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빌 호지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빌 호지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6/01/26

미스터 메르세데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미스터 메르세데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은퇴 형사 빌 호지스는 홀로 외로이 TV에 빠져 살다가 자살까지 꿈꾼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가 형사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시티 센터에서 8명을 살해하고 도주했던 싸이코 살인마 "메르세데스 살인마"가 보낸 편지였다. 그의 목적은 호지스의 자살 유도였다. 그러나 이를 도발로 받아들인 호지스는 새롭게 삶의 의미를 다지고, 그를 자기 손으로 체포하기 위해 다시 수사에 나서는데....

호러의 거장 스티븐 킹이 발표한, 은퇴한 형사 호지스와 '미스터 메르세데스'라고 불리는 싸이코 살인마 브래디 하츠필드의 대결을 그린 600페이지의 대장편 하드보일드입니다.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관심 가던 차에 늦게나마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장단점 모두 기존 스티븐 킹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우선 첫 번째 장점으로는 읽는 재미가 최고 수준이라는 겁니다. 브래디가 빌 호지스를 자살로 몰아넣기 위해 편지를 보내는 도입부에서 시작해서, 오히려 삶의 의욕을 되찾은 빌 호지스가 범인이 지정한 채팅 사이트 '데비스 블루 엄브렐라'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며 범인에게 접근해 나가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한 덕분입니다. 차를 도난당한 올리비아 트릴로니의 증언을 믿지 않았던게 큰 실수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범죄물로도 괜찮은 편이에요. 브래디가 자동차를 훔친 방법,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호지스 등을 염탐한 방법, 본인의 범행을 위해 이런저런 발명을 하는 부분 등이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그러해요. 은퇴 형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피터 러브시의 "다이아몬드 형사" 시리즈 등 상당히 많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은퇴한 전직 특수 요원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영화들도 비슷한 류일 테고요. 허나 본작의 주인공 빌 호지스는 제가 읽었던 유사 작품 주인공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묘사도 아주 좋고요. 초반의 자살을 기도하는 모습, 브래디를 잡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는 과정 모두 자연스러우며 체중 등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을 신경 쓰는 묘사 역시 한몫 단단히 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제이니가 폭사한 직후 모습은 정말 압권이에요. 연인이 산산조각이 되어 팔 하나만 나뒹구는 상태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데, 속된 말로 '간지 폭풍'이었습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한 에피소드에서 도미니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코브라의 대사가 떠오르더군요('안녕 도미니크 다음에 만날 때에는 지옥이겠지').
악당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역시 나름의 존재감을 뽐냅니다. 어머니와 근친상간 관계에 동생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는 등의 가족사는 진부했지만, 일반인보다 약간 똑똑한 미친놈이라는 설정을 인상적으로 잘 그려낸 덕입니다. 항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성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주 설득력 높았어요. 사람 마음(빌 호지스)을 갖고 놀려다가 실패하는 과정의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다른 인물들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사이드킥 제롬은 엘리트 흑인 집안의 아들인 우등생이라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설정인데, 작중 언급되는 버락 오바마와 더불어 달라진 미국 흑인의 지위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다만 또 다른 조력자 홀리는 컴퓨터 천재지만 심한 우울증을 앓는 기묘한 노처녀라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했지만요.

허나 역시나 스티븐 킹 작품의 단점도 그대로입니다. 첫 번째는 '탐정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나온 것 치고는 '추리물'로 볼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은퇴한 형사라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단서를 전해주는건 범인 브래디의 역할이거든요. 호지스는 던져주는 단서를 받아 먹을 뿐입니다. 그나마 범인과의 두뇌싸움이라든가, 범인이 보낸 편지와 채팅에서 입수한 것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한 결과는 상당히 정확하지만 호지스 스스로의 입으로 이야기하듯 '감'에 의지한 것이라 그닥 정교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급작스러운 억지 전개가 많다는게 두 번째 단점입니다. 올리비아의 동생 제이니 패터슨과 사귀게 되어 잠자리를 같이하는 관계까지 발전하고, 마지막에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서 폭탄을 터뜨리려는 브래디의 계획을 홀리와 제롬이 저지한다는 결말이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좀 가관이었달까요. 하긴, 이건 스티븐 킹 소설이니까...

