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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얼음의 나이 - 오코우치 나오히코 / 윤혜원 : 별점 3점

얼음의 나이 - 6점
오코우치 나오히코 지음, 윤혜원 옮김, 홍성민 감수/계단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를 연대순으로 소개하며 기후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과학 서적입니다.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관심이 없던 분야인데 이전에 읽었던 "책장의 정석"에서 강하게 추천한 탓에 구입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기후 연구에 대해서는 최고라 할 만 합니다.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만큼 내용이 압도적입니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해저 퇴적물 산소동위원소비를 연구하여 당대 수온을 알아내고, 산호초 방사선 탄소 연대를 측정하여 해수면 변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 변동에 따른 일사량 변화로 지구 기후가 변동되었다는 밀란코비치 효과 검증을 통해 빙하기 발생 원인을 밝혀내고, 빙하 코어 채굴 후 이산화탄소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대기 화석 분석 등으로 기후 변화를 연대순으로 그려내는 등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연구에 관련된 다양한 그래프 등 도판도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늦으면 왜 빙하기가 시작되는지에 대해 이유에 대해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심층수 순환 때문이라는데 전혀 몰랐네요. 당연히 따뜻해져서 얼음이 녹으면 더 따뜻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원리는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저위도 지역의 바닷물은 밀도가 낮아진다.→ 따뜻한 저위도 지역의 바닷물은 햇빛에 의해 가열되고, 강수로 인해 염분이 낮아지기 때문에 밀도가 낮아진다.

2. 고위도 지역의 바닷물은 밀도가 높아진다.→ 고위도 지역은 온도가 낮고, 염분이 상대적으로 높아 바닷물의 밀도가 커진다.

3. 밀도 차이에 의해 심층수 순환이 발생한다.→ 저위도와 고위도의 바닷물 밀도 차이로 인해 심층수 순환(대규모 해양 순환)이 일어난다.

4. 심층수 순환을 통해 열 에너지가 북쪽으로 이동한다.→ 순환에 의해 저위도에서 발생한 따뜻한 열 에너지가 북쪽(고위도 지역)으로 전달된다.

5. 빙하가 녹으면 고위도 지역의 바닷물 밀도가 낮아진다.→ 빙하가 녹아 담수가 유입되면, 고위도 지역의 바닷물 염분이 낮아져 밀도가 떨어진다.

6. 밀도 저하로 심층수 순환이 약화되거나 멈춘다.→ 고위도 바닷물의 밀도가 충분히 높지 않으면, 바닷물이 심층으로 가라앉지 못해 순환이 약화되거나 중단된다.

7. 열 에너지 공급이 차단된다.→ 순환이 멈추면 저위도에서 북쪽으로의 열 에너지 이동이 차단된다.

8. 멕시코 만류의 해수가 그린란드 해로 이동해 가라앉는다.→ 현재 심층수가 형성되는 지역은 그린란드 해이며, 여기에 유입되는 멕시코 만류의 수온은 약 섭씨 10도이다.

9. 해수가 심층으로 가라앉으며 온도가 섭씨 2도까지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바닷물의 온도는 약 8도 정도 낮아진다.

10. 이 열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대기로 방출된다.→ 약 8도에 해당하는 열 에너지가 바다에서 대기로 방출된다.

11. 북대서양 북부 지역은 급격한 한랭화를 겪게 된다.→ 열 에너지 공급이 끊기면서 북대서양 북부 지역은 혹독한 추위에 직면하게 된다.

