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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4

누런개 - 조르주 심농 / 임호경 : 별점 2.5점

누런개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브르타뉴의 항구 도시 콩카르노에서 지역 유지 모스타구엔이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메그레 반장이 부하 루르와와 함께 수사를 위해 현장으로 향했지만, 모스타구엔의 절친이며 항상 라미랄 호텔에서 만나던 지인들인 장 세르비에르, 르포므레가 각각 실종되고 독살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또 다른 지인 닥터 미슈까지 구금된 상황에서, 메그레는 서서히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가는데....

'열린책들'의 메그레 시리즈 5편입니다. 메그레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이지요. 과거 국내에서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읽어봤었지만, 너무 옛날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던 차에 알라딘의 15일간 무료 대여 이벤트 기회를 통해 다운로드 받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역시나, 대표작은 대표작이네요. 메그레 시리즈의 모든 장점이 잘 드러나 있는 덕분입니다. 우선 당대 프랑스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아주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패하고 방종한 지역 유지들과 피해자인 엠마, 레옹 커플의 비참한 삶과 현실을 대비시키는 부분은 백미이고요. 사회의 모순, 가진 자들의 횡포를 비난한다는 점에서 시공을 초월한 사회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아울러 사건 현장마다 나타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는 누런개를 둘러싼 긴장감도 잘 드러나고요.

또 인간 심리를 깊게 파고들어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메그레 반장의 능력도 유감없이 펼쳐질 뿐 아니라, 그동안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었던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는 다르게 메그레 반장의 추리법인 '소거법'이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반장은 모스타구엔 사건, 라미랄 호텔 독살 미수 사건, 장 세르비에르 실종 사건, 르포므레 독살 사건에 대해 각각 범행이 가능한 인물을 설정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통한 소거법으로 결국 범인을 추리해내지요.

진범 닥터 미슈에게 단두대 행이 아니라는 것은 아쉽지만 나름의 응징이 가해지고, 불행했던 엠마 커플이 단란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 대부분인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저는 이런 결말이 더 좋더라고요. 고생은 이미 할 만큼 한 엠마에게 더 이상 괴로운 일이 없었으면 했으니까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전개에 있어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많이 띕니다. 초반부, 페르노에 다량의 스트리크닌이 함유된걸 닥터 미슈가 알아챈게 대표적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는 순전한 우연에 불과해서 정교한 맛은 부족합니다.
메그레 반장이 옥상에 숨어 엠마와 레옹 커플의 애정 행각을 엿보는 동안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레옹이 진범이 아님을 눈치챈다는 것 역시 완전한 우연입니다. 또한 이 때 레옹의 은신처를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 결국 마지막 추리쇼에서 진상을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것 역시 단점이고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추리적으로 괜찮다고 해도 메그레 시리즈 기준이지 일반적인 추리소설 기준으로 보면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금 읽기에 낡았다는 것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고전으로서, 또 유명 시리즈의 대표작으로서의 가치는 아직 유효합니다. 고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7/09/10

올빼미의 울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홍성영 : 별점 3.5점

올빼미의 울음 - 8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엿본 여자에게 마음이 팔린 로버트는 그녀를 스토킹하다가 발각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 제니가 로버트를 사랑하게 되어 약혼자 그렉과 파혼했다. 앙심을 품은 그렉은 로버트를 습격했지만 행방불명되었고, 로버트는 그렉 살해 누명을 뒤집어 썼다. 이후 주변의 시선과 로버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제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데....

서늘한 심리 묘사 측면으로는 장인의 반열에 오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장편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집어들었습니다. 제가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 '버티고' 레이블이라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버티고'에서 출간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또다른 작품인 "심연"은 영 별로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 최고입니다. 나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그것이 점차 커져가 그와 그 주위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특히나 중반 이후, 제니의 약혼자 그렉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를 죽인 살인자로 몰린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에 무너져가는 제니와 로버트의 삶에 대한 묘사가 그만큼 대단하거든요. 무엇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전개는 보는 내내 굉장히 답답하고 짜증나지만,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해줍니다. 비유하자면 야구 응원팀이 매 회 실점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무사 만루 찬스를 잡지만, 마지막 회까지 한 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느낌이랄까요? 무언가 해결될 것 같지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수렁에 계속 빠지는 전개는 정말이지 똑같아요.

