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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3

한낮의 방문객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점

한낮의 방문객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고독사한 모녀에 대한 기사를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나'는 우연찮게 옆집 자매의 정수기 강매 사건에 휘말렸다. 그 뒤 강매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어서 안면을 튼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미도리카와로부터 정수기 강매를 하고 다니는 6인조가 저지른 살인 사건의 수사 협조를 요청받았다. 주범이 과거 악독한 사건을 저질렀던 아사노로 보이는데, 그의 옛 연인을 찾아 아사노가 지금 어디있는지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아사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던 중, 종범 다쿠마로부터 일당이 저지른 잔혹한 범행을 전해듣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히려 아사노 일당의 표적이 되고 마는데...

혐오스러운 범죄를 전면에 내세워 독자를 자극시키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을 써 왔던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특기가 잘 살아있습니다. 정수기 강매에 대한 디테일도 괜찮지만, 아사노 일당이 저지르는 비현실적인 연쇄 살인이 정말 끔찍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다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말이지요. 아사노 일당의 끔찍한 범행과 별개로, 요시코, 노조미 모녀의 아사 사건이 사실은 스구로 교수가 저지른 살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전개도 흥미로왔고요. 몰입해서 읽을만한 재미는 충분히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첫 번째는 아사노 일당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행을 아무렇지도 저지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움직이는 것 치고, 범행을 통해 얻는게 보잘것 없어서 범행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요. 무려 4 건의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뒤 겨우 거금을 손에 쥐지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죄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고 엉성한건 작가의 전작들과 비슷하네요. 

두 번째는 심복인 시미즈를 제외하고는, 아사노가 이끄는 정수기 강매를 위장한 살인 강도단 구성이 그때 그때 바뀐다는 설정입니다. 이런 범행은 소수 정예로 저지르는게 당연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동료는 언제든 경찰에 신고할지 모르니까요. 실제로 동료 중 한 명이었던 다쿠마가 배신해 버리고 말았고요. 아사노는 이미 십수년 전에 애인 스야마 게이에게 배신당해서 체포되기까지 했었으니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힘들었던건, 백주대낮에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살인을 저지르는걸 반복하는데 쉽게 체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범죄의 규모와 행동이 거의 과거 마적단(?)을 연상케하는데, 이건 CCTV가 많은 21세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범죄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본의 치안에 큰 문제가 있는거에요. 하긴, 전 수상이자 여당의 최고 권력자가 백주 대낮에 손쉽게 암살당하는 판이니, 이게 오히려 현실적인 일본의 치안 수준일지도 모르겠군요.

아울러 '나'가 사건에 휩쓸리게 되는 과정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참혹한 노부부 살해 현장에서 아사노의 지문이 발견되었다면, 경찰에서 전력을 다해 그를 체포하면 됩니다. 구태여 외부인인 '나'의 도움을 얻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읽어보면 '나'를 미끼로 써서 아사노 일당을 체포하려는 경찰의 작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작품 전개에서 또 다른 한 축이자, 추리적인 부분과 반전을 담당하고 있는 요시코, 노조미 살인 사건 역시 문제가 많은건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취재는 스구로 교수가 일부러 부탁한 것이라는게 나중에 드러납니다. 이 사건을 단순 아사 사건으로 보이게 만드려는게 목적이었고요. 그런데 이미 사건은 단순 변사 사건으로 종료된지 오래입니다. 스구로 교수가 다시 사건을 들쑤실 이유는 없었습니다. 스구로 교수가 요시코와의 불륜이라는 비밀을 잡지 편집자 다지마에게 털어놓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기사가 필요했다면, 차라리 절친인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왜곡된 원고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게 빨랐을거에요.

