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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 - 권오길 : 별점 3점


이전에 읽었던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의 저자이신 권오길 님이 쓴 후속작.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생물과 그와 관련된 우리말, 속담을 재미나게 설명해주고 있는 구성입니다.

한 꼭지당 4~5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분량 안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근무했던 경력답게 요점을 잘 짚어줍니다. 처음 알게 된 사실도 굉장히 많고요. 개구리, 올챙이가 친족을 안다는 이야기처럼요. 한 수조에 서로 다른 두 어미에서 태어난 올챙이를 뒤섞으면 두 패거리로 나뉜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야기는 과연 허튼 이야기가 아닌 셈이지요. 참고로 이는 근친교배를 막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구리 편에서 더 인상적인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 신드롬', 즉 찬 물에 개구리를 넣고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그대로 있다가 죽고 만다는 이 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개구리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네요.
문신의 원리, 왜 레이저로 문신을 지지면 지워지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속에서 이물질을 거대 세포가 라이소자임 효소로 녹여버리는데 문신 먹물의 탄소 알갱이는 그대로는 너무 커서 처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레이저로 태우면 탄소 입자가 작은 가루로 부서져서 거대 세포가 처리하는 방식이지요. 저는 레이저로 태워서 없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까는 이유는 단지 향 때문이 아니더군요. 솔잎에 든 파이토알렉신이라는 항생 물질이 송편이 상하는걸 막아주기 때문이랍니다.
금슬의 대명사인 원앙도 번식과 생존에 유리한 다종 재배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양한 수컷과 관계를 맺는다는 이야기도 신선했어요. 원앙 새끼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 무려 40%가 아비의 유전자와 달랐답니다.

우리말 관련 내용도 배울만한 게 많습니다. 흔하게 쓰는 "쑥맥" 이라는 표현은 "숙맥불변", 즉 콩(숙)인지 보리(맥)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쑥맥"은 뜻이 조금 바뀌어서 약간 어리버리하고 숫기없는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많이 쓰이는데 앞으로는 말 조심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당장은 좋지만 장래에는 해가 된다는 뜻의 속담입니다. 곶감은 맛있지만 대장의 수분 흡수를 돕는 타닌이 많아서 과다섭취하면 변비로 고생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미꾸리라는 이름의 어원부터 그러합니다. 미꾸리나 미꾸라지 모두 아가미로 호흡하지만 물 속에 산소가 적어지면 물 위로 올라가 입으로 공기를 마시고 내려갑니다. 공기가 창자로 흡수되고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항문으로 방울방울 내보내는 창자 호흡을 하고요. 이를 본 사람들이 밑이 구리다고 하여 '밑구리'라고 부른게 어원이라고 합니다.
'곤드레만드레 취했다'는 표현을 곤드레 나물에서 따 왔다는 추측도 그럴듯합니다. 엉겅퀴의 어린 잎줄기가 곤드레인데 이를 한소끔 데치고 나면 숨 죽어 푹 우그러든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두루미라는 이름도 순 우리말로 '뚜루루루 뚜루루루' 우는 소리에서 따왔다고 하고요.
'갈등'은 당연하게 써 왔지만 그 어원에 대해 궁금해 했던 적이 없었는데 칡과 등나무라는 뜻이라네요.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힌 것에 따온 말로 복잡하게 뒤엉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걸 비유하는 말이랍니다.
순대국밥집에서 흔히 보는 '오소리감투'라는 말의 유래도 재미납니다. 돼지 위장이 워낙 맛이 좋아서 손질하다보면 누군가가 슬쩍하여 사라지기 때문에 '오소리'라고 비유했다는군요. 한번 없어지면 도무지 행적을 알 수 없다는 뜻으로요. '감투'는 말 그대로 맛 좋은 '감투'를 의미하고요. 이외에는 돼지 위장의 두툼한 빵덕모자같은 겉모습에서 '오소리 털가죽으로 만든 벙거지'인 '오소리감투'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답니다.
참나뭇속 참나무 육형제 명칭 모두 어원이 기발합니다. 나무껍질에 깊은 골이 파여 있어 '골 참나무'라고 부르던 굴참나무, 잎이 가장 작아 '졸병 참나무'라 부르던 졸참나무, 가을이 되어도 잎이 오래 달려 있어 '가을 참나무'라고 부르던 갈참나무, 나무꾼이 짚신 바닥이 헤지면 잎을 짚신 바닥에 깔아 신었다는 신갈나무, 잎사귀로 떡을 싸 놓으면 떡이 상하지 않고 오래 간다고 하는 떡갈나무, 임진왜란 때 피난간 선조가 수라상에 오른 도토리묵에 반해 자주 찾게 되어 밥상에 자주 오른다는 '상술'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상수리나무 모두 재미있어요. 아, 대단합니다.

이렇게 재미와 지식, 두마리 토끼를 잡고 있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도판은 부실하고, 심지어 몇몇 이야기는 설명도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에서 왜 탐스럽고 암팡지게 생긴 갓난 남자아이를 떡두꺼비에 비유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특히 권해주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이를 좀 각색하여 아이들 대상으로 한 만화나 웹툰으로 만들면 훨씬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정이 넘쳤던 우리네 시골과 장난꾸러기 아이들, 그리고 경성제대에서 공부했지만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을 얻은 '인테리'가 시골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하여 이런저런 지식을 전해준다는 식으로요. <<검정고무신>>의 학습만화 버젼처럼 그리면 좋을 것 같은데, 유능한 작가들의 도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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