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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막차의 신 - 아가와 다이주 / 이영미 : 별점 2.5점

막차의 신 - 6점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소소의책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다는 소설. 아무런 정보없이 그냥 추리 소설이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추리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드라마 단편집입니다. 아래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원 전철에서 치한을 만난 베일에 싸인 여성(「파우치」), 납기 마감에 쫓기는 와중에 휴가를 명령받은 벤처기업의 엔지니어(「브레이크 포인트」), 근육질 경륜선수와의 엇갈린 사랑에 고민하는 전문직 여성(「운동 바보」), 이발사 외길 인생을 걸어온 아버지의 임종을 코앞에 둔 아들(「오므려지지 않는 가위」), 콩트 작가 여장 남자의 충격적인 과거를 듣는 젊은 연인(「고가 밑의 다쓰코」), 자기의 충동적인 실수를 오해해서 등교 거부를 하게 된 소년을 몹시 걱정하는 인간 혐오증 성향의 여고생(「빨간 물감」),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만나기 위해 25년간 역 매점에서 일한 중년 여성(「스크린도어」) "책 후기에서 인용"

특징이라면 각 작품들이 모두 연결된, 연작이라는 점입니다. 제목처럼 작품들 대부분이 막차와 관련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겹치거나 같은 막차에타고 있었던가 하는 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파우치" 속 도키타가 탔던 막차에 "운동 바보" 속 도모코,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 속 시바야마, "고가 밑의 다쓰코" 속 사야의 연인 쇼짱이 타고 있었거든요. 사야와 다쓰코는 멈춘 막차 바로 밑에 있고요. 또 "빨간 물감" 속 사가노는 다쓰코가 어렸을 때, 해수욕장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으며, 다쓰코는 "스크린도어" 속 히로타 기미코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반전이 있거나, 일종의 단서가 있어서 살짝 추리물 성향을 보이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습니다. "파우치"가 대표적이에요. 도키타가 남성이라는걸 드러내는 장면과, 그가 화장을 지우지 않고 아내 병원으로 찾아가 비밀이 들통난다는 결말은 반전물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인데, 도키타가 여성 옷을 입고 있는 시점의 심리 묘사로 이를 잘 덮고 있습니다. 인사 사고 때문에 갖힌 막차 안에서, 사람들과 막차 안 광고를 보며 느끼는 심리의 흐름이 정말이지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디테일하고 섬세했습니다. 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했지만, 그러기 싫었던 연인의 엄청난 거짓말을 듣는 "운동 바보"의 결말도 나름 반전이었고요. 

그 외에도, 오해 때문에 참극이 벌어질 뻔 했던 "빨간 물감"은 이야기 전개를 바꾸면 충분히 추리물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였으며, "고가 밑의 다쓰코"에서 다쓰코가 어렸을 적, 엄마가 바닷가에 온 적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는 수영복 자국 이야기는, 단서로서 충분했던 마음에 드는 디테일이었습니다.

꼭 추리물 느낌을 주지 않더라도, 이런 디테일과 섬세한 묘사는 대부분 작품에서 빛납니다. 작품 중에서는 "브레이크 포인트"가 가장 와 닿더군요. 아무래도 저와 조금 관련된 분야인 탓인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렸지만, 우연히 접한 권투를 통해 희망을 꿈꾼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고요. 다른 작품들 거의 모두 팍팍한 삶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는 이야기들로, 이런 부분이 높은 인기를 얻은 비결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지나치게 진부하고 전형적인 전개를 보이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에서, 평범한 직장인인 시바야마가 암으로 임종을 앞 둔 아버지의 이발소를 잇기를 결심하자, 아버지가 가위를 한 번 오므리고 타계한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야말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쓰겠다! 고 한다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진부한 전개와 묘사였다 생각되네요. "스크린도어"도 디테일은 좋지만 진부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좋지만, 제가 생각했던 작품은 아니고, 몇몇 작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감점합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딱히 추천드리기는 애매하네요.

2021/04/10

대량살상수학무기 - 캐시 오닐 / 김정혜 : 별점 3점

대량살상수학무기 - 6점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흐름출판

수학박사이자 펀드회사 퀀트, 데이터 과학자 등으로 일하던 저자가 빅데이터 경제가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내용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쓴 수학, 과학, 인문학 교양서입니다. 빅데이터를 기반한 수학 모형 프로그램이 왜 대량살상수학무기 (이하 WMD)로 불릴만큼 위험한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 줍니다.

위험한 이유는, 인간의 편견과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으며 유해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개인이 반박하거나 수정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대체로 직접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대체 혹은 대리 데이터로 억지로 연관성을 도출하고요. 한 마디로, 가난한 동네에 살고, 신용이 낮고,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건 아닌데 이런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건 뭔가 있어보이지만 실상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은 논리라는 겁니다. 특정 피부색은 행실이 나쁘고, 그들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거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됩니다.