굉장히 깔끔한 빙하기 전개네요. 무섭습니다... 그래도 최근의 1만년 동안은 그나마 기후가 안정화를 찾고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물론 15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약 400년간을 소빙하기라고는 하는데 기온은 이전 시대에 비해 고작 0.2도 낮은 정도라는군요. 이 정도로도 소빙하기라고 불리울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니 기후의 영향은 정말 대단합니다. 앞으로의 지구 온난화 시기에는 기온이 1.8~3.4도나 오를 거라고 하니 앞으로가 큰일이지요. 다행이라면 빙하기는 북구, 즉 유럽 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되고 있는 점 정도랄까요? 
 그 외에도 빙하기에는 먼지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적도 지역과 극 지방의 온도차가 커쳐서 대기의 남북 방향 순환도 보다 강해지고, 그만큼 육상에서 휘말려오는 먼지가 많아지고 건조 지대가 광범위해지기 때문이었다는 등 기후 변화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학 도서라 어쩔 수 없겠지만 재미로 읽는 책은 절대 아니에요. 재미 따위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듭니다. 대학 때 접했던 교제 수준이에요. 아무리 도판이 많고 설명이 상세해도 머릿 속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문체도 딱딱하고요. 완독하는데 정말 여러 개월 걸렸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던 탓도 크지만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책의 가치는 분명하나 읽는 맛 측면에서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군요.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매슈 설리번 / 유소영 : 별점 2.5점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6점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나무옆의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디아는 일하던 서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청년 조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이의 주머니에는 리디아가 열 살 때 단짝들과 함께 했던 생일 파티 사진이 들어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에게 남겨진 조이의 유품 속 책들을 오려낸 빈 공간이, 짝이 되는 다른 책을 맞추면 메시지를 표시하기 위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조이가 남긴 메시지를 통해 그녀의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 "망치 살인마" 사건의 진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우연찮게 e-book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디아가 과거 망치 살인마의 연쇄 살인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으며, 이를 억지로 잊고 살다가 조이가 자살하고 남긴 메시지 때문에 반 강제로 망치 살인마의 정체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망치 살인마가 리디아가 숨어있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었다는 현장 묘사, 그리고 수상쩍은 아버지 토마스의 행동을 결부시켜 아버지가 진범이 아닐까?라는 전개로 진행되었지만, 조이가 라지의 이복 동생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반전이 괜찮습니다. 조지가 사진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리디아가 아니라 이복형 라지가 같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망치 살인마는 아내의 불륜 상대를 가혹하게 응징한 파텔 씨라는게 드러나지요.
이는 파텔 씨가 엄청나게 호전적이고 무서운 성격이며 조지가 유품으로 남긴 정장(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입으려고 산 것), 조지와 라지 모두 잘 생겼으며 파텔 부인이 미인이었다는 묘사, 파텔 부인이 망치 살인마 사건 직후 인도의 고향으로 가서 9개월 후에 돌아왔다는 등의 여러가지 복선으로 잘 설명되고 있어서 나름 설득력도 높습니다. 아버지 토마스의 수상쩍은 행동 역시 피해자였던 오툴 부인과 불륜 관계였다는 설정으로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 파텔 부인이 더 이상 참지 않았다는 결말도 깔끔합니다. 또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지만 장황한 심리 묘사가 많지 않아서 읽기 수월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묘사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경쾌하고 깔끔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주인공이 서점 직원인 덕분에 등장하는 많은 책들도 반가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리디아가 서점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지배인에게 추천했던 책은 "백 년 동안의 고독", 리디아가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량들을 지칭할 때 쓰는 '책 개구리'라는 표현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속 멋쟁이 개구리 제레미 피셔에서 따온 것, 조이가 남긴 책 중 리디아가 추천해서 산 책은 "나사의 회전"과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 3부작 등인 식으로요.

그러나 잘 짜여진 범죄 스릴러,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정교하다고 보기는 힘든 탓입니다. 우선 당시 형사였던 모버그의 말대로 토마스는 유력한 용의자 No.1입니다. 리디아를 찾는다는 이유로 현장을 모두 들 쑤셔 놓았을 뿐 아니라 흉기까지 들고 설쳤으며, 피해자 중 오툴 부인에게만 그의 핏자욱을 남긴 등의 정황 증거부터 차고 넘치니까요. 알리바이도 없고, 무엇보다도 리디아가 숨어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살려주었다는 건 누가 뭐래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유죄 판결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단지 '리디아가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는 이유만으로 윗 선에서 압력이 가해져 토마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중지되었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어금니 아빠 이영학을 딸이 불쌍하다고 풀어준다는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게다가 조지가 리디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유품을 남긴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구태여 리디아를 찾아가 얼쩡거린 이유, 자살하면서 유품과 메시지를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지를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을텐데요. 작 중 리디아의 서점 동료인 플라스의 말대로 '웨이터에게 팁도 안 주는 짓거리' 같은 민폐에 불과합니다.
메시지도 이렇게 장황하게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종이에 힘들게 칼질을 해서 구멍을 뚫는 것 보다는, 요약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어머니가 나를 부정했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라고 써도 충분합니다. 암호 트릭 자체로는 그럴싸하지만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데 읽는 재미는 충분한 만큼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겠습니다.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