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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세한도 - 박철상 : 별점 3점

세한도 - 6점 박철상 지음/문학동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세한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림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이 책은 저 같은 무식자를 위한 책입니다. 왜 "세한도"가 대단한 그림인지를 설명해 주거든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한도"라는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김정희의 일생과 그의 성취를 조명하는 부분으로요. 때문에 이 책은 예술, 문화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사 서적이기도 합니다.

그중 김정희의 일생은 정확하게 말하면 생애 전체는 아니고,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국 연행길에 올라 당대의 지식인들(특히 스승으로 모신 옹방강)과 교류하며 벼슬을 이어가다가 귀양을 가서 "세한도"를 그리게 될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의 분량이 약 100여 페이지인데, 그간 깊이 알지 못했던 만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귀양을 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때문이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윤상도의 상소로 촉발된 국문 과정이 소상하게 묘사된 부분은 마치 대하 사극을 보는 듯한 흥미를 준 덕분입니다.

이어지는 "세한도"라는 작품에 대한 해설 역시 마찬가지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지에 대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이 그림이 문인화의 정점으로, 이른바 ‘선비의 기상이 나타나는’ 그림이라는 겁니다. 묘사력보다는 품격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구방고’ 고사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을 볼 수 있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고사인데, 이런 고사를 자연스럽게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쌓은 공부의 깊이가 엄청나며, 그 공부의 결실이 바로 "세한도"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추사의 편지들과 그가 소장했던 책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됩니다. 또한 "세한도"가 귀양 시절 자신을 위해 여러 책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세한도"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됩니다. 문인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 거친 터치(적묵법, 초묵법)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특히 그림의 구도와 인장의 관계를 분석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그림에 쓰인 글, 그리고 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새로운 감상법은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각을 열어주었고요.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깊이 알지 못했던 주제를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조명해 주는, 거의 리뷰에 가까운 연구서입니다.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도판이 생각만큼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책의 판형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공부가 많이 되었고 느낀 점도 많았지만, "세한도"가 정말 그렇게까지 뛰어난 그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글씨를 제외한 그림만 놓고 본다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아직도 어렵고, 선비의 기상이라는 것도 특별히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아울러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점이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공의 깊이와 작품의 결과물이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2017/11/25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4점

오래된 디자인 - 8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부제는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입니다. 저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하시는 디자이너로 동문 선배님이시더군요. 알라딘 등을 통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에세이인데,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관점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글재주도 빼어나서 읽기도 편하고요. 읽기 편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이 책 맨 앞에 수록된 도올 김용옥의 서두만 읽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올의 글도 물론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그러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서두만 읽었을 때에는 본문도 이렇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을 정도인데 무척 다행이었어요.
또 단순한 생활 속 신변잡기 같은 글들 뿐 아니라 복잡하거나 사연있는 디자인이나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글들마저도 쉽게 읽히는건 정말이지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글이 좋은 예에요. 요강에서 시작하여 변기로 이르는 과정과 변기가 미술관에 놓인 사연을 통해 "다다이즘"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다다이즘은 "예술품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한 제도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 보다는 호랑이 요강이 더 정이 가고 좋다!라고 마무리되고요.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은 위한 삶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요약하니 좀 두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글을 한 번 읽어보시면 호랑이 요강과 샘의 차이가 무엇인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세한도를 디자인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에세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 그림인지는 관련된 서적을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편집 디자인" 관점으로 분석해서, 세한도는 "그리드"시스템, 모듈 관점에서 보아도 완벽하다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니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또 명품, 유명 디자이너가 손댄 것들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재활용 디자인 등도 중요하다고 서술한 관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유명 디자이너가 손 댄 것이 당연히 좋고 예쁘겠지만 단지 미학적,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는 관점보다 중요한건 삶과 생명 그 자체라는 논리로 디자이너가 만든 가죽으로 된 이케아 쇼핑백이 수백만원에 팔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저자는 다른 글들에서도 허울뿐인 허례 허식을 비판하면서 "사실 디자인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되고 싶어 할 지 모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디자인이란 조금 다듬어진 상식의 범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저 역시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정말이지 와 닿는 말이에요. 이런 글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선민의식은 제발이지 사라졌으면 하거든요.

그 외의 다른 글들 모두 대부분 하나하나 곱씹을 만한 좋은 글들입니다. 도판도 적절하고요. 몇몇 글들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소재와 글이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지 않은 글도 있습니다만 소수일 뿐으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입니다.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에세이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9/12

간송미술 36 : 회화 - 백인산 : 별점 2.5점

간송미술 36 : 회화 - 6점
백인산 지음/컬처그라퍼

간송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보급 서화 중 36점을 엄선하여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저자 개인의 의견이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저자가 간송 미술관장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신력은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겠지요.

선정한 서화에 대한 상세한 도판과 서화에 대한 소개가 어우러지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그 서화를 왜 선정했는지와 그 서화를 창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습니다. "유홍준의 국보순례"와 비슷한 구성인데, 이런 책이 다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간송이 작품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알려주는 몇몇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다른 책들과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데 적합한 작품을 선정했다는 기준에 따라, 단순히 창작자의 이름값이나 서화 자체의 유명세에 기대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차이점이고요. 