또 이러한 WMD가 널리 사용됨으로 인해서,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차별받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신용을 측정하는 '신용평가점수'입니다. 신용평가점수는 대부분의 경우 업무 능력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평가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죠. 말 그대로 하향식 악순환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요. 얼마전 대통령께서 신용도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더 많이 해줘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었습니다. 물론 원칙에 따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 신용도로 대출을 하게 되면, 당연히 부자나 안정적인 직장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어요. 정작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고금리 사금융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어렵겠지만, 뭔가 대책은 필요한건 분명해요.

인간의 편견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여 범죄자들을 더욱 공정하게 대하자는 재범위험성모형 recidivism models 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양형의 일관성을 높이고, 판사의 기분이나 편견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며, 평균 수감 기간도 줄여서 예산을 절약해 주는 획기적인 모델이라는데, 아쉽게도 이 역시 전형적인 WMD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대리 데이터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일정한 직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족과 친구가 많은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면 이들은 재범 위험성 평가에서 받은 높은 점수가 더해져, 더욱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범죄자들에게 둘러싸인 감옥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수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수감 생활은 그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즉 재범 위험성을 확실히 증가시키고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더라도 예전에 살던 가난한 동네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과자라는 별까지 단 상태라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결국 그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걸 재범위험성모형이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냥 하향식 악순환의 또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단지 '현재의 범죄'만 놓고 판단을 해야지, 사건과 관계없는 주변 데이터들을 판단에 집어넣는건 잘못된 알고리즘이죠.

그 외, 취업 시장, 대학 입시 시장 등 다양한 곳에서 WMD가 사용되는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의 가혹한 일정 관리는 끔찍할 정도에요. 게다가 거의 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상 일반 개인이 반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게 무섭네요. 거대하고 불투명하며, 무책임하다는 측면에서 최근 화두가 되는 마이크로 타기팅 광고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WMD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한 무리수도 몇 가지 있습니다. 경찰이 사용하는 범죄 예측 모형 프레드폴이 대표적입니다. 경범죄를 중시하도록 설계되어, 빈민가 중심의 순찰을 통해 검거율이 대폭 상승했지만 저자는 진짜 중범죄는 잡지 못한다고 역설하지요. 하지만 순찰 경관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제사범을 체포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순찰이라는 행위가 거리에서의 범죄 단속이니까요. 저는 순찰 경관이 필요한 범죄 카테고리 중심으로 설계된 지금 모델은 충분히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력서 서류 심사에서, 깔끔한 것과 지저분한 것의 차이로 평가하는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이력서를 내는데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을 선발하는게 마땅하니까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배려심,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고요. 아, 이런 것도 대리 데이터에 따른 개인적 편견일까요?
비만인에게 건강 보험료를 많이 걷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비만이 병의 원인임이 분명하면, 그다지 잘못된 정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비슷한 사례가 계속 이어지니 좀 식상한 측면도 있고, 목차 구성에서 'WMD가 무엇인지'를 좀 더 명확하 한 뒤, 뒤의 사례들을 소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각 사례 소개 때 마다 '이건 이러해서 WMD이다' 에 대한 설명이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등장하는데, 목차 구성을 통해 이런 부분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걸로 보이거든요.

아울러 이런 프로그램을 통한 개인 평가가 과연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근본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모든 모델, 즉 대출이나 재판, 고용, 입시 등 거의 모든 경우에서 '평가'라는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평가는 그동안은 해당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에 의해 진행되었고요. 과연 사람이 이런 프로그램보다 더 나을까? 라는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책에서는 대체, 대리 데이터가 문제가 있다고 계속 주장하지만, 사실 경험적으로 어느정도 성립하는 대체, 대리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고요. 예를 들면 예전 "신입사원"이라는 만화에서 보았던, '학력필터' 이론이 그러합니다. 부모님 노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학생들끼리 '학력' 으로만 평가해서 순위가 높은 대학에 들어간거라면, 저라도 명문대생을 우선 뽑을 것 같네요.

그래도 오랫만에 굉장히 유익하고 좋은 독서를 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인공지능의 문제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가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21/04/09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정영목 : 별점 2점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4점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던 백만장자 노부인 애비게일 도른이 수술 중 살해당했다. 범인은 병원 내에 있는게 확실했지만 수사는 난항에 빠졌고, 주요 사건 관계자였던 외과 과장 닥터 프랜시스 재니까지도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실마리를 잡지 못해 괴로워하던 엘러리는 친구인 네덜란드 병원 의료과장 존 민첸이 한 말 덕분에 범인을 추리해 내는데 성공한다.

엘러리 퀸국명 시리즈입니다. 국명 시리즈다운 본격 추리물로,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 게임이 펼쳐집니다. '독자에의 도전'도 적절한 위치에 삽입되어 있고요.

