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5/08/02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 정태원 (시그마 북스 001) : 별점 4점

재앙의 거리 - 8점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엘러리 퀸은 소설을 쓰기 위해 엘러리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한적한 시골마을 라이츠빌을 찾았다. 마을 창시자의 후예이자 지역 유지인 은행장 라이츠 씨의 집에 세를 든 퀸은 라이츠 가족과 친해졌다.
라이츠의 세 딸은 모두 미인인데, 둘째 노라는 약혼자가 사라져 버려 몇 년째 집안에만 은둔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약혼자 짐이 돌연 돌아왔고,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짐의 짐을 옮기던 엘러리와 셋째딸 패트리샤는 짐이 쓴, 아내 살해를 예고하는 듯한 편지를 발견했다. 둘은 짐을 철저하게 감시했지만, 새해 전야 파티에서 노라가 한두 모금 마시던, 짐이 만든 칵테일을 억지로 빼앗아 마신 짐의 동생 로즈매리가 죽었고, 여러 정황 증거로 짐이 범인으로 몰리는데...

엘러리 퀸의 기념비적인 라이츠빌 시리즈 제 1편입니다. 1942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현재까지도 추리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요. 게으른 탓에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가공의 마을 라이츠빌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소도시 특유의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그리고 사건의 주 대상인 라이츠 가의 미녀 3자매 같은 설정은 명백히 이후 작품에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일본 본격물에 비슷한 설정과 묘사가 많지요. 

내용은 기념비적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합니다. 딱 한 명만 살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살인계획을 눈치챈 엘러리와 패트리샤의 고민을 다루는 초, 중반부와 실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 휩쓸려 들어간 라이츠빌의 군중 묘사와 법정극으로 이어지는 구성이고요. 

그래도 작가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인 장치는 굉장히 탄탄한 편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도 드라마와 잘 어우러지고요. 덕분에 국명 시리즈보다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국명 시리즈는 트릭에 너무 집중한 탓에 실제 이야기 전개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보다 현실감있는 전개를 보여주는게 독특하면서도 좋습니다. 엘러리 특유의 추리쇼같은 사건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비극적인 결말과 인간 관계의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 점은 드루리 레인이 등장하는 "비극" 시리즈가 연상되는데, 엘러리 퀸의 트릭과 드루리 레인의 서정성이 합쳐진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법정극의 묘사도 좋고 라이츠빌이라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묘사 역시 읽는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 디테일이 잘 살아있으며 퀸의 잘난척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만 합니다.

그러나 여주인공이라고 할만한 패트리샤 라이트의 묘사가 그간 엘러리 퀸 작품에 등장하던 말괄량이 아가씨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러리는 여성 캐릭터 묘사에는 서투른 것 같아요.
단 한 건의 살인사건만 등장하며, 살인이 최소한이나마 가능했던 인물이 한정되어 있어서 정통 퍼즐 미스테리보다 추리적 흥미는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그간 작품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덜어낸 것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제가 읽었던 엘러리 퀸 장편 중에서는 최고작입니다. 헌책방에서 운 좋게 구입했는데, 마침 정태원씨가 번역한 전설의 시그마북스였다는 것도 좋았고요. 역사적인 작품이자 엘러리 퀸 작품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어서 좀 후회가 되기도 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과거 읽었었던 라이츠빌 시리즈 "열흘간의 불가사의"와 "폭스가의 살인"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2005/08/01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 알란 파커 (2003) : 별점 4점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과거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지적이며 존경받던 철학과 교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 6년간의 수감 생활 후 사형 집행일을 불과 4일 앞두고 게일은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 하게 되며,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데이비드 게일의 살해 혐의에 대한 인터뷰는 빗시 블룸(케이트 윈슬렛)을 통해서만 할 의사를 밝힌다. 인터뷰는 화,수,목 3일간 매일 2시간씩 진행하며 금요일은 그가 사형당하는 날. 빗시는 그가 살해범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과거 그가 사건에 이르기까지에 행적과 진상을 알아가게 된다. 

