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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5

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첫번째 이야기 - 아키프 피린치 / 이지영 : 별점 3점

펠리데 - 6점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해문출판사

음, 이상하게 고양이는 추리소설과 많이 연관된 친숙한 소재인 듯 합니다.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그렇다고 쳐도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고양이 홈즈"시리즈 도 있었죠. 이 책 "펠리데"도 고양이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이색적인 추리소설입니다. 다만 굉장히 의외였던 것이 다른 고양이 탐정 소설들이 거의 다 사람이 주인공이고 고양이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던가 하는 류의 역할을 해 왔던것에 반해 이 책은 완전히 고양이 1인칭 시점의 소설입니다. 고양이의 감각과 생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일단 설정면에서 독특한 재미를 주네요.

주인공 프란시스는 주인 구스타프와 새로운 동네에 이사온 굉장히 시니컬한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 발정기 수컷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며 프란시스는 새로 사귄 친구 블라우바트와 함께 범인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미친듯한 연구에 따른 "클라우단두스"라는 존재라던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거대한 진화론적 음모에 따른 범행이라는 줄거리, 그리고 꽤 개연성 있는 복선들로 특이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추리 스릴러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입니다. 여러 고양이와 인간들에 대한 시니컬하고도 디테일한 묘사 역시 재미있는 부분이죠. (역시 고양이는 은혜라는걸 쥐뿔도 모르는 짐승인듯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장황하고 긴 묘사와 곁가지 설명들로 읽는 맥이 탁탁 끊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읽다가 졸음이 온 부분도 상당 부분 존재하고요. 잘 짜여진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지루했습니다. 고양이 탐정 프란시스의 다음 활약은 기대되지만 보다 짧고 압축된 이야기로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저는 가격에 비한다면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4/07

간만에 책 구입 2004.04.07

자주 가는 인터넷 헌책방인 "신고서점"에 어떤 분이신지 소장하시고 계신 추리소설을 왕창 풀은 것 같더군요. 애거서 해문 빨간책 시리즈는 정말 엄청난 양이 올라왔고 최신간도 눈에 띕니다. 저는 이미 구입했지만 최신간 모스 경감 시리즈와 "펠리데" 까지 올라와 있으니 어떤 분이신지 정말 가슴 아프셨을 것 같네요.

대충 훝어보고 해문의 반다인 시리즈 "가든 살인사건"과 해문 미스테리 베스트 "낯선 승객", 그리고 애거서 빨간책 시리즈로 "움직이는 손가락", "삼나무관", "비뚤어진 집", "앤드하우스의 비극"을 구입했습니다.

새책 사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선택인데, 헌책방에서는 이렇게 구입도 2만원 안쪽이니 굉장히 뿌듯합니다.
가든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이래서 헌책방을 자주 간다니까요...^^

2018/03/24

마음의 지배자 - 김현중 : 별점 3점

마음의 지배자 - 6점
김현중 지음/온우주

언젠가 인터넷에서 원사운드가 그린 "묘생만경" 만화를 읽고 관심이 가던 차에, 알라딘 헌책방에서 저렴하게 파는걸 확인하고 구입한 작품입니다. 헌 책을 충동 구매하지 말자고 결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가격이 너무 착했단 말이지요. 

다행히 결과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꽤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특징이라면 우선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듀나의 작품들처럼요. 그러나 듀나 작품들보다는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설정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충실히 이야기에 담아낸 덕분입니다. 남과 다른, 뛰어난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특징도 있는데, 작가의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말도 확실하고, 작가의 고민과 다양한 시도 및 이야기 별 다양한 결말 -그냥 한 계단 위에서 바라만 본다는 "묘생만경", 남들의 두려움을 통해 신으로 거듭난다는 "마음의 지배자", 블랙 코미디인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남과 다르다고 가장하고 있을 뿐 다 똑같다는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능력을 발휘 못하고 찌질하게 살다가 한걸음 더 내딛는다는 "물구나무 서기" 등 - 을 선보이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아이디어의 변주가 많은 등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단순한 설정 바꿔치기는 아닙니다. 나름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어 있으며 재미도 수준급인 좋은 단편집입니다. 한국 SF장르 문학이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장르 문학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원사운드가 그린 리뷰 만화를 읽고 책을 산게 이번이 두 번째인데(첫 번째는 이거) 제게는 100% 확률입니다. 원사운드는 리뷰 만화만 그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제가 언젠가 책을 낸다면 제 책 리뷰를 좀 부탁드리고 싶네요.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묘생만경"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원사운드 만화의 원작입니다. 만화는 3~4페이지 분량에 불과한데, 원작을 굉장히 잘 압축한 결과물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대사도 그대로인데 만화에 적절한 것만 잘 가져다 썼고, 꼭 필요한 설정 중심으로 이야기를 짤막하게 잘 풀어내었더라고요.