공정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더해, 중요 단서는 엘러리 퀸이 중요하다고 콕 짚어 주기까지 하니까요. 때문에 추리 자체는 비교적 쉽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1년에 발표되었던, 비교적 초기작인 탓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언급하는 '구두'가 대표적입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이미 엘러리는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구두 혀가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닥터 제니의 구두 사이즈를 물어봅니다. 키가 16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닥터 제니의 발 사이즈도 245밀리미터인데, 발견된 구두는 240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이를 통해 독자는 범인은 발이 240밀리미터보다 작은, 아마도 여성일거라는 추리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구두 끈을 수선했던 반창고도 마찬가지에요. 닥터 민첸이 "외부인들은 아무도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반면, 병원에서 이런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지"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범인은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일 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동기도 쉽게 드러납니다. 애비게일 도른이 죽으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많지만, 닥터 재니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은? 닥터 재니의 아들로 밝혀진 토머스 스완슨밖에 없습니다. 책을 함께 쓰고 있다고 밝힌 닥터 존 민첸이 책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엘러리 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살인이라는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습닌다. 즉 범인은 토머스 스완슨과 관계가 있는,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인 거지요.

물론 그냥 이렇게 사건이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트릭도 적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범인인 루실 프라이스가 어떻게 닥터 재니로 변장한 범인과 함께 범행 시각에 함께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트릭으로, 그녀가 닥터 재니로 변장하고, 목소리는 자기 목소리만 내었다는 간단한 1인 2역 트릭이지만 꽤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트릭은 언제나 간단하면 간단할 수록 설득력이 높은 법이지요. 

범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추리쇼도 멋졌습니다. 속기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루실 프라이스를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여있는 범행 현장에 불러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메모를 쓰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을 눈치 챈 퀸 경감이 "‘도른 부인과 닥터 재니의 살인자는…….’ 토머스, 이 여자를 잡게! ‘루실 프라이스입니다!’”라고 외치는데, 셜록 홈즈"주홍색 연구"에서, 짐을 가져온 마부를 붙잡고 범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나중에 추리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만은 않고, 나름 여러가지 변수를 생각해서 추리를 했다는걸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만큼 멋지지고,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주요한 부분에서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티가 물씬 나는 탓입니다. 가장 작위적이었던건 '사라진 캐비닛' 입니다. 원래 닥터 재니가 살해된 현장에는 캐비닛이 있었습니다. 등 뒤 캐비닛으로 향하는 사람을 닥터 재니가 의심하지 않아서 살해당했고, 이로써 닥터 민첸이 초반에 말했던 "그 기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재니와 나 그리고 재니의 조수인 프라이스 양뿐일세. 프라이스 양은 훈련받은 간호사인데, 일반적인 사무를 본다네.”를 통해 범인이 드러나는 중요한 단서죠. 그러나 캐비닛의 존재는 마지막에서야 밝혀집니다. 함께 책을 쓰던 닥터 민첸이 모든 관련 서류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라면서요. 서류를 없앨 때 '캐비닛' 째로 가져가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서류가 아니라 휴지 한 장을 가져가도 문제가 될 상황인데 캐비닛 째로 무언가를 가져가서 없앴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이 허수아비도 아니고,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설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캐비닛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책상 틈을 통과하여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시체를 놔 둔 채로 캐비닛을 어떻게 치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또 앞서 구두와 반창고 때문에 범인이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라는건 이미 추리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병원에 있던 모든 관계자,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인적 사항을 낱낱이 파헤치는게 경찰의 할 일인데, 도대체 경찰은 뭐 하는지, 엘러리는 왜 이야기를 안 해 주었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마침 그 시간에 모든 주요 관계자들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못하는 것도 작위적이며, 제목 역시 마찬가지에요. '네덜란드' 는 이야기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건 무대가 된 병원 이름이 네덜란드 기념 병원일 뿐이니까요. 국명 시리즈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요.

아울러 전개도 불만스럽니다. 수상한 용의자들을 잔뜩 만들기 위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는건 억지스럽고 짜증만 났어요.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 앞에서 모든 주요 관계자들이 뻔뻔하게 자신이 했던 일, 만났던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들이 사실만 이야기했어도 절반 분량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이런 억지는 고전 본격 추리의 황금기 시절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기는 합니다. "비숍 살인사건"에서 처럼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묘사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억지스러워요. 정신나간 인물들이 태반이거든요. 정신병자이자 광신자인 사라 풀러, 누이 돈을 축내며 살아가는 기생충 헨드릭 도른은 고전 본격물에 등장하는 짜증나는 용의자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였고, 기묘한 합금을 발명한다는 헛똑똑이 모리츠 크나이젤은 엘러리 퀸이 호적수를 만났다 운운하면서 띄워줬는데, 바로 다음에 자신이 살인자의 목표라는 허황된 추리를 떠벌여서 왜 등장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더군요. 아이가 죽고, 산모도 곧 죽을거라는 잔인한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산부인과 의사 닥터 펜니니도 사악함만 기억에 남을 뿐 등장할 이유가 없던건 마찬가지고요. 사라 풀러를 강간하다시피해서 훌다 도른을 낳게 한 내과 의사 루시우스 더닝은 그야말로 최악의 쓰레기였는데, 적절한 응징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엘러리 퀸이 인물 묘사에 약하기는 한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공정함' 측면에서는 백만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본격 추리물로서의 묘미를 잘 갖추고 있지만, 추리 자체는 추리 퀴즈 수준인데다가 작위적인 전개와 함량 미달의 인물들로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국명 시리즈는 저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추리물은 많으니, 국명 시리즈는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