게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문제는 신도의 방은 좀비가 들어올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점이었다....

신인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데뷰작으로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 2018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등 온갖 상을 휩쓸었던 화제작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유명세만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다라메 기관" 이라는 정체 불명의 연구소에서 마지막 테러를 위해 선택한 것이 좀비 바이러스의 살포로, 테러의 성공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 좀비물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이미 좀비의 특성 자체를 핵심 트릭으로 써 먹은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미국을 무대로 시작부터 좀비물임을 드러내며 분위기가 살짝 블랙 코미디 느낌인데 반해, 이 작품은 초중반의 좀비 등장 전까지는 상큼한 대학교 신입생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는 전형적인 일본풍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덕분에 좀비가 처음 등장할 때는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갑자기 좀비물이 되는 셈이니까요.

또 좀비가 처음 주인공 일행을 습격하는 담력 시험에서 신코대학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인 '신코의 홈즈' 아케치 교스케 가 바로 좀비에게 물려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물론 아케치 교스케는 이름과 별명만 거창한 단순한 추리 소설 매니아로 별다른 능력은 없으며, 진짜 명탐정은 겐자키 히루코라는 설정은 진작부터 있기는 했지요. 그래도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탐정 에가미 지로 정도였던 초반부 비중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습니다. 흡사 영화 "파이널 디씨젼"에서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활약도 못하고 죽어버리던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다양한 수상 경력에 값합니다. 첫 사건인 영화 연구부 부장 신도 살인 사건이 그 중에서도 가장 괜찮아요. 밀실에서 좀비에 물려 죽었는데, 좀비가 어떻게 밀실에 들어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가 핵심으로, 신도의 연인인 호시카와의 존재와 좀비의 특성을 잘 활용한 괜찮은 트릭이 등장합니다. 좀비가 된 호시카와와 신도가 사투를 벌일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도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등 세세하게 파고들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무랄데 없습니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아케치 외의 다른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고전 본격물 애호가인지라 화자인 하무라가 밴 다인 (반 다인)과 쓰즈키 미치오도 모르는 미스연 회원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건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미스연 회원들이 즐겨 읽는다는 라이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잘 모르고, 태생적으로 사건을 불러 일으켜 희생자를 만드는 소녀탐정 히루코 설정도 좋아요. "천재지변급으로 희생자를 만드는 인물" 들인 코난김전일 캐릭터에 관련된 인터넷 농담을 조금 더 진지하게 구현해 놓았는데, 본인 스스로 희생자를 줄이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를 한다는 이유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하무라를 원한 이유가 '조수'가 있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럴 듯 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살인 사건인 다쓰나미 살인사건부터는 여러모로 애매해집니다. 범인의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한들, 좀비가 된 다쓰나미를 또 죽인다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동상을 옮기는 등 엄청난 수고가 추가로 필요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위험한 방법으로 자신과 다른 일행의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행위인 탓입니다. 동상을 이용해 다쓰나미의 몸무게 이상으로 탑승이 불가하게 조작해 놓았다 한 들, 좀비들이 다쓰나미를 끌어내 먹어 치우고 다른 좀비가 타고 2층으로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좀비 설정에 너무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행 사전 준비를 위해 카드키를 바꿔치기하고, 그 순간에 CD 플레이어의 음악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세 번째 살인 사건인 나나미야 살인 사건은 트릭도 뭐도 아니라서 딱히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 대단원도 그닥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고요. 좀비가 몰려드는 와중에 펼쳐지는 추리쇼라는 상황 설정만 긴박할 뿐,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습니다. 범인도 하무라 아니면 시즈하라 정도로 압축되고 있던 상황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좀비물을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와 엮어 본격물스럽게 만든, 일종의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첫 번째 사건과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본격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아 감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 느낌은 나쁘지는 않아요. 전형적인 좀비 호러물을 박진감있게 묘사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맛도 분명 있고요. 1급 추리물은 아니지만 1급 오락물임에는 분명하다는 점에서 여러 상을 휩쓴 이유도 수긍은 갑니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인상적인만큼 좀비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5/07/20

체육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5점

체육관의 살인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의 밀실과도 같은, 체육관의 암막이 쳐진 무대 뒤에서 방송부 부장 아사지마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탁구부 부원 유나는 존경하는 선배 사가와 부장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자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학교 제 1의 천재 우라조메 덴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10만엔을 받고 사가와의 누명을 벗겨준 우라주메는 추가요금 5만엔으로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약속했고, 사가와와 유나는 그것을 수락하는데...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신진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데뷰작.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죠. 작년에 출간되어 이런 저런 곳에서 평이 좋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전 황금기 본격물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니까요.