요시코의 여동생 미사키 살인 사건은 억지입니다. 스구로 교수는 미사키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둘의 관계는 비밀이었고, 이미 경찰이 아사로 판단한 상황이니 모르는 척 입만 다물면 됩니다. 그랬다면 미사키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니 전혀 없었습니다. 스구로 교수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딱히 자리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꼈을리도 없고요. 때문에 요시코 사건은 아예 나오지 않는게 좋았습니다. 이야기의 복잡도를 높이고, 반전의 맛을 전해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억지가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여름에 읽기 적당한 서늘하면서도 흡입력있는 작품이지만 구성은 다소 헐겁습니다.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11/01

진범의 얼굴 - 마에카와 유타카 / 김성미 : 별점 1.5점

진범의 얼굴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여년 전, 2008년 하치오지 시 가와구치 초의 주택가에서 토다 하야토와 미도리 부부가 실종되었다. 여러가지 증언, 정황 증거로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는 토다 하야토의 형 타츠야였다. 그러나 타츠야는 기소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토다 하야토의 사망을 명백히 증명할 수 없어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기야마 기자는 이 사건의 심층 탐사 보도를 나선 뒤, 타츠야가 진범이며 공범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기 시작했다. 이는 불량 청소년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으로 진짜라는게 판명되었다. 하지만 기무라와 도가시 모두 시체로 발견되고 마는데...

"크리피" ,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이라는 두 편의 범죄 스릴러로 접해 보았던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장편입니다. 전에 읽었던 두 편은 모두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로 끌어 들이고 조종하는 범죄자가 등장했는데, 이 작품은 탐사 보도 전문 기자가 화자로 등장하며 10여년 전인 2009년 벌어졌던 '가와구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는 내용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르포르타쥬 느낌의 전개와 비교적 현실적인 설정 덕분에 전작들보다 설득력은 높습니다. 그러나 재미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애초부터 스기야마는 타츠야가 진범일 것으로 생각하고, 실종된 동생 부부의 사체를 은닉할 시간이 없었던 이유를 공범이 존재했다고 추리하거든요. 이후 이야기는 이 추리를 뒷받침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결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츠야가 진범이라는건 곧바로 불량 청소년인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에 의해 밝혀지게 되니까요.
그 뒤 범죄를 일으킨 4인조의 우두머리 하야마에게 위협을 느낀 기무라는 범행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담긴 USB를 보험삼아 준비했다가 살해당하고, 도가시 역시 미심쩍은 사고로 죽습니다. 다행히 공개된 USB를 통해 범행 장소를 특정한 경찰은 하야마의 절 고엔지를 수색하지만, 시체를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타츠야가 곧바로 진상을 스기야마에게 고백한 뒤 자살하기 때문에 여기서 가와구치 사건은 끝난거나 다름 없습니다. 즉, 드라마에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기 힘들어요.
무려 일곱명의 관계자가 병사와 사고사를 비롯하여 자살 등으로 사망한 대형 사건이지만, 타츠야 범인설이 거의 진짜였다는 진상이라는 점도 허무합니다. 진짜 흑막으로 하야마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동기와 수법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호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오지 않는게 나았고요. 

추리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스기야마가 공범의 존재를 추리하는 것, 그리고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인 '베레모 남자'의 베레모는 짧은 헤어스타일도 가릴 수 있는 모자다, 그래서 베레모 남자의 머리는 짧을 것이며 이는 하야마를 가리킨다는 추리가 전부인데 사건 해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 추리가 없었어도 어차피 제 발로 찾아온 범인의 증언으로 진상은 밝혀졌을 테니까요.

이외에 건질만한 부분도 없다시피 합니다. 사회파스러운, 사회 고발과 같은 동기도 등장하지 않아요. 범인 일당이 미도리에게 품은 비정상적인 성욕에 의한 잔인한 범죄에 불과한 탓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한건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요. 또 이 과정에서 학교의 부교장이며 절의 주지인 인텔리 인격자 하야마가 비정상적인 성도착자로 살인집단의 리더였다는게 밝혀지는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그가 딸 리하에게 품은 성욕과 소유욕은 솔직히 불쾌하기까지 했고요.