그런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원작에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다는 말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화자인 고양이 '나'가 영물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추었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어요. "펠리데"처럼 뛰어난 지능 자체가 설정과 이야기의 핵심으로 활용되면 모를까, 이야기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군더더기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세 가족과 닭 스무 마리, 개 세 마리라는 전원 주택을 무대로, 닭들 사이의 치정극을 통해 무시무시한 사건이 휘몰아친다는 범죄 스릴러라는 독특함은 누가 뭐래도 최고였습니다. 이런 작품을 또 볼 수나 있을까요?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부럽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마음의 지배자" 

표제작으로 초능력자가 어떻게 주위의 두려움을 불러오고, 어떻게 박해 받으며, 또 어떻게 신이 되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각성한 뒤 무언가 사명을 짊어진다는 이야기, 혹은 자신이 세계 정복 같은 야심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를 고등학교를 무대로 하여 일상계처럼 담담하게 풀어내었다는 나름의 차별화 요소가 돋보입니다. 초능력자인 민국이 아니라 주변인물들 중심으로 묘사와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도 신선했고요.

두려움과 탄압만 있을 뿐 추종자는 없다는 점이 실제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며, 초능력자가 악인들과 손을 잡는 이유도 불분명한 등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아요. 그래도 신과 기적 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사장의 맘모스 마트와 우주행성 K9242의 정복 유닛이 서로의 이해가 일치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블랙 코미디 SF입니다.

사람이 많이 오가기를 원하는 김사장, 그리고 기억 유닛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부분체를 부착하기를 원하는 정복 유닛이 같은 목적을 위해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김사장의 계획은 충분히 그럴듯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며, 정복 유닛의 씨앗 옮기기 계획 역시 전형적인 식물의 행태를 잘 응용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아주 높아요.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배인의 머릿 속에 기억 유닛이 들어가 있었다는 결말입니다. 앞 부분에서 약간의 설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대로라면 급작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그래도 재미 만큼은 보장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아인 시술이라는, 머리가 좋아진다는 수술이 유행한 뒤의 세계를 그린 SF 단편입니다. 아인 시술은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비용, 그리고 흉터가 남기 때문에 부자들이 주로 시술 받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설정이 핵심이고요. 

사실 이 시술을 통해 선민 의식을 갖는다는 설정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부자만 기계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와 다를 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술이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시술이 사기인지 아닌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 점도 좋으며, 시술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재미를 더하네요. 수진을 통해 상류층도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앞서 언급했듯 뻔한 설정 탓에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와 느낌에서 여러 다른 작품들이 떠오르며(개인적으로는 "가타카" 가 많이 연상 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건 아쉽습니다.

그래도 매력적인 이야기 임에는 분명하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장르 문학 원작을 주로 다루는, 미국으로 따지면 "환상특급" 같은 TV 쇼가 있다면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구나무서기" 

일종의 투시 능력을 갖춘 초능력자 김서권의 일대기입니다. 종도라는 섬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혼자서만 못했던 김서권이 어느새 모든 것이 거꾸로 투영되는 투시력을 갖추고, 이를 이용하여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다가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이지요.

김서권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종도에서의 이야기와 현재의 대형 운석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교차 편집되다가 '물구나무 서기'로 현재의 초능력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끝나는 구성입니다. A와 B가 동시에 전개되는데, A는 B의 발단이라는 결말과 함께 B도 끝나는 식이지요.