마지막으로 호지스의 실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예요. 대표적인 것이 제이니의 죽음이죠. 작중에서 계속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어떻게 차를 훔쳤는지까지 알아내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호지스의 실수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그녀의 죽음은 독자가 브래디가 처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지만, 주인공의 무능력함을 돋보이게 하니 과연 적절한 장치였나 의구심이 생깁니다.
호지스가 월권에 가까운 단독 수사를 고집하는 것도 석연치 않아요. 애초에 올리비아 컴퓨터에 심어진 수상한 파일에 대해 알게 된 시점에서 경찰에 모든 자료를 넘겼다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 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정통 하드보일드는 절대로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공통적으로 탐정 스토리의 모습을 취하며,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는데, 이 작품은 추리물이지만 무미건조한 묘사는 아니니까요. 과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정 묘사는 풍성합니다. 그렇다고 폭력이 난무하는 마초물도 아닙니다. 호지스 캐릭터만 놓고 보면 정 많고 정의감 넘치는 동네 아저씨거든요.
물론 호지스와 브래디 둘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전개에서 브래디 시점 묘사는 고전 하드보일드 느낌이 살짝 나기는 합니다. 스티븐 킹이 서두에 '제임스 M 케인을 그리며'라고 했는데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누른다"가 떠오를 정도로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모로 하드보일드보다는 전통적인 서부극에 가깝습니다. 캐릭터와 서사 구조 모두요. 은퇴한 총잡이에게 신세대 총잡이가 도전하고, 도전을 피하는 늙은이를 도발하기 위해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 결국 대결이 벌어지며, 이 와중에 은퇴한 총잡이가 새로운 삶의 보람을 깨우친다는 내용이니 당연하지요.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단점이 더 컸고, 제 취향도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이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특히나 저처럼 '하드보일드'라는 말에 낚이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앞서 말씀드렸듯 에드거상은 물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선정한 2015 최고의 장르소설 베스트 10에도 당당히 선정되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제 취향의 문제일까요?

2017/10/28

엔드 오브 왓치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엔드 오브 왓치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컴비 홀리와 함께 사설업체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던 빌 호지스는 의사로부터 췌장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드 하츠필드는 재핏이라는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이동하여 조종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고, 이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과 빌 호지스에게 복수하려 했다. 
재핏 게임기와 관련된 기묘한 자살 사건, 특히 제롬의 여동생 바브라에게 닥친 자실 미수 등을 접하며 빌 호지스는 사건의 이면에 브래디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브래디는 담당 의사 배비노의 몸을 빼앗아 도주해 버렸다.
빌 호지스는 브래디의 음모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에 나서는데...

스티븐 킹빌 호지스 3부작(요새 말로 트릴로지) 마지막 편입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신비한 능력을 얹은 1편의 살인마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하츠필드가 재등장하여 빌 호지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결말은 "끝"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고요. 시리즈는 정말 확실하게 끝납니다.

재미만큼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 그런데 다른 시리즈와 확실한 다른건,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1편은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답게 분명 추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정교하지는 못했지만요. 2편은 빌 호지스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뿐 범죄물로는 괜찮았고요. 허나 이번 편은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장르도 "싸이킥 호러 스릴러"라고 해야 합니다. 브래드가 손에 넣은 특별한 능력 - 염력과 재핏 게임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 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물론 빌 호지스가 브래디의 능력을 알아내는 과정은 수사 비스무레한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브래디의 능력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것만 문제지 그의 행방과 음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몇가지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브레디의 담당 의사가 수상하다! 녀석을 쫓아가자! 그냥 이게 전부거든요.