이후의 에필로그가 그나마 약간 사회 고발스럽기는 합니다. 스기야마가 10여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취재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책을 쓸 계획을 하야마에게 밝히자 하야마는 딸과 딸의 약혼자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주요 관계자였던 타츠야의 변호사 하마나카가 스기야마에게 '너야말로 범인이다. 너의 집요한 추궁으로 하야마를 신경 쇠약으로 몰고갔기 때문이다. 가와구치 사건의 진범은 너다!"라고 비난하며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취재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를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그러나 그럴 의도였다면 책의 내용 모두가 타츠야가 진범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취재 결과를 거기에 끼워맞춘 스기야마의 음모라는 식으로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유력한 몇몇 증언, 타츠야가 본인이 진범 중 한 명이라며 범행의 진상을 고백한 증언과 하야마의 딸 리하와의 인터뷰 등은 모두 스기야마 혼자 입수한 정보로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했으니 충분히 그렇게 쓸 수 있었을거에요.
그러나 가장 유력한 증언이었던 초반부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은 편집자 스가이와 함께 들었고, 동영상이라는 증거가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진범 일당 모두 죽어 마땅한, 잔인 무도한 범죄를 일으킨 놈들이고 취재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솔직히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인권은 사람에게나 있지 이런 짐승들한테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없고 범죄물, 그 외 사회 고발 등 다른 가치도 거의 없는 망작입니다.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5/26

속삭이는 자 1,2 - 도나토 카리시 / 이승재 : 별점 2.5점

속삭이는 자 1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속삭이는 자 2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본 작품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차례로 유괴된 후, 여섯 명 소녀의 절단된 팔이 발견되었다. "아돌프" 라고 명명한 범인의 도전에 게블러 박사가 이끄는 연방 경찰의 행동 과학 수사팀은 총력을 다해 응했지만, 소녀들의 시체가 한 구 씩 차례로 발견되었고, 발견된 장소와 얽힌 추악한 범죄가 함께 드러나며 수사팀은 서서히 와해되는데...

이탈리아 출신 범죄학자의 장편 소설 데뷔작입니다. 회사 동료인 Y리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Y리님 감사해요!).

천재적인 범죄자와 경찰과의 대결은 굉장히 많이 보아온 물릴대로 물린 설정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범죄자 "아돌프"가 여섯 명의 조력자와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두 번째 시체 발견 장소인 옛 고아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기가 막힙니다. 왜 고아원에 시체를 유기했는지? 에 대해 오래전 고아원에서 빌리라는 소년이 살해된 사건을 밝혀내고, 진범 로널드 더미스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들거든요. 로널드 더미스가 "그"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진짜 흑막을 드러내는 연출도 괜찮고요.

작가로서의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 편에 걸쳐 치밀한 복선과 단서를 배치하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실종 아동을 찾는 전문가로 팀에 투입된 밀라를 적대시하는 로사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죠. 이는 로사가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실종 아동의 어머니로 유괴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여섯 번째로 실종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샌드라가 최초의 목표였으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실종 아동은 모두 샌드라의 조건에 맞춰 고른 것 - 때문에 모두 비슷한 또래의 외동 딸들임 - 이라는 이론도 아주 괜찮았어요. "ABC 살인사건"같은 아이디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못한 만큼, 다른 작품 속 트릭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사체가 발견된 장소와 얽힌 다른 사건이라는 설정에 대한 작가의 욕심은 지나쳤어요. 두 번째 실종 아동이 발견된 사건까지는 앞서 말씀드렸듯 아주 괜찮지만, 세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조지프 록포드, 네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펠더 사건은 그 규모와 잔혹성 모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어린 시절 동료 고아를 죽인 고아 소년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엄청난 거부가 30여 명의 동성애 상대들을 모두 죽여 저택 인근에 매장하거나, 별볼일 없는 고아 출신 일용직 노동자가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는 일가족을 6개월 동안 지배하며 학대하다가 잔혹하게 살해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이 두 사건 모두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본 이야기와 비교해도 더 자극적이고 규모가 절대로 작지 않은 사건이라 본말전도가 된 느낌도 들고요. 

