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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8

미명의 집 : 건축탐정 사쿠라이 교스케의 사건부 - 시노다 마유미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 대학원생 사쿠라이 교스케와 아오, 미하루 일행은 할아버지 아스마 와타루가 지은 이즈의 별장 “여명장”에 대한 아스마 리오의 조사 의뢰로 여명장을 찾았다. 여명장은 스페인풍 별장이지만 집 중심의 파티오가 주변 방과 바로 이어지지 않고, 심지어 창문조차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건물이었다.
알고보니 와타루는 1년 전 그 집에서 머리를 다쳐 죽었는데 경찰은 사고사로 처리했으며, 얼마 뒤 아들(리오의 부친) 아스마 나다오도 같은 집에서 칼에 찔렸지만 자살 미수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교스케 일행은 와타루가 여명장 어딘가에 거대한 블루 사파이어를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던 중 부동산업자 사메가이 하루오가 여명장 파티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사건 해결을 위해 아스마 가 사람들을 여명장에 불러모았지만 교스케마저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다치고 말았다.

아오는 자신의 절대 기억을 통해 여명장에서 고야의 판화에 남겨진 흔적을 보고, 와타루가 죽기 직전 와인으로 “NADA”에 원 하나를 더해 “NADA-O”, 즉 “나다오”라는 이름을 남겼음을 알아냈다. 즉, 와타루를 죽인 범인은 나다오였다. 레키가 나다오에게 스페인어 “NADA”, 곧 “허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을 준 게 동기였다. 나다오는 평생 아버지에게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생각해 왔었다.
나다오는 자신이 모든 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살하려 했지만, 사메가이는 리오의 여동생 산고가 죽였다는게 진상이었고 
교스케는 뒤이은 추리쇼를 통해 아스마 와타루의 인생을 재구성하고, 사파이어의 위치를 밝혔다. 특이한 파티오의 구조와 레키가 남긴 글이 열쇠였다. 마지막으로 레키가 남긴 “NADA-O”는 단순히 아들을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허무, 혹은 그 반대”라는 뜻으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허무만은 아니었음을 전하려 한 흔적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시노다 마유미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건축 탐정 사쿠라이 교스케' 시리즈 1작으로 원서로 감상하였습니다. 분량도 길고, 전문 용어도 많아서 완독까지 오래 걸렸네요. 

철거 위기에 놓인 이즈의 별장 "여명장"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처음에는 오래된 별장의 보존 문제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스마 와타루의 죽음, 아스마 나다오의 자살 미수, 사메가이 하루오의 죽음, 그리고 행방이 묘연한 블루 사파이어까지 여러 갈래의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얽혀 있습니다. 분량은 적지 않지만 이렇게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덕분에 읽는 내내 호기심을 유지시켜 줍니다.

무대가 되는 "여명장"이 사건의 핵심이라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건축 탐정' 시리즈답게요. 스페인풍으로 만들어진 이 별장은 중앙의 파티오가 방과의 연결이 단절되어 있고, 동선도 어딘가 비정상적인 기묘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교스케는 여명장의 배치와 채광, 파티오의 위치, 벽의 막힌 구조 같은 기묘한 요소들을 건축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하여 아스마 와타루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추리에 활용합니다.
영국에 유학을 갔던 와타루가 굳이 스페인으로 건너가 마술馬術을 배웠다는 점, 스페인풍 별장에 유난할 정도의 애착을 보였다는 점, 새벽과 바다를 피하면서도 그 공간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집 안에 남겨진 미술적·건축적 흔적들을 합치고 미학 및 역사적인 지식까지 동원한 교스케의 추리는, 와타루는 안달루시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귀족 여성 루나와의 기억을 평생 함께 했으며 여명장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 기억을 일본 땅에 재현한 장소였다는 겁니다.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건축학에 미학, 역사까지 결합되어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당연히 여명장에 대한 묘사도 치밀하고요.

고야의 판화 "전쟁의 참화" 69번(아래 그림)이 사건의 핵심 단서로 사용되는 미술적인 장치도 좋습니다.

그림 속 'NADA'라는 말이 단순한 문구나 다이잉 메시지가 아니라, 동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다오는 자신의 이름이 스페인어로 "허무"를 뜻하는 "NADA"에서 왔다고 여기며, 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부정했다고 생각해서 와타루에 대해 증오와 살의를 품게 되었다는데 현학적이면서도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에 'NADA'에 'O'가 더해져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결말도 마찬가지로입니다. 여러모로 작가가 건축 뿐 아니라 미술, 그리고 언어의 상징성을 세심하게 설계했다는 인상을 전해주거든요. 마무리로도 최고였다 생각되고요.

다만 추리소설로서 보면 아쉬움도 큽니다.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은 인물 설정입니다. 주인공 사쿠라이 교스케는 물론이고, 동반자 아오와 친구 미하루까지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만화적인 분위기를 띱니다. 교스케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외모를 지녔으면서 유난히 아침잠이 많고, 아오는 순간 기억력에 가까운 특수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 그려지는 식인데, 깊이있는 전문가적 분석이 중요한 작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정도 수준이 적당했어요. 

추리도 그렇게 치밀하지는 않습니다. 고야 화집의 다이잉 메시지로 나다오의 동기가 드러나면, 아스마 와타루 사건의 범인은 사실상 나다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그를 누가 도왔느냐로 좁혀지는데, 리오가 아니라면 당시 슈젠지에 나다오와 함께 있던 산고 뿐입니다. 나다오 자살 미수 사건에 이르면 이 점은 더 분명해집니다. 나다오의 공범(?)으로 비밀을 함께 했던 사람이 범인일 테니까요. 운전을 할 수 있고, 리오로 오인될 만한 외모를 가진 인물 역시 산고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수수께끼에 비해 추리는 다소 빈약합니다.
또한 나다오가 범인이라는건 추리라기 보다는 남겨진 다이잉 메시지와 나다오의 자백(?)으로 밝혀지기 때문에 추리적인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다이잉 메시지가 쓰여진 화집을 폐기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산고가 블루 사파이어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동기도 가족 안에서의 소외감 등으로 잘 설명하고 있기는 한데, 사메가이가 죽게 되는 과정은 우연과 억지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문제는 큽니다. 와타루가 리오에게 남긴 말 조각상 가운데 유서 같은 쪽지가 들어 있던 걸 산고가 훔쳤던 것, 그것을 깨트려 내용물을 발견했던 것, 쪽지를 가지고 여명장에 갔다가 사메가이를 만난 것 모두 우연이라는건 너무 작위적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해요.

블루 사파이어가 숨겨진 곳이 파티오 안의 샹들리에였다는 마지막 장면도 극적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억지스럽습니다. 한줄기 빛이 들어와 사파이어를 비추는 장면은 만화같은 아이디어였고요. 그리고 여기 숨겼다면 산고의 상세한 조사 때 발견되지 않았을 까닭이 없고, 발견하지 못했어도 원래 계획대로 여명장을 철거했다면 발견할 수 있었을테니 대단한 추리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건축과 미술을 사건 해결의 핵심에 놓은 발상, "NADA"와 "O"를 둘러싼 상징, 그리고 아스마 와타루의 삶을 복원하는 마지막 추리는 볼 만했지만, 기대보다는 못했어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읽었다는 보람 외에는 특별히 건질게 없습니다. 문고본 기준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구태여 번역까지 해 가면서 읽을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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