그래도 브래디의 능력은 설득력 있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을 있음직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특기가 잘 발휘되어 있지요. 단지 능력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재핏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계획도 볼거리입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후 게임기를 확산시켜 자살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준다는 음모인데, 희대의 IT 전문가이자 정신병자 살인마인 브래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리는 설득력 높은 설정이었어요.

또 여러모로 열세였던 빌 호지스가 브레디의 최면 침투를 이겨내고 반격을 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앞부분에 사용되었던 커다란 벨소리라는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명장면입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엔딩이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통증 때문에 침투에 걸리지 않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이를 위한 기지국 복선 역시 적절했고요.

다만 브래드의 음모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문제 투성이이기는 합니다. 왜 최면에 게임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지가 가장 의문이에요.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고 탭하는 것으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유도하는게 훨씬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잖아요? 사이트 뿐 아니라 앱 형태로 뿌리면 갯수 제한이 있는 게임기보다 훨씬 넓게, 멀리 확산시킬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라는 특정 조건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설명되지도 못한 탓도 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아울러 브레디의 자살 전염, 전파 계획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좀 허무합니다. 대량 학살을 저지르려 했던 살인마가 개개의 사람들 마음 속 빈틈을 파고들어 자살을 유도 한다는게 너무 소박해 보였던 탓입니다. 피해자들이 주변인들을 죽이게끔 하는 장치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피해자가 고작 서너명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제롬의 비중이 등장이 적다는 것도 별로였어요. 이럴바에야 등장하지 않고 그냥 홀리와 빌 컴비의 활약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특히 이번 편에서 빌 캐릭터가 너무나 멋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통도 참아가며, 심지어 마지막에 오줌까지 싸 가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친구와 선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지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정말 멋진 올드 히어로거든요. 지금은 멸종해버린 서부영화 주인공인 셈으로, 죤 웨인이 늙어서 형사 역할을 맡는다면 이련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여튼, 늙은 죤 웨인의 최후의 활약을 뒤로하고 젊고 잘생긴 신예가 마무리를 짓는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교하지도 않고, 추리물로써의 가치는 낮지만 스티븐 킹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킬링타임용 책을 찾으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타임슬립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덧붙이자면, 빌 호지스 캐릭터가 정말로 멋지게 그려진 만큼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그린 프리퀄이 나와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7/04/09

파인더스 키퍼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파인더스 키퍼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천재 작가 로스스타인의 원고를 훔친 모리스는 흥분 상태에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는데, 35년만에 가석방되어 돌아왔다. 한편 숨겨진 원고를 찾아낸 피터 소버스는, 원고와 함께 있던 현금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써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자, 원고 일부를 동생 티나의 사립학교 진학을 위해 팔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드루 홀리데이는 오히려 피터를 협박하여 원고를 손에 넣으려 하는데...

빌 호지스 3부작의 두번째 작품으로 "미스터 메르세데스" 후속작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답게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주는 덕분입니다. 숨 쉴 틈 없이 사건이 계속 벌어져서 눈을 떼기 힘들었어요.
묘사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범죄자 모리스 시점 묘사가 아주 대단합니다.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정신병자의 편향된 사고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굉장히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흡사 포르노나 하드고어 호러물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부분은 전작과 비슷하네요. 집착의 대상이 거장의 미발표 원고라는 점도 왠지 공감이 갔고요. 저 역시 한때(?) 오덕이었으니까요.