일단 작가의 별명이 허명은 아니더군요. 저는 본격물이라면

  1. 근사한 트릭이 등장해야 함
  2.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공유되는, 일견 사소해보이는 단서들로 사건이 해결되어야 함
  3. 트릭과 사건의 해결은 탐정의 추리를 통해야 함

정도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정도로 상당히 그럴듯한 본격물 얼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탐정인 우라조메가 정말로 사소해보이는 단서들 - 화장실에 버려진 우산, 젖지 않은 포스터, 주머니에 넣었을 때 균형이 맞지 않는 유류품, 바로 재생되는 DVD 플레이어 등등등 - 로 추리하는 과정이 대단합니다. 논리적일 뿐 아니라 이치에 합당해서 무릎을 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추리쇼 역시 고전 본격물에 등장하는 그것이지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밀실 트릭도 현실적이고 그럴싸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장벽이라고 생각했지만 원래는 운송수단이다! 라는 것인데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어요. 앞부분 프롤로그에서 일종의 서술 트릭과 같은 재미를 주는 것도 정말 기가 막혔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백합니다. 우선 사건의 현실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게 큰 문제에요. 고등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컨닝한게 들켰다고 사람을 죽인다는 동기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범인이 아사지마를 살해하고 증거를 회수했다 치더라도 아사지마가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전무합니다. 대표적으로 작중에서도 아사지마가 이전에 하리미야의 범행을 촬영한 것은 부원들이 모두 알고 있었잖아요?

게다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밀실 및 기타 증거는 계획적인게 아니라 대부분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밀실이 된 것은 미호가 아사지마의 부탁으로 오른쪽 공간에 숨어있던 것이 시발점이었고(하필이면 가장 약한 미호에게 부탁한 것도 에러고), 연극부가 일찍 도구를 옮겨 오지 않았다면 성립되지 않는 밀실이니까요. 아울러 미호가 문에서 나와 문을 두드리고 달아나는 것을 사오토메가 목격했다는 마지막 증언도 맹점이에요. 만약 미호가 숨어있지 않았다면, 그 문으로 마사키가 나오는 것을 사오토메가 목격했을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완전범죄도 뭐도 아니죠. 이러한 점에서 정교하게 잘 짜여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 사가와가 미호를 알아채지 못한 것 역시 구태여 사건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덧붙여 캐릭터의 매력도 많이 부족해요. 우라조메가 천재 오타쿠라는 것은 특이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십년 전에 등장했던 재수없는, 잘난척하는 천재 명탐정과 다를게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예컨데 반 다인이나 엘러리 퀸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읆는 것과, 우라조메가 만화 대사를 인용하는 것의 차이는 출처의 차이일 뿐 동일합니다. 이런 천재형의 잘난척 대마왕 명탐정은 정말 싫어하는데 2010년 이후 또 보게될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고전 본격물의 얼개에 만화적인 설정을 덧붙여 꽤나 그럴듯한 본격물을 창조해낸 역량과 아이디어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본격물이라고 보기에는 앞서 말했듯 단점도 많습니다. 그래도 고전 본격물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정통" 추리물이니까요. 데뷰작인 것도 감안해야 할 테고요. 후속작을 기대해 봐야 겠네요.

2010/09/21

얼어붙은 섬 - 곤도 후미에 / 권영주 : 별점 3점

얼어붙은 섬 - 6점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찻집 호쿠사이야를 운영하는 아야메와 나쓰코, 찻집 단골손님 토끼군, 나쓰코의 애인 무쓰군 등 여덟 명이 여행을 떠났다. 세토 내해의 무인도 별장에 도착한 다음 날, 아야메의 정부인 도리코의 아내 나나코가 밀실 안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이후 그들은 연쇄 살인의 회오리에 휘말리는데...

제4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한 곤도 후미에의 데뷔작입니다. 줄거리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정통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물입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구태의연하고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진부하고 뻔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작가다운 섬세한 심리 묘사에 더해, 화자가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서술 트릭적인 장치가 녹아 있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또한,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현실적이라 좋았습니다. 어중이떠중이들로 구성된 여행객들 사이에 명탐정이 한 명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트릭도 괜찮은 편입니다. 첫 번째 밀실 살인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릭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의 트릭도 논리적으로 타당했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지는 현실성이 돋보였으며, 단서 제공도 매우 공정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행이 섬에 갇히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쿠 씨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행동과 예상치 못한 날씨 때문이었다는 점, 이후 벌어진 살인 역시 우발적이고 운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건의 동기가 애매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왜 죽인 걸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앞서 이야기한 트릭 역시 결국 정상적인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다면 쉽게 밝혀질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만약 첫 번째 나나코 살인 사건 발생 후 일행이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경찰을 불렀다면? 구부러진 열쇠라는 단서, 모두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조합하면 범인은 금방 밝혀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굳이 무인도까지 와서 사건을 벌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차라리 도시에서 사고로 위장하는 것이 훨씬 손쉬웠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특유의 작위성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낡은 설정을 뛰어넘을 만한 특별한 요소를 찾기도 어려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괜찮은 편입니다. 다른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물과 달리 트릭에 매몰되지 않고 이야기 전개를 이치에 맞게 풀어가는 솜씨는 데뷔작이라는 점을 잊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