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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공기의 바닥 - 데즈카 오사무 : 별점 2점


데즈카 오사무가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에 발표했던 성인풍 단편 극화 모음집. <<동경 표류 일기>>를 읽고, 동시대 감성을 데즈카 오사무는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려 14편이나 되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인간 드라마범죄극멜로물기묘한 맛, SF,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장르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성인물답게 정사 장면도 많고, 근친 상간에 수간!까지 등장한다는게 이채로왔고요. <<블랙잭>>으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침체기에 놓였던 데즈카의 다양한 시도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딱히 재미있지는 않더군요. 지금 읽기에는 진부한 설정과 내용이 많았고, 결말도 대체로 예상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예상 못했던 결말의 경우는, 그 결말이 딱히 좋다고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완성도도 문제가 많습니다. 전개도 잘 정돈되지 못한 작품의 경우는 생각나는대로 그린게 아닌가 의심스러웠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카멜레온>>입니다. 능력있는 직장인 카자마가 주인공인 기업 드라마로 시작해서, 카자마가 산업 스파이라는게 밝혀지면서부터 범죄물이 됩니다. 그러다가 카자마가 자신을 유혹했던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훔쳐낸 정보로 만들어낸 약의 실험 대상이 된 뒤에는 일종의 SF로 돌변합니다. 뇌 사용이 극대화되고 대신 끊임없는 식탐에 시달린다는 설정이니까요. 그리고 카자마를 유혹한 여자는 카자마가 학생 운동을 할 때 밀고로 죽고만 친구의 동생으로 모든건 복수를 위해서였다는 복수극으로 바뀝니다. 결말은 카자마가 말도 없이 화염병을 던져서 여자와 그 아버지가 타고 온 헬기를 파괴한다는, 다소 허무한 마무리였고요. 식탐으로 기형이 되어버렸지만, 분명 머리가 좋아졌을 카자마인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게 이상했고,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의 끝은 공멸이라는 걸까요? 설령 그렇다손 쳐도, 이 모든걸 설득력있게 풀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었습니다. 분량을 늘렸더라면 그래도 볼 만 했을텐데 말이지요.

엄청난 인종 차별 주의자 오하라가 베트남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부하였던 흑인 죠의 심장을 이식받은 딜레마를 그린 <<죠를 방문한 남자>>, 홈리스 거지로 분장하는 취미가 있는 사장이 한 눈에 반한 거리의 여자와 사장 신분으로 결혼하지만, 그녀는 홈리스 거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밤의 소리>>, 계곡에 갖혀 사는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 <<우리 계곡은 사람들이 모른다>> 정도는 괜찮았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오히려 <<밤의 소리>>는 결말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청년 사장 가보리가 취미인 거지로 변장했을 때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을 자기 회사에 입사시켜 결혼까지 하지만, 그녀가 사랑했던건 홈리스 거지였다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여자가 가보리를 총으로 쏜 시점에서, 그녀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는 약점은 치명적입니다.

한마디로 극화 전환기에 표류하던 데즈카 오사무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좋아하던 모험물, SF에 인간 드라마, 사회 고발 등을 자극적인 성관계와 폭력으로 녹여내고 있지만, 잘하고 좋아하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제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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