이 와중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역시 수렁에 빠지는 과정에 실감을 더해 줍니다. 유일한 친구로 믿었던 직장 동료마저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살인자라 욕하며, 심지어 경찰마저도 면전에서 대 놓고 비웃는 등의 묘사가 이어지는데 독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끔찍해요. 그렉이 로버트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쳐들어온 날, 운 좋게 그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로버트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렉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이웃 콜비씨 에피소드는 그 중에서도 백미입니다. 흉기를 들고 쳐들어 온 낯선 남자를 제압했지만, 이웃이 나보다 이 남자를 더 신뢰하는 상황인 것인데 이 쯤 되면 모든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것 같아요. 출구없는 감옥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주인공 로버트가 제대로 된 인물은 아니라는 단점은 좀 큽니다.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이 상황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겠지만, 그가 제니의 집 앞을 일부러 배회하고 스토킹한 것은 사실인 탓입니다. 제목처럼 올빼미가 밤에 울 듯, 그의 밤 산책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거든요. 그가 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뒤 이어질 엄청난 비극 - 세 명의 죽음 - 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면죄부를 주기 힘듭니다. 올빼미만 울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테지요...
제니의 자살 역시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탓도 있고, 그 외에도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몇몇 묘사들도 로버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또 제니가 낯선 스토커와 곧바로 사랑에 빠진 이유, 로버트의 전처 니키가 그를 파멸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이유 등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해 답답합니다. 캐릭터 설정이 그닥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제니는 동생의 죽음으로 죽음과 항상 맞닿아 있었기에 '죽음'을 상징하는 로버트와 엮일 인연이었다...는 설명(물론 설득력은 없습니다)이라도 있지만 니키, 그렉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해요. 니키가 왜 로버트를 이렇게까지 미워하는지 - 심지어 자기 돈까지 들여가면서 로버트를 파멸시키려 노력할 정도로 - 독자는 도무지 알 길이 없네요.
그렉은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성인에서 복수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어린아이로 돌변해서 역시나 영 별로입니다. 제니가 자살한건 로버트 때문이 아니라, 실종된 그렉을 살해했다는 누명 때문이라는 것도 망각한 유아적인 태도에는 몹시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마지막에 술에 취한 그렉에게 니키가 살해당하는 결말은 끔찍하지만 시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니키가 벌인 그간의 행동은 죽어도 싸다 여겨지니까요. 그렉 역시 보석 기간에 살인을 저질렀으니 전기 의자 행은 피하기 어려울테고요. 이 정도면 9회말까지 시청한 관객을 위한 시원한 역전 홈런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9회말까지 보는 동안 암에 걸려도 일곱번은 더 걸렸겠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큰 단점 때문에 조금 감점하지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명성에 비하면 '재미'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작가인데 이 작품은 제가 읽은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범죄 문학 애호가 분들께 적극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영화화가 바로 연상될 정도의 묘사가 출중한데 역시나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그것도 1987년, 2009년 두번이나요. 이 중에서도 1987년 작품은 거장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하기도 했고, 가장 잘 만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 영화 중 한 편이라고도 하니 한번 구해보고 싶군요.

2017/09/09

토니와 수잔 - 오스틴 라이트 / 박산호 : 별점 2점

토니와 수잔 - 4점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장전문의 아놀드, 자식 세명과 함께 사는 수잔에게 전 남편 에드워드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가 쓴 소설을 읽고 평가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수락한 수잔에게 "녹터멀 애니멀스"라는 소설이 전해졌고, 수잔은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소설과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반추하게 되는데...

