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5/05/08

혈의 누 - 김대승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3점

1808년 조선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에서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수사관 원규 (차승원)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되었다.
섬에 도착한 첫 날,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서 가시 나무에 꽂혀 죽은 참혹한 시체가 나타났고, 사건을 조사하던 원규는 모든 사고의 발단이 7년전의 마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5명의 고발에 의해 천주교도로 몰려 온 가족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강객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발한 인물들이 강객주 가족들의 참혹한 죽음과 똑같은 죽음을 당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계속되는 한 편, 원규는 7년전 사건 당시 토포사로 강객주의 처형을 집행한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한편 마을은 점점 강객주의 원혼을 두려워 하는 주민들에 의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국내에서 거의 처음 보는 듯한 "역사 미스테리" 영화입니다.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라 제가 안볼 수 없었죠.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영화가 제 생각보다도 완성도가 높아서 놀랐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공포와 광기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이유가 "범인이 싸이코라서"라는 흔해빠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제법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역사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답게 앞서 말한대로 중후반까지는 확실하게 추리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 짜임새 있는 각본으로 범인과 원규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억울하게 죽은 강객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잔악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결국 강객주 사건 당시 몇푼의 돈과 두려움으로 그를 구명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피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집단 행동을 보이는 부분의 광기 폭발에 대한 표현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강객주의 저주대로 피의 비까지 내리며 그야말로 제대로 "지옥"을 보여주니까요.
물론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너무 2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 같아 약간 아쉽기도 해요.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전까지 추리물로 잘 전개되는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주는 탓입니다.

하지만 제목이나 선전대로 "추리"물로서의 비중은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대체로 범인과 탐정역의 주인공의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거의 종반까지 강객주의 은혜를 입은 "두호"(지성)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단서만 던져줄뿐 그에 대한 묘사나 설명은 극단적으로 배제되며, 영화 자체는 무고하게 강객주를 고발한 5명의 인물이 누구인가? 다음에 죽음을 당할 차례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에 집착하고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혹하게 재현된 살인 사건들의 리얼한 묘사에 따른 공포와 사건이 전개되며 가파르게 상승하는 재미 요소는 확실하지만 범인과 탐정과의 치열한 "게임"의 요소는 거의 전무한 편입니다. 

물론 중반까지는 원규의 추리와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이쪽 관객을 만족시켜는 줍니다. 특히 초반 가시나무에 꽂힌 시체의 검시를 통한 진상 규명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온 부분으로 생생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고, 아무도 없었던 배의 방화사건의 트릭 알아내기도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강객주의 살아남은 딸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남장을 하고 3년여 동안 섬으로 방문한 이유 - 그녀를 살려준 중요 인물 (즉 범인) 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를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큰 문제가 있는데, 범인으로 밝혀지는 김인권(박용우)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쪽 장르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약점이지요. 악덕 지역유지의 전형으로 보이나 사실은 강객주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라는 설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종반까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그의 "바다 공포증"은 가장 결정적 단서인데 영화 이야기 내내 등장하지 않아 마지막에 설명될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앞부분에서 인권과 원규가 처음 대면할때 이 공포증에 대한 단서를 약간만이라도 던져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 외에도, 극 초반에 무당에게 빙의한 강객주의 원혼같은 장면은 필요없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무당이 등장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미녀 캐릭터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리고 한가지, 원규가 왜 마지막의 강객주의 딸과 인권과의 암호편지를 바다에 버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었으니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그냥 묻어버리려고" 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꽤 잘 만든 역사 스릴러입니다.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데 없고 나름대로 밀고 땡기는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저는 정말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이쪽 장르물은 국내에도 거의 없는 편이긴 해도 비교 대상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입니다. 사실 "영원한 제국"이라는 작품은 추리물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성은 왜 이 영화에 나온걸까요? 대사도 별로 없을뿐더러 "말도 안돼는 이유로 주인을 배신하고 끝내는 난도질 당해서 죽는" 최악의 역인데 말이죠....

PS : 여친이 "범인은 차승원이다!"라는 스포일러를 메신저로 보내줘서 조금 열받았었는데 범인이 아니라서 더 황당하고 재미있었습니다.

2005/05/07

하얀 장미 - 알리스테어 맥클린 / 이제중 : 별점 3점

하얀장미 - 6점
알리스테어 맥클린/동쪽나라(=한민사)