게다가 수사팀 본부에서 다섯 번째 소녀가 발견된 이유가 팀 내부에 있는 배신자이자 유괴의 조력자인 로사를 고발하는게 아니라, 수사팀의 실질적인 리더인 고란 게블러 박사가 저지른 살인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반전도 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전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앞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묘사된 게블러 박사의 일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도 조금 입맛이 썼어요. 좋은 아이디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렇게 까지 해서 독자를 속일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과한 이야기들도 나름 재미는 있어서 그렇다 쳐도, 사건의 진짜 흑막이자 진범인 "속삭이는 자"에 대한 설정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조종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실제로도 여러 사건들이 있다고 하고, 저자도 범죄학자 출신이라 이런 사건들을 토대로 창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 속에서 선보이는 그의 모습, 행적은 모두 모호하고 어떤 건 초능력에 가까운 탓에 설득력이 낮습니다. 물론 몇몇 디테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로널드 더미스(와 펠더)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했다고 설명하며, 방법도 조지프의 회상에서 살짝 선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몇마디 말, 연극적인 무대 묘사에 그칠 뿐이라 별로 그럴듯 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알렉산더 버먼처럼 특별하게 세뇌하지 않고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방법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이 네 명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유괴할 타겟을 골라내었으며, 어떻게 실행범 빈센트 클라리소를 한 달만에 감방에서 교육시켜 원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는지는 아예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이게 사건의 핵심인데, 결국 범행은 증명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니까요. 여기에 더해 아돌프가 고란 게블러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완전 억지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교도소에서의 모습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절대로 흘리지 않는다는 식이라 그냥 전능한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전능한 범죄자의 비법(?)이 소개되지 않는 점에서는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죠. 이럴 바에야 로널드 더미스가 진범인 서스펜스 스릴러로 끌고가는게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을 겁니다.

또 반전에는 욕심을 냈지만 캐릭터 설정은 그렇지 못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고란 게블러 박사와 밀리 형사 모두 이런 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라 굉장히 식상해요. 토마스 해리스, 제프리 디버 등 유명 작가들의 두뇌파 남성과 행동파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차별화를 두기 위한 여러가지 설정, 예를 들어 밀라가 과거 유괴된 경험이 있고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라는 식의 설정도 무리수에 불과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치고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여러모로 욕심이 너무 과해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만큼 소일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7/06/02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6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5년 여름, 한 남자가 여섯 여자와 집단 자살을 했다. 남자는 과거 도쿄대 조교수 출신의 기우라 겐조로 자살 전 무려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었다. 사건 당시 정보 누설이 알려져 자살한 이가라시 형사의 조카인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는 논픽션을 쓸 것을 결심하고, 여러가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구성해 나가는데...

마에카와 유타카의 2015년 작품입니다. 30년 전 벌어진 연쇄 살인, 집단 자살 사건을 현대의 르포 작가가 뒤쫓아 그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으로, 과거 시점의 이야기와 현재 시점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구성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전작 "크리피"와의 유사성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가장 큰 유사점은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피해자로 만든다는 기우라 겐조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크리피"의 "위장 살인마" 야지마의 능력 -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 과 아주 흡사해요. 핵심이 공포, 협박, 좁은 (갇힌) 공간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마인드 콘트롤이라는 점도 같고요. 

그러나 "크리피" 이후 발표된 덕인지, 마인드 콘트롤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우라가 여관 하기노야를 손에 넣기 위해 하기노야의 주인 세이지 일가족을 극한으로 몰아가다가 한 명씩 살해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적나라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를 통해 굉장한 흡입력과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흡입력, 설득력은 실존했던 일본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배역을 살짝 바꾸어 묘사한 덕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한 가족을 대상으로 이간질 후 범행에 끌어들여(고이치) 제일 약한 사람부터(세이지) 한 명 씩 죽게 만든다는 전개는 스미다 미요코 사건과 같으니까요.