어딘가에서 멋드러진 리뷰를 읽고 집어든 작품입니다. 48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으로 극단적인 "액자 소설"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에드워드의 "녹터멀 애니멀스"라는 작품을 작 중에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수잔의 심리와 함께 실시간으로 병행 전개하고 있거든요. "녹터멀 애니멀스"의 주인공이자 화자 '토니 헤이스팅스'와 '수잔'이 전개의 두 축이라서 제목도 "토니와 수잔"이고요.

그런데 "녹터멀 애니멀스"는 딱히 대단한 작품은 아닙니다. 아내와 딸이 강간 살해당한 대학 교수 토니를 그리는데, 묘사는 괜찮지만 신선한 부분은 없는 탓입니다. 이런 류의 복수극은 너무 흔하지요. 토니를 유약한 찌질이로 설정하여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기는 하지만 그 뿐입니다. 불한당들에게 어설프게 저항한 것 때문에 자책하는 묘사를 보다 상세하게 풀어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수잔 파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액자 소설의 경우, 작중 진행되는 책과 본편 이야기가 어떻게 엮이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는데 절묘하게 엮인다던가, 아니면 그냥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한 트릭이 숨어있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용되는게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수잔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중년 여성의 상념을 다룬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정교하게 짜여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책을 보낸 의도가 일종의 복수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전개가 특히 그러합니다. 25년전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자신을 비난했던 수잔에게 "내가 쓴 소설을 읽어봐! 죽이지!"라는 과시, 그리고 그녀의 대한 경멸을 담았거든요. 마지막에 소설을 다 읽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러 오겠다고 했지만 결국 수잔을 바람 맞힌 이유도 "너의 의견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라는 극도의 모욕이고요.

허나 이 모든 것은 수잔의 생각일 뿐, 별다른 근거가 있는건 아닙니다. 그나마 근거라면 에드워드가 찾아오지 않은 정도? 그 외의 모든 것들 - 수잔이 책을 읽고 나서 현실에 타협한 자신과 현 남편 아놀드에게 분노를 느낀다던가, 에드워드의 복수라는 것을 눈치챈다는 것 등 - 은 자신의 과거와 처한 상황에 대한 수잔의 생각일 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페이스 북 등의 SNS에서 잘나가는 동창의 근황을 보고 열폭하는 심리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아서 이 동창이 나를 미워하는구나! 라고 오해하는 식입니다.

아울러 본인 상념에 기초해서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평이 궁금하면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편지를 보낸건 최악입니다. "녹터멀 애니멀스"를 빗대어 보면, 토니는 평생을 찌질하고 나약하게 보냈지만 결국 원수에게 마지막 응징을 가하고 죽습니다. 이처럼 에드워드 역시 마지막 복수를 수잔에게 가하는데 성공했다면 이후 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쉽게 도출될 테지요. 즉 에드워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무의미한, 헛된 몸부림일 뿐입니다.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한 온갖 생각은 다 하면서 이런 정도의 상상력조차 수잔이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잔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져 버립니다. 순전히 그녀의 망상일 뿐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만들 뿐이에요.

물론 아주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480여 페이지 분량이 쉽게 읽힐 정도로 잘 쓰여져 있긴 하거든요. 특정한 책을 읽고 특정한 독자가 느끼는 온갖 상념을 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지극히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든 하나로 완결된다는 점도 대단했고요. 또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액자 소설 상식에서 벗어난 구성의 아이디어가 참 좋아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보통 액자 소설은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밖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는 엮이는데, 이 책은 그냥 독자의 감상평으로만 엮여 있다니 정말로 기발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좋은 작품, 좋은 '스릴러'라고 보이지는 않았어요. 한 여자의 내면 심리 묘사를 그린 일종의 순문학,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인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버티고" 레이블의 책들은 심리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 많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 심리 묘사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권해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단순한 상념이 대부분인 수잔의 파트는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