탈보트는 산간마을 마블 스프링스에서 경찰관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법정에서 국제적인 범죄자라는 정체가 드러났다. 경찰을 사살하고 억대 부호 블레이어 루스벤 장군의 외동딸 메리를 인질로 삼아 도주극을 펼쳤지만, 곧바로 전직 형사였던 현상금 사냥꾼 자브론스키에게 포획되고 말았다. 
자브론스키에 의해 장군의 저택으로 끌려간 탈보트에게 장군은 경찰을 부르는 대신 모종의 계획을 명령했다. 탈보트의 해저 인양전문 전문 기술을 이용한 것이었다. 명령에 따라 유전 굴착 시설인 X-13으로 이동한 탈보트는 장군의 배후에 있는 바이랜드의 존재를 알게되얻고, 그의 협박과 강압으로 목숨을 내건 도박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연극이고 탈보트에게 닥쳤던 몇년전의 사고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계획의 일부임이 밝혀지는데...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모험 소설의 거장인 알리스테어 맥클린의 장편 스릴러입니다. 원제는 "Fear Is The Key"인데 왜 "하얀 장미"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이 작가의 작품 및 원작 영화는 그동안 접했던 것은 전부 재미있게 보았었기 때문에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운 주인공의 고군분투, 주인공의 전문지식 - 해저 굴착 및 인양전문가 - 이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처럼 유머스럽고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복수극이거든요. 그라서 약간 의외였습니다. "다이하드"시리즈를 보다가 "올드보이"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스릴러지만, 주인공의 모든 행동과 생각에 다 이유가 있고 주인공이 생각한 바를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치밀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초반 납치극에서 타당하면서도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행동과, 중반 이후 유전 굴착 시설 X-13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단순히 액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방심했고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 되새기며 긴장하는 장면들 등은 스토리 전개에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서 독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치밀하게 배치한 여러 복선들과 설정, 단서들이 맨 나중에 명쾌하게 밝혀지고 해결되는 부분의 지적인 쾌감 역시 단순한 모험소설에 가까왔던 전작들과는 다른, 확실히 차별화되는 재미를 안겨다 주고요.

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이 악당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범죄 행위를 고백하게 하는 장면은 조금 억지스럽습니다. 그러한 장소를 고집해야만 했던 당위성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놓친게 아닌가 싶어요.
아울러 작중의 배경이 1950년 후반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시대적 배경 때문에 굉장한 거금으로 평가되는 1000만달러 상당의 보물은 지금 보기에는 수많은 악당들이 목숨을 걸만한 금액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또한, 주인공이 자기 파멸형 시니컬 하드보일드 캐릭터인 탓에 감정이입을 하기 힘든 단점도 있습니다. 여주인공도 비중이 약할 뿐더러 달리 애인이 있다는 설정이라서 현실적이기는 하나, 역시나 감정이입은 힘들었고요.

그래도 단순히 모험 소설의 거장으로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씨줄과 날줄처럼 치밀하게 엮은 스릴러 풍의 작품도 일정 수준 써 낼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유익한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뭔가 2% 부족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평균작 이상의 재미는 선사해 주는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 알 수 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그나저나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 열심히 읽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딱딱한데 독자에 대한 조금의 배려가 아쉽네요. 이것 역시 2% 부족한 부분에 포함되는 이야기지만요.

PS2 : 이 작가, 정말 꽤 괜찮은 재미를 주는 작품들을 써 내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지명도는 이렇게 낮은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혹 알리스테어 맥클린이라는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덧글이나 좀 남겨주세요. 팬클럽이나 한번 조직해 보던가 해야 겠습니다...

2005/05/05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 - 헨리 슬레서 / 최운권 : 별점 3점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 헨리 슬레서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하가트 앤드 테이트 광고사의 사장 대리 데이브는 가장 큰 광고주인 버크 식품의 광고를 전담하여 처리하게 되었다. 부사장 겸 공동 경영자인 고든 테이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탓이었다. 
그 뒤 데이브에게 여러번 위험이 닥쳤고, 전속 카메라맨은 사고사를 당했다. 데이브는 의문의 비용 지출 등의 문제를 포착하여 버크 식품 광고의 후면에 얽힌 진실을 알아챘고, 사건의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회색 플란넬 수의"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작품입니다. 단편의 명수, TV시리즈 극본의 대가 헨리 슬레서의 장편소설이기도 하죠.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편 읽어보았던 작가이긴 한데 그닥 땡기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찾는 블로거 석원님이 포스트에서 꽤 좋게 평가하셨길래 구입해 읽게 되었네요.

특징이라면 우선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작가답게 광고회사를 주요 무대로 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을 들고 싶습니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광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너기바"라는 단편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여튼 덕분에 캐릭터에 대한 묘사와 실제로 소설에서 진행되고있는 광고회사의 업무 묘사에 대한 디테일이 장난이 아닌 수준이에요. 실제 광고 카피를 차용한 소제목들같은 아이디어도 참신했고요.
무엇보다도 사건의 배후와 동기에 대한 설정이 기발하면서도 완벽합니다. 특히 사건의 주원인인 광고에 대한 설정이 정말 좋아요. 광고 자체의 아이디어도 뛰어나지만 자연스럽게 사건을 유발시키게 되는 설정이라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그러나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헐리우드 스릴러" 에 가까운 작품이기는 합니다. 평범한 인물이 자기도 모르게 사건에 휘말린 뒤 엄청난 모험을 한다는 이쪽 바닥의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거나 궁지에 몰린다기보다는 "탐정"역할을 수행하며 주도적으로 전개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 정도인데, 그 이외에는 좀 많이 뻔한 설정이죠. 실질적으로 "트릭"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 범인이 너무나도 의외의 인물이라는 점, 범인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점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어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사건이 복합적이고 점차 주인공 주변인물들이 전부 관련되게끔 발전하며, 그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정말로 읽기 시작해서 한번도 쉬지 않고 완독하게 된, 그야말로 재미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원제인 "회색 플란넬 수의"는 내용 결말 부분에서 언급되는 꽤 괜찮은 울림을 주는 멋진 제목인데 제가 구입한 번역본 (해문판)은 제목이 왜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입을 망설인 이유 중 하나가 이 이상하게 싼티나는 제목이라는 점을 비추어 본다면 훗날에라도 제목만 원상복구해서 다시 출간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PS : 그나저나 "백작부인"과 그 딸은 도대체 왜 등장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