추리적인 디테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히라가나로 쓰여진 고발 편지와 초밥에 비소를 넣은 사람이 우타라는게 밝혀지는 부분처럼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진범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름 의표를 찌르는 맛은 있었습니다.
80년대가 무대인 작품답게 마지막을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노래 "세일러복과 기관총"이 장식하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하지만 "크리피"와 단점 역시 비슷합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부족해요. 특히 기우라가 왜 이렇게 잔혹한, 무려 10명이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이성과 잔혹함,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는 캐릭터 설정만으로 때울 수 없어요.
게다가 작중 묘사에 따르면 2가구 6명을 포함한 10명을 살해하면서 하기노야를 손에 넣지만, 정작 현금 수익은 세이지 가족의 적금 1,500만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수지가 전혀 맞지 않지요. 그 돈도 범행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공돈이나 마찬가지고요. 물론 하기노야는 권리증이 없더라도 시간만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현금화는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돈 때문이라면 이렇게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3천만엔을 빌려준 것 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니 고이치를 사장으로 앉히는 것 만으로도 여관을 손에 넣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여관을 손에 넣을 이유도 사실 없습니다. 단지 매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이미 성공하기도 했고요.
마지막 자살 여행에서 여자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묘사를 보면 대충 1억엔 이상은 현금으로 뿌립니다. 이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마지막 묘사 탓에 이유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또 작가의 이상한 묘사로 캐릭터가 모호해져 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이지적인 모습이 보였다,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일 뿐 손을 더럽히는 모습은 없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집단 자살 묘사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죠. 너무 꿈처럼 그려졌을 뿐더러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이라 모호한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듭니다.
또 그가 누나와 근친상간을 통해 우타를 낳았다는건 이러한 극단적인 범행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아내가 누나와 굉장히 닮았으며, 아내가 누나와의 관계를 눈치채어 살해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모호하게 그릴 것이라면 차라리 '돈'이 목적이고 타고난 악인이었다고 설명하는 쪽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한가운데 직구를 넣었다면 깔끔하게 처리했을텐데 괜히 변화구, 변화구를 고집하다가 주자를 쌓아 놓고 한방 크게 얻어맞는 느낌이에요. "주자가 켜켜이 쌓인 9회말"이랄까...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네요.

그리고 기껏 손해를 보아가면서까지 도쿄대 출신임을 밀어 붙였다면 이렇게 무식한 야쿠자 스타일 협잡보다는 더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세이지 일가를 옭아매는 과정은 전형적인 감금, 협박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범행의 여러 과정에 걸쳐 허술한 관리로 수많은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범죄와 다를게 없어 보일 정도에요. 중간에 수사 나온 형사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장면 정도는 그럴싸하지만 기대에 값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범행 과정의 적나라한 묘사를 통한 생생함은 발군이나 들여다보면 구멍이 많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유키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두고 매춘까지 끌려나가게 되는 과정처럼요.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부로가 급작스럽게 유키와 가까와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하기사 유키를 죽이지 않는 것 부터가 뾰족한 이유가 없네요. 상식적이라면 진작에, 아무리 늦어도 고이치 살해 시점에는 정리했을 것입니다. 더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기노야를 손에 넣는 중후반부까지의 압도적인 묘사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만 설득력이 부족한 설정 탓에 감점합니다. "크리피"보다는 낫지만 단점은 여전히 동일한데,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어봐야 할지 살짝 고민되는군요.

덧붙이자면, 범행의 규모나 희생자 수를 본다면 현실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이 더 큰 사건이니 그냥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논픽션을 쓰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16/09/03

크리피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점

크리피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외딴 주택가에 거주하며 가끔 TV에 출연하던 범죄심리학 교수 다카쿠라는 제자 린코와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인 고교 동창생 노가미가 연락해서 8년 전 일어났던 미제 사건인 혼다 일가 실종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노가미는 다카쿠라의 집까지 직접 찾아올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실종된 후 다카쿠라 옆집 노모녀 화재 현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 다카쿠라의 옆집 니시노 일가의 수상쩍은 가족 관계가 점차 불거졌고, 결국 니시노의 폭주가 일어나는데...