인물 설정도 괜찮습니다. 모리스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다른 주인공인 피터 소버스도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면 대충 처리했을 로스스타인의 원고의 가치를 알아본다는 설정을 학교 수업과 연결하여 소개하는 점이 그 중에서도 백미였어요. 여러분, 학교 수업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빌 호지스 3부작으로 만든건 최악입니다. 호지스 패밀리보다는 모리스와 피터의 대결이 핵심이며, 홀리와 제롬은 그냥 등장한다 싶을 정도로 별다른 활약이 없는 탓입니다. 심지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벌어진 최후의 대결마저도 빌 호지스는 물론이고 다른 호지스 패밀리는 없어도 됩니다. 피터가 붙인 불로 모리스가 타 죽는 게 끝이니까요. 제롬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설정은 억지로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사족일 뿐입니다. 하기사 빌 호지스에게 사건이 의뢰된 이유도 피터의 동생 티나가 제롬의 동생 바브라와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니 말 다했지요. 과연 이런 일로 탐정에게 사건 의뢰를 할까요?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에게 알리는게 당연하지요. 이것 역시 억지로 시리즈에 끼워 넣었습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 외에도 피트의 아버지가 메르세데스 킬러에게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던가, 메르세데스 벤츠 킬러 브래디가 등장하여 일종의 백치 상태로 살아난 묘사를 그린 부분도 마찬가지에요. 시리즈만 아니었으면 다 빼도 무방한 설정들입니다. 게다가 브래드가 무언가 초능력을 얻었다는 떡박이 던져지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불필요한 설정을 통해 후속작을 암시하다니,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오른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보다는 정신병자 모리스 대 여동생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범생 피터와의 대결로 그리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빌 호지스 패밀리는 팬 서비스 수준의 카메오 등장이면 충분했어요.

전개도 열심히 달려주기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전부 우연입니다. 모리스가 숨겨 놓았던 트렁크를 피터가 발견하는건 전개상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모리스가 원고를 훔치게 된 계기를 만든 드류 홀리데이가 이후 피터의 노트 판매 계획에 엮이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지나칩니다. 피터가 원고를 숨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심지어 바로 그 장소에서) 최후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고요. 스티븐 킹이 나이가 들어 변한건지 모르겠지만 전편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중요성과 해피 엔딩을 강조한 결말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피트 어머니가 모리스에게 총을 맞지만 살아난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휙휙 읽히는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으로 킬링 타임용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단점도 명확하기에 감점합니다. 딱히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2024/09/13

피가 흐르는 곳에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피가 흐르는 곳에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브 킹의 중편집. 세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빌 호지스 3부작' 시리즈 후속편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표제작 "피가 흐르는 곳에"를 제외한 두 편은 순문학에 가깝습니다. 순문학 성향이 두드러지는 스티븐 킹의 말년 작품답네요. 말년 작품이라도 왕년의 화끈함, 끔찍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보여준 작품들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런 느낌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고, 완성도도 높습니다. 다만 '호러의 제왕'이라는 이름값에 걸맞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해리건 씨의 전화기"
초등학생 크레이그는 똑똑했던 덕분에 마을 굴지의 대부호 헤리건 씨에게 책을 읽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때마다 헤리건 씨에게 복권을 선물받았다. 마침 선물받은 복권이 당첨된 어느 해, 크레이그는 해리건 씨에게 아이폰을 사 주었다. 해리건 씨는 평소 이런 제품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금새 아이폰에 푹 빠졌다. 그리고 헤리건 씨가 노환으로 사망한 뒤, 크레이그는 해리건 씨 관에 아이폰을 몰래 넣어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크레이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케니 얀코에 대해 헤리건 씨의 전화기에 넋두리를 늘어놓은 날, 케니 얀코가 자살했다는걸 알게 되는데...

스마트폰이 처음 도입되었던, 아이폰이 첫 출시되었던 시대에서 시작되는 작품. 
핵심은 해리건 씨입니다. 나이는 많지만 똑똑하고, 자신의 눈 밖에 난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지만 자기 사람에게는 굉장히 따뜻한 괴팍한 노인을 생생하게 잘 그리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한 헤리건 씨의 탁월한 식견 등은 그를 단순한 노인 이상으로 구체화합니다. 여러모로 "재벌집 막내아들"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은 크레이그(진도준)이지만, 해리건 씨(진양철 회장)에게 눈길이 더 간다는 점과, 현재 시각으로 과거 - 여기서는 스마트폰 도입 - 의 경제 효과를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실제로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런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큰 돈을 벌었겠지지요. 스티븐 킹이 과연 애플과 아마존 주식을 샀을지 궁금하네요.
조숙하고 똑똑한 크레이그, 그리고 크레이그의 아버지라던가 케니 얀코, 하긴슨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크레이그가 초등학생에서 시작하여 대학 졸업 후 직장인이 될 때까지 겪는 성장기로도 볼 만 했고요.