우선 '물구나무 서기'라는 것을 키워드로 한 디테일이 볼거리입니다. 한번도 물구나무 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걸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 낸 작가의 상상력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물구나무 서기와 초능력이 연결되다니! 그 외에도 김서권이 꿈에서 보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의 정체가 운석이라던가, 한발두발 내딛어 물구나무 서기를 함으로 투시를 하고, 물구나무 서기와 같은 원리라 투시는 뒤집혀서 보인다는 등의 디테일들도 볼 만 합니다.

하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좀 애매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신을 본다는 신학적 담론을 SF의 형태를 빌어 써내려간 작품인가? 싶은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부수적인 이야기가 많아 혼란스럽거든요. 어린 시절 종도에서의 할아버지 환갑 잔치에 대한 장황한 묘사, 현재의 김서권이 무당과 손 잡았다던가 결혼에 실패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주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더라고요.

책 뒤의 편집자 글이나 인터넷 상에서의 리뷰를 보면 이 작품을 최고로 치는 분위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어요. 너무 멋을 부리려고 하지 말고 핵심에 집중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피노키오" 

로봇들을 활용한 전쟁이 끝난 후,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있는 로봇이 발견되었다. 그 로봇은 자신의 사명을 잃은 채 극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데...

역시나 재미있는 설정을 갖춘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고 설정도 별로 디테일하지 않으며 결말도 예상에 가까운 범작입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화에 가깝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거짓말만 하는 로봇 둘이 일종의 논리 게임을 펼치는 식으로 전개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로 진짜 사명이 무엇인지, 폭발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거짓말만 하면서 내용을 파헤치는 두뇌 게임 스타일로 말이지요. 이러려면 지금보다 거짓말 조건이 더 상세하게 설정되었어야 했지만요.

하여튼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평범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부안 왕손이" 

거대 포크레인이 약간의 고장으로 무의미한 작업만 반복하는 현장으로 팔려간 후,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소녀의 하트 수신호를 받은 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거대한 하트를 그린다는 일상계 판타지입니다.

실제로 전라도 사투리 가득한 왕손이의 의인화 묘사가 돋보이며, 아파트 단지 소녀의 하트 수 신호의 진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도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도 롯데 월드 공사 시에 작가가 목격했던, 단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진행된 무의미한 단순 반복 작업을 가지고 이러한 이야기를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네요.

그러나 하트 수 신호의 진상은 조금 생뚱맞은 데가 있고, 결말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건 별로였습니다. 매력적인 도입부, 설정,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 때문에 맥이 풀리는 느낌까지 들거든요. 분위기 상으로는 판타지 버젼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처럼 사회 고발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는데 훨씬 좋았을 거에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뱀과 소녀" 

뱀 신을 모시는 섬에서 뱀을 죽인 아이들에게 닥치는 일을 그린 단편입니다. 초자연적 존재(?)에 의한 일종의 호러물로 섬을 벗어날 수도 없고, 재앙이 다가오는 막막한 상황은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마을이 있고, 이방인이 그 마을의 금기를 어겨 끔찍하게 살해 당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를 이방인이 아니라 그 마을 주민, 그것도 반항심 많은 꼬마 아이가 금기를 어긴다는 약간의 변주만 준 셈이라 애초에 새롭거나 신선한 느낌을 받기는 힘듭니다.
또 민박집 손님은 누구고, 뱀을 어떻게, 왜 모시는 지와 뱀의 영향력도 설명되지 않아서 공포심을 자아내기는 무리입니다. 뭐가 어떻게 될지 대충은 알아야 무서운데, 지금은 그냥 수희 혼자 어둠 속에 남은게 전부니까요.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성립하기도 힘들죠.

지금의 결과물은 주인공 소녀 수희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뭐 그런 거 있잖아요, 뱀 신상 뒤에 피로 글자를 쓴다던가), 그것이 이후 섬을 찾아와 금기를 어기고 쫓기는 신세가 된 이방인에게 발견되는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쓰임직한, 긴 이야기의 도입부 정도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 단편집을 위해 새롭게 쓴 작품이라는데 이래서야 차라리 수록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거에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든 도트문더는 정직하게 게임을 해서 240달러 정도를 땄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했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부탁했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이었다.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하는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답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했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앨런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겨 왔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데...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났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두는데...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했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파티를 가지게 된 렉시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