격조했습니다. 인륜지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중대사인 "이사"를 하느라 지난 한 주간 정말 정신없이 보냈네요.

어딘가의 멋드러진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된 작품입니다.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출세작이지요. "검은 집"처럼 평범함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싸이코패스의 가공할 범죄를 그리고 있습니다.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초~중반부는 인상적입니다. 다카쿠라가 거주하는 주택 단지 구성이 8년 전 히노 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 현장과 유사하다는게 드러나고, 옆집 남자 니시노와 가족이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갑자기 그 집 딸이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그 뒤 급작스럽게 옆집 남자가 돌변하여 폭주하는 과정까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니시노가 식칼을 집어들고 광기를 보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알고 봤더니 옆집 남자 니시노가 모든 연쇄 살인의 범인인 "위장 살인마"이며, 그의 정체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실종된 후 결국 사체로 발견된 형사 노가미의 형 야지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좋았던 중반부를 지나 노가미가 유서처럼 남긴 편지를 통해 야지마의 범행이 일목요연하게 밝혀진 후부터는 힘이 빠져버립니다. 370페이지라는 분량에서 240~50페이지 정도가 되면 진상이 밝혀지는데, 이후는 완전히 사족입니다. 너무 일찍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가 흘러가버리니 재미가 있을 리 없지요. 이렇게 쉽게 밝혀질 것을 뭐 이리 질질 끌었나 싶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사도 어설펐고요.

게다가 마지막 반전 — 야지마가 죽인 줄 알았던 노가미는 사실 전처 소노코가 죽였다, 야지마는 뒷처리를 도와준 것일 뿐이다, 편지 역시 소노코가 쓴 것이다 — 는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정의감을 불태운 줄 알았던 노가미가 형 야지마 못지않은 쓰레기일 뿐이었다는건 독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상을 밝히는 다카쿠라의 추리도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문제도 크고요. 소노코의 양녀 유가 사실은 실종된 여고생 미오였고, 야지마는 이미 소노코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한 억지 전개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야지마가 구태여 오와다 옆집에 살면서 정보를 캐내 스토커 짓을 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뭔가 있는 것으로 보였던 주인공 다카쿠라와 여대생 린코의 플라토닉한 사랑 이야기는 야지마와의 최종 대결에서 오와다가 죽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온 것 이외의 가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린코는 비중에 비하면 하는 것이 너무 없거든요. 비중을 볼 때 다카쿠라의 불륜 상대가 아니라면 최소한 범죄 심리학 전문가로서 뭔가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장 살인마"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악의 천재 야지마의 능력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점입니다. 작품의 설득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야지마가 어떻게 가족들을 지배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서술했어야 합니다. 작중 묘사된 정도로는 설득력이 너무 약해요. 다카쿠라가 잠깐 설명한 대로 공포와 협박, 좁은 공간의 3가지가 갖춰져 마인드 콘트롤이 용이했다 하더라도, 외부 활동을 했음이 분명한 아들과 딸이 잠자코 오랜 기간 그의 말을 따랐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가 않는 탓입니다. 비슷하게 싸이코패스의 치밀한 범죄가 그려지는 작품들 — 앞서 말씀드린 "검은 집"을 비롯해서 — 은 동기는 물론 범행 과정에 있어서도 범행의 현실성을 높게 그리고 있는데 말이지요. 확연히 비교되는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역대급 초반부를 지녔지만 중반부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좋은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정윤성님의 리뷰에 100%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금 조사해보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으로 영화가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불필요한 요소 (린코, 반전 등)를 다 쳐내고 범죄 심리학자 다카쿠라와 형사 노가미 (그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다니모토)가 악의 천재 야지마와 대결하는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그려낸다면, 즉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각색한다면 소설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