그러나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크레이그와 해리건 씨의 우정(?)과 크레이그의 성장기를 제외하고는 무덤 속 해리건 씨에게 전화를 거는게 거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되지 않아요. 이래서야 단순한 저주나 주술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으니까요. 매개체가 밀짚인형이나 생닭같은게 아니라 아이폰이라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작가 후기를 보면 '관에 휴대폰이 들어갔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는데, 그 아이디어를 잘 살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크레이그가 옛 은사를 위한 복수를 마치고 전화기를 버리는 결말도 시시했습니다. 옛날 스티븐 킹이라면 좀 더 화끈하게 달려주었을텐데 말이지요. 스티븐 킹도 나이가 들면서 문학적이면서도 은근하고, 다소 애매한 결말을 즐기는데 이 작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글솜씨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일가를 이루었다 싶은 생각은 듭니다. 다만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척의 일생"
3막 : 고마왔어요, 척!
자연재해로 미국은 서서히 멸망해가고 있었다. 마틴을 비롯한 주민들 눈 앞에는 찰스 크란츠의 은퇴를 알리는 광고만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최후가 다가왔다....

2막 : 길거리 공연
길거리 드럼 연주가 제러드 프랑크의 연주에 맞춰 시작된 척의 춤은 구경꾼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제니스도 합류하여 대단한 공연을 마쳤고, 척은 호텔로 가면서 왜 춤을 추기 시작했는지를 떠올렸다.

1막 :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척의 할아버지는 다락방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본 그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다음에, 척은 잠겨진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는 환영을 보았다. 하지만 척은 그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3막이자 맨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마틴과 주민들이 사는 곳은 척의 인생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척이 죽어 가자, 그가 은퇴한다는(죽는다는) 광고가 계속 표시되었고 숨을 거두자 세계가 멸망하게 된 겁니다. 척의 안에 담겨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은 바로 이 세계였다고 해도 되겠지요. 사실 뻔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워낙 글을 잘 써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3막에서 서서히 세계가 멸망해가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지만, 일상 속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한 때를 묘사한 2막이 가장 좋았어요. 후기를 보면 크리스토퍼 워켄의 팻 보이 슬림 뮤직비디오를 보고 영감을 얻은 듯 한데, 저는 "패리스 뷸러의 해방"의 거리 퍼레이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척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해 주는 2막, 그리고 척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1막은 문학적인 성취와는 별도로 사족에 가깝습니다. 3막만으로도 이야기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1막은 킹 스스로가 후기에서 1년 뒤에 덧붙였다고 하니 사족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이럴 바에야 3막의 이야기에 가필하여 짧지만 반전이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독특한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마틴의 눈 앞에 척의 광고만 떠오르는 묘사는 나름 공포스러웠는데, 이를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거든요. 설명도 많이 부족했고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리고, 척 내면 세계라는걸 짧지만 강렬하게 드러내는 식으로 쓰는게 좋았을 것 같네요.
현재의 결과물은 장르 문학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와서 평가하기 어려운데,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파인더스 키퍼스의 탐정 홀리 기브니는 뉴스를 보다가 캐스터 채트 온도스키가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라는걸 알아챘다. 홀리는 전직 경찰 벨 씨와 벨 씨 손자의 협조로 온도스키가 모습을 바꿔가며 저질렀던 오래전부터의 사건들 증거를 확보했다. 온도스키를 만나 살해할 계획을 세운 홀리는 파인더스 키퍼스 사무실에서 대결을 준비했지만, 제롬과 바버라의 등장으로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시리즈 후속작 중편. 빌 호지스 사후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게 된 홀리 기브니가 주인공입니다. 제롬과 바버라 등 전작의 주요 등장인물도 건재합니다.
수록작 중 유일한 범죄 호러 스릴러물로 체트 온도스키의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수사물로 손색이 없으며, 그가 마음대로 모습을 바꿔가며 오랫동안 살아온 '괴물'이라는 설정은 일종의 크리쳐 호러물을 연상케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언급되는, 사람의 얼굴은 몇 가지 타입밖에 없다는 이론도 재미있었습니다. 홀리의 조력자 벨 씨가 탁월한 그림 실력을 갖춘 전직 경찰 몽타주 작성 전문가였고, 그의 손자는 음악 전문가로 성문 분석이 가능하다는 설정도 좋았고요. 온도스키가 과거부터 모습을 바꿔가며 암약했다라는 걸 과학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장치였어요. 호러와 과학 수사가 절묘하게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습도 바꿀 수 있고, 빠른 속도를 지닌 온도스키가 고작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진 정도로 죽어 버렸다는 결말은 맥빠집니다. 홀리가 이를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고는해도, 이러한 괴물 상대로는 약해보였기 때문입니다.제롬과 바버라가 사건에 휩쓸리는 전개도 좀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읽는 재미는 좋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영문학과 교수 드류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장편 소설을 완성하고자 아버지의 오두막 집에 틀어박혔다. 집필 중 심한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폭풍이 몰아쳐 오두막집에 고립된 드류는, 자신이 구해준 쥐가 소설 완성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쥐는 소설 완성과 동시에 드류의 멘토 앨이 죽을거라고 말했고, 드류는 거래에 응했다...