과거 데이비드 게일은 저명한 교수이자 사형제도 폐지 운동 단체인 '데스워치'(Death Watch)의 지역부장으로 부와 명예를 함께 누려왔으나 자신이 가르치던 벌린이라는 여학생에게 유혹당해 한순간 자제력을 잃고 관계를 가지지만 학교에서 성적부진으로 퇴학당해 앙심을 품은 벌린에 의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 나긴 했지만, 그 순간부터 게일은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것 - 사랑하는 가족, 학자로서의 명예, 최소한의 자존심 등 -을 송두리 채 잃고 만다. 이제 그에게 친구는 데스워치의 회원이자 오스틴 대학 교수인 콘스탄스 (로라 리니)만이 유일하게 남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데이비드 게일은 콘스탄스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유일하게 남은 친구인 콘스탄스의 불치병은 그에게 커다란 낙심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러한 콘스탄스는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 된다. 곧바로 경찰은 데이비드 게일을 의심하게 되며 벨린의 강간범으로 기소 되었던 그를 의심한다. 부검 결과 콘스탄스의 몸에서는 데이비드 게일의 정액이 검출이 되고 그는 강간 살해범으로 구속된다.

빗시 블룸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점점 더 그가 무죄이며 누군가의 음모로 누명을 쓴 것 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인터뷰 중간 숙소에 침입한 누군가에 의해 콘스탄스 살해 직전의 촬영 비디오를 손에 넣은 블룸은 그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지만 이제 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도 채 남지 않게 된다...


사회파 감독으로 이름 높은 거장 알란 파커의 2003년도 작품.
영화의 줄거리는 빗시를 주인공으로 해서 과연 데이비드 게일이 무죄인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리고 데이비드 게일의 과거에서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이야기의 두 가지로 짜여져 있습니다. 내용이 좀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빗시와 데이비드의 첫 만남에서 시작해서, 관객들에게 차분히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과 증거를 하나씩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끌고가는 과정이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인터뷰에 의한 회상과 현재 시점의 조사, 행동이 교차 편집되는 화면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독창적이어서 알란 파커가 거장이라는걸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고요.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며 점차 데이비드가 무죄라는 사실을 점차 관객에게 암시해 주며 그의 사형까지 빗시가 모든 증거와 단서를 모아 그를 구해낼 수 있을지?에 포커스를 맞추며 데이비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쫓는 후반부 전개 방식은 "환상의 여인"과 비교적 유사한데, 빼어난 긴박감을 보여줍니다.
정보가 하나씩 쌓여가며 해답에 이르므로 추리 영화 매니아도 즐길거리가 많다는 장점도 큽니다. 복선도 명확하고 내용면으로 허술한 부분도 거의 없는 꽉 짜여진 덕분입니다.
그리고 "The Wall"이나 "The Commitments" 같이 음악 관련 영화로 유명한 감독답게 음악의 선곡이 상당히 좋은 것도 마음에 듭니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기본 내용과도 살짝 겹쳐지는 중의적 구조 역시 상당히 고급스러운 감각이 느껴졌어요.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재미와 더불어 진한 메시지가 있는 묵직한 영화라 추천할 만 합니다. 
 
하지만 개봉 당시 소개되었던 것 같은 극적 반전은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평하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며 흘러가서, 결말을 예상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초중반까지는 정통 추리 스릴러물의 형태를 따라가지만,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결말로 완결되기 때문에 추리물이나 반전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빗시가 최후의 증거를 가지고 사형 집행장으로 달려가는 와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이었고, 관객에게 부가 설명을 하기 위한 사족이 약간 긴 감도 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비슷한 메시지라도 저에게는 한없이 지루하기만 했던 "데드맨 워킹" 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대표작가 대표소설 2 - 한국 추리문학 [신예상] 수상작가 대표소설 : 별점 1점

해난터에서 발간한 한국 추리문학 기획 앤솔로지 중 한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주관하는 신예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대표작을 골라 수록한 책입니다.