이런 선정 기준답게, 당시의 풍속화라던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그림들이 꽤 많이 선정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는 특히요. 이름도 잘 몰랐지만 당대에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삼재'라고 불리었다는 관아재 조영석의 "현이도" 가 대표적입니다. 장기를 두는 선비들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에요. '현이도'는 공자가 마음 쓸 곳이 없으면 차라리 바둑이나 장기라도 두어라라는 말에서 유래한 제목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 말을 선비들이 장기 두는 그림의 제목으로 삼다니, 완전 자기 멋대로의 해석인 셈입니다. 

그 외에도 거하게 취한 선비를 그린 "대쾌도", 윤용의 "협롱채춘", 김홍도의 "마상청앵", 김득신의 "야묘도추", 신윤복의 "미인도"와 "이부탐춘"이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풍속화들입니다. 36점 중 7점이니 무려 20%의 비중이네요. 물론 풍속화는 일부일 뿐이며, 신사임당에서 시작해서, 진경 산수의 거장 겸재 정선, 진경 산수에 중국 남종화풍을 합쳐 조선만종화풍을 만들어낸 심사정, 풍속화의 거장 김홍도와 신윤복, 이념미를 추구하는 청대 문인화를 조선으로 끌어들였던 김정희의 작품들이 엄선되어 소개되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은 물론, 조선 시대 화풍의 변화를 잘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여러모로 완성도보다는 시대를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한 선정 기준이었던걸로 보입니다. 윤두서의 "심산지록"이 그러해요. 작품의 평가보다는 공재 윤두서의 현실과 시기적으로 조선 중기, 후기 화풍이 교차하던 당시 상황을 잘 반영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소개되고 있으니까요. 

허나 문제는, 당대 화풍을 대표한다는 등의 설명 외에 미학적으로 "왜 이 작품이 뛰어난지?"가 잘 설명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의 "고사소요"를 설명하면서, 고도의 기교로 그려진 그림이다, 화의와 묘법 모두 추사의 지향과 이상이 잘 구현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잘 못 그린, 집에 걸어 두라면, 별로 걸어두고 싶지 않은 그림이었거든요. 이렇게 설명할 거라면, 고도의 기교는 물론 추사의 화의와 묘법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이러저러해서 추사의 문인화를 대표한다고 자세히 알려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세한도"처럼 명확하게 미학적 가치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또 이정과 심사정, 김홍도의 작품은 각 세 점 씩, 겸재 정선의 작품은 무려 다섯 점이나 소개되는 등 중복이 심하며, 도판도 완벽한 수준이지만, 실물 사이즈로 보아야 잘 알 수 있는 느낌을 받기는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대형 작품의 경우 실제 사이즈 크기 도판을 접어서 제공한다던가, 아예 부록으로 제공하는 책들도 있었는데,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요. 설령 그렇게 제공했다 치더라도 "촉산도권"같은 7미터가 넘어가는 대작 느낌을 제대로 알려주기는 턱없이 부족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쉽게 대중이 접하기 힘든 간송 미술관 서화의 정점을 집에 비스무레하게나마 소장하여 꺼내볼 수 있는, 도록으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관련된 정보의 전달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해서 감점합니다.

2010/04/15

명품의 탄생 - 이광표 : 별점 4점

명품의 탄생 - 8점
이광표 지음/산처럼

제목만 보면 된장남녀를 위한 명품 가이드같지만 실상 내용은 조선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한국의 컬렉션과 컬렉터들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미시사적 역사서입니다. 각 시기별로 유명한 컬렉터들과 그들이 수집한 컬렉션을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목차는 크게는 조선시대 - 조선 후기 - 일본 강점기 - 6.25 이후 현대의 4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아무래도 시기가 시가였던 만큼 일본 강점기 시대 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왔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일본인 손에 들어갔다가 해방 직전 다시 국내로 돌아오게 된 일화라던가 일본 강점기 시대 문화재 약탈과 경매, 그것을 막기 위한 간송 전형필 등 여러 컬렉터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재미가 넘치거든요. 전형필을 조선인이라 무시한 일본인 소유자와의 기싸움(?) 등의 이야기는 나중에 "경성탐정록"에 꼭 한번 등장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한 일본이 우리의 많은 문화재를 강탈해갔지만 외려 해방이 되면서 서둘러 도망(?) 가는 바람에 한국에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던 오타니 컬렉션 같은 문화재가 우리나라에 남겨지게 된 것에는 묘한 아이러니도 느껴졌고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모두 좋았기에 결론은 추천작. 제목이 왜 이따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한국의 컬렉터와 컬렉션 이라고 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미시사 서적 좋아하신다면 강추입니다. 제 개인적 별점은 4점입니다. 가격이 좀 쎈 편이라는 것은 좀 아쉬운데 그만큼 도판이나 기타 자료도 충실한 편이니 감수해야겠죠.

그나저나 이 책을 읽고나니 국립 중앙 박물관에 또 가 보고 싶어지네요. 아니면 주말에 삼성 리움 미술관에라도 가서 호암 가족이 수집했다는 국보급 문화재라도 좀 보고 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