소설을 완성하는데 작가들이 문장과 단어 하나 가지고 얼마나 머리를 싸매는지를 재미있으면서도 실감나게 풀어낸 작품. 드류가 태풍으로 오두막집에 고립되었는데, 아프기까지 해서 위기에 처하는 상황도 그럴듯 했습니다.

그러나 환상인지 모를 쥐(악마)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한다는 건 다소 뻔했습니다. 특히 그 거래가 일종의 사기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요. 이런 류 작품들은 보통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탓입니다. 제 졸작 "계약은 충실하게"도 같은 이야기였지요.
앨이 죽은 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지, 그래도 소설 완성의 기쁨이 더 큰 것인지 잘 모를 다소 애매한 결말도 아쉬웠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최근 킹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악마와의 거래가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좀 더 화끈한 맛이나 반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1/14

디 아더 피플 - C.J. 튜더 / 이은선 : 별점 2점

디 아더 피플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브는 혼잡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다가 앞 차량에 자기 딸 이지가 납치되어 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열띤 추격 끝에 차량을 놓친 게이브는 경찰로부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뒤, 장인 해리가 시신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이 죽지 않았다고 믿던 게이브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는 삶을 살던 중, 친구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이지가 납치될 때 탔던 차를 기어코 찾아냈다. 차에서 가져온 노트로 응징받아야 할 사람을 대신 응징해 주는 다크웹 '디 아더 피플'의 실체도 알아냈지만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단서를 모두 빼앗겼다. 

한편, 게이브의 단골 휴게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앨리스라는 소녀 전화를 받았다. 케이티 언니 프랜의 딸이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앨리스를 보살피면서 그녀가 바로 이지였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케이티 역시 습격을 받고, 겨우 탈출하는데....

이전 "초크맨"으로 접했던 영국 작가 C.J 튜더의 세 번째 장편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의 저열한 카피에 불과했던 "초크맨"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더 이상 읽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들로 자주 찾는 블로그인 '추리문학쪼개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한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네요.