요사이 추리 소설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지만 거의 번역물이니 국내에도 새로운 작가들이 좀 괜찮은 작품을 많이 발표해 주어야 할 때죠. 그러나 이 책은 현재의 한국 추리 문학계의 침체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너무 많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베스트를 꼽기가 어려울 만큼 단편으로서의 기본 완성도가 의심되는 작품이 절반입니다. 단편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걸까요? 저는 단편이 장편으로 가는 첫 스텝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또 너무 설명적인 부분이 많거나 적고 추리물로서의 가치보다 드라마에 치중하는 경향이 너무 많은 것도 불만스럽네요. 보다 임팩트있는 깔끔한 완성도를 짧은 페이지에서나마 보여줄 수는 없는걸까요?
그나마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췄다고 생각되는 것은 "목격자의 증언은"과 "2시간 10분", "더블 플레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도시의 신기루", "천생연분" 정도이며, 개중 베스트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를 꼽고 싶네요.

그러나 이런 책을 제값주고 산다는 것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수고해주신 다른 작가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몇몇 작가는 정말이지 독자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째 단편만큼은 수십년전의 김래성 선생님때보다도 퇴보한 듯한 느낌만 계속 들어 씁쓸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현웅 "목격자의 증언은"
정현웅씨는 그래도 기본기는 있으신 작가이니 만큼 어느정도 단편으로서의 품격과 완성도는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1인칭 화자에 의해, 그것도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본격 트릭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트릭이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설정면에서 헛점이 조금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유우제 "2시 10분의 비밀"
새벽 2시 ~ 2시 30분 사이에 벌어지는 연쇄 방화사건에 있어 시간대에 감추어진 비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전개면에서는 동서 추리문고 "특별요리"에 같이 실려있는 "오터모올 씨의 손"이라는 작품이 연상되나 나름 기발한 면이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 하지만 주인공 이름을 "C기자", "경찰관 P"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왠지 성의가 없어보였고 불필요한 에필로그를 말미에 집어 넣은 것은 군더더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다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반전과 내용을 보여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대희 "빠빠라치"
누드 사진작가에게 의뢰가 들어온 부부관계 촬영 요청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단 추리물은 아니었습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와 이야기로 구성되어 흥미는 조금 가지만 내용면에서 너무 시시하고 허무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김상헌 "당신은 그대를 아는가"
서로 이웃인 두 부부의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외국 단편에 흔히 봄직한 소재와 전개로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반전이 시시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좋은 점수를 주기는 역시나 어려워요.

강형원 "제임스 본드라 불리운 사나이"
한마디로 제임스 본드를 다룬 팬픽, 그 이상의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웃기기는 합니다만 인터넷 유머 게시판 수준. 이게 대표작이라니 다른 작품의 수준은 과연...?

안광수 "복수연맹"
제목과 내용이 엇박자로 노는 듯한 작품입니다. 화자가 "복수 대행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복수연맹"이라는 회사의 창업 결심에 대한 서론부가 지나면 갑자기 화자가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며 2개의 실패한 범죄극을 서술하는 구조입니다. 2개의 이야기중 2번째 이야기인 "살인게임"은 꽤 독창적이고 재미있지만 결국 2개 다 추리퀴즈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진 못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단편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보다 높이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장세연 "더블 플레이"
외도하는 남편과 상대자에 대한 짤막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는데 여백의 미가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문제는 너무 생략과 여백이 많아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인데 이 정도면 뭐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에요. 다른 작품들이 워낙에 수준 이하라 괜찮아 보이는걸지도?

강종필 "K의 기록"
한 킬러의 이야기. 제가 보기에는 추리물은 절대 아니며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백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아내를 가진 한 남자에 관한 단편으로 범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꽤 유머스러우면서도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백휴씨 작품은 몇개 읽지 못했지만 항상 기본기는 있는 작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평균 이상의 내공을 보여줘서 만족스럽네요.

장근양 "도시의 신기루"
한 유학파 박사가 현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터는 내용인데 은행을 터는 범죄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과거사와 주변 인물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는 이야기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는 듯 하여 안타깝네요. 결말도 사족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워낙 범죄장면에 대한 내용이 좋아 더욱 아쉽습니다.

황세연 "천생연분"
서로에게 살의를 품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작가가 아무래도 외국 단편을 상당히 많이 읽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설정과 내용입니다. 남편이 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깔끔하고 흥미진진한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도 앞에 말한 대로 외국 단편들에서 본 듯한 느낌이 좀 강해서 독특함이나 신선함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