전혀 모르는 차에 내 딸이 타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도입부는 흥미롭습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게이브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해리가 시체를 확인까지 했는데 이지가 과연 살아있는게 맞는지?라는 수수께끼도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요. 디 아더 피플에 접속하기 위한 암호가 자동차에서 입수했던 성경책과 관련이 있었다던가, 장인 해리가 시신 확인을 하려는 게이브를 막기 위해 약을 썼다는 추리적인 장치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딸의 납치를 목격한다는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탓에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작위적인걸로 치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 살해당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게이브가 복수를 대행하는 디 아더 피플이 사건을 저질렀다는걸 알아낸 이후의 전개는 특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게이브는 누가 살인을 의뢰했는지 바로 알아챘어야 했거든요. 그의 인생 통들어 이렇게 복수를 당할만한 사건은 어린 시절 음주 운전으로 이사벨라를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뿐인데 이사벨라의 모친 샬럿은 이미 죽었으니, 남는건 오랫동안 이사벨라를 돌봤던 간호사 미리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샬럿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이브와 가족의 유산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미리엄이니 동기도 확실합니다. 매덕 경위가 이지가 살아있다는걸 납득한 순간, 이 사건을 꾸민게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이 정도는 이후 경찰 수사로도 밝혀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중요한 이사벨라 사건,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게이브가 거액을 물려받았다는걸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는 전개는 추리물 애호가로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핵심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전까지 게이브의 아내가 살해당한 이유는 장인 해리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해리는 저명한 의사이니, 의료 사고에 관계된 원한이 있을거라고요. 마찬가지로 프랜은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아버지에게 성폭행같은걸 당해서 복수 의뢰를 했던거고 그 탓에 게이브 가족 살해를 거들다가 이지를 데리고 달아나게 된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는 다 헛수고에 불과했어요. 재미 여부를 떠나 반칙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또 전개 도중 스티브가 게이브를 죽이지 않고 노트만 빼앗아 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게이브는 습격했던 스티브의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요. 게이브가 다크웹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한 접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힘을 써서 노트 따위를 훔쳐갈 이유는 없었어요. 차라리 패스워드를 바꾸는게 더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게이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스티브가 케이티를 죽이려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게이브, 프랜, 케이티, 미리엄, 이지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좋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고, 중요 정보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낯선 승객" 설정을 비공개 커뮤니티로 만든 것에 불과한 다크웹 '디 아더 피플' 설정도 어설픕니다. 친족이 아닌 아무나 디 아더 피플에 복수 의뢰를 할 수 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치죠. 그러나 복수 대상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였던 게이브가 아니라 가족이라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프렌과 이지를 죽이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같은 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됨)도 마찬가지입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회원 누군가가 해 준다는게 기본 조건입니다. 정해진 킬러가 타겟을 해치우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게이브 가족 살인범도 그렇고, 나중에 게이브가 케이티를 스티브라는 동일 인물이 습격한다? 뭔가 잘못된 거지요. 설정 오류에요. 

디 아더 피플이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정도로 전능하다는 설정, 이 정도 조직이 신규 회원(?)을 알음알음 구두로 모집하는 설정 등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보다는 "원한 해결 사무소"나 "선악의 쓰레기"같은, 주어진 현실 내에서 맡은바 임무를 가하는 복수 대행업자가 나오는 만화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디 아더 피플에 대해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 케이트와 게이브가 만났고, 케이트의 언니 프렌이 이지를 데리고 있었으며, 게이브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프랜의 의뢰로 죽은, 프랜 아버지를 과실치사로 죽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였다는 인물 설정과 관계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은 억지가 지나쳤어요. 일단 그가 게이브에게 접근하여 프랜을 찾으려 했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이브 가족을 죽이는데 프랜이 협조했다는걸 알아낸 방법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지를 납치했던 차를 찾아낸 방법 역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이지가 이사벨라와 영적 교감을 하다가, 마지막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미리엄을 죽이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런 설정이 대체 왜 필요했던걸까요? 스티븐 킹빌 호지스 시리즈같은 싸이킥 스릴러를 생각한 듯 한데, 그만한 설득력도 없고 이야기에도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설정은 아예 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게이브가 어린 소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죄를 지은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 2년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혼 위기였던 아내만 죽었을 뿐 딸은 무사히 돌아오고, 오히려 예쁘고 다정한 케이트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대 저택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거라는건 개운하지가 않네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해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류의 이야기인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앞으로 이 작가 책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