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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 - 역사교육자협의회 / 김한종 외 : 별점 2.5점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 - 6점
역사교육자협의회 엮음, 김한종 외 옮김/책과함께

제목 그대로 일본 근현대 학교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이전 다른 책 리뷰에서도 소개했었지만, 에도 시대에서부터 메이지 시대까지의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구입하게 되었네요.

상세하고 자세하다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수업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은 1872년 오사카부에서는 큰 북, 1874년 치쿠마현에서는 종소리, 1887년 미야기현에서는 딱따기였다.
  • 수업 시작 할 때의 인사는 1874년에 이미 교사가 리쓰레이 - 하나로 기립 - 둘로 인사 - 셋으로 다시 기립 (차렷) - 넷에 앉는다고 정해졌다.
  • 군대식 훈련과 체조가 이미 1886년에 도입되었다.

이런 식으로 교재와 학용품은 어떤 것이었는가, 학교 의식과 행사는 언제 어떤 것들이 시작되었는가 등이 각종 자료와 함께 설명됩니다.
학교 급식이라던가 운동회, 입학식과 졸업식, 수학 여행과 소풍, 교복, 시험 등 학교 제도에 대한 역사도 상세합니다. 심지어는 보건실과 청소당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까지 알려주니 말 다했지요. 참고로 청소당번은 1897년 문부성 훈령으로 도입되었다네요. 

이러한 학교에 대한 시시콜콜한 역사가 실제 일본 당시 역사와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시작되고 발전해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정식 학교사 외에도 아이누 학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젠쇼 학교, 야간 중학 등 이외 학교에 대한 역사도 수록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학교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대표적으로 '란도셀'의 보급과 역사를 소개해드립니다. 유래는 막부 말기 일본에 서양식 군사 훈련이 도입되었을 때 함께 도입된 천으로 된 배낭입니다. 어원은 네덜란드어 'ransel' 을 일본어로 발음하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도'를 넣은 것이고요. 학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건 1885년 황족, 화족학교인 가쿠슈인에서 쓰이고 부터입니다. 가쿠슈인은 학생들의 유약함을 바로잡기 위해 등교할 때 학교까지 마차나 인력거를 타고오는 걸 금지했고, 교과서나 학용품도 시종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가져오라고 지시했는데 그래서 교과서나 학용품을 챙겨오기 위한 용구로 배낭이 쓰이게 되었던 겁니다.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대를 반영한 결과물인 셈이지요. 그리고 1890년 7월 가쿠슈인이 '배낭은 검은 가죽으로 한다' 는 규칙을 발표하여 현재의 란도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1887년 이토 히로부미가 다이쇼 천황이 된 황태자 입학 축하를 위한 특별 주문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특정 아이템 뿐 아니라 청일, 러일 전쟁이라던가 조선 병합, 메이지 천황의 죽음 (붕어), 간토 대지진, 2차 대전과 종전 때 학교가 어떠했는지를 당대 사료와 인터뷰, 기사들로 설명해주는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간토 대지진 때 도쿄 메구로구 소학교 교사 자이젠 유타카의 수기가 그러해요. '불령선인'이 난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진짜로 받아들인 내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가를 분석하여 시대를 분석한 항목도 인상적입니다. 전후 평화를 주제로 교가 가사가 바뀌었다는 사례를 들고 있는데, 당연한 내용과는 별개로 엄청나게 꼼꼼한 조사와 정리가 대단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딱딱한 문체는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논문처럼 서술되고 있는 탓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일 수 있는데 이래서야 몰입해서 읽기는 힘들어요. 이 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연구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일 테지만, 저같은 일반인에게는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또 번역도 여러모로 아쉬우며 책의 구성도 정리된 느낌이 들지않고 도판 역시 썩 좋은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여러가지 몰랐던 학교 관련 역사를 알게된 건 수확이지만 책의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 감점합니다. 수준과 완성도에 비하면 가격도 엄청나게 높은 편이고요. 학교에 대해 연구하시는 연구자, 학생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04/28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 승영조,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3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거의 10년 전에 읽은 뒤 읽게 된 주석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5권째 책입니다. 이전에는 1~2, 3~4가 합본이었는데 어느 순간 분리되어 출간되더군요. 독서보다는 소장 목적으로 구입하였는데 다음에 읽자, 다음에 읽자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셜록 홈즈 전설의 시작인 장편 1, 2작 "주홍색 연구"와 "네 사람의 서명"이 본편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주석과 함께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는 구성은 전 권들과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주홍색 연구"는 전설의 시작으로 부끄러움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홈즈의 첫 등장 등 캐릭터 묘사부터 흥미를 자아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추리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장편은 단편보다는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성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놓친게 너무나 많았던 듯 하네요.
뭐니뭐니해도 제일 압권은 셜록 홈즈의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경찰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부를 부른 뒤, 그가 범인이라고 폭로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추리 소설 여명기의 작품이 지금도 능가하기 어려운 추리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탄복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추리쇼에 비하면 현재 시점에서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펼쳐지는 온갖 추리쇼는 잠자는 코고로 수준의 억지스럽고 과장된 연극에 불과합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범인 제퍼슨 호프가 드레버와 스탠거슨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2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고전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직 장편 추리소설 서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였다는 점, 그리고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기에 단점이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코넌 도일 경은 낭만적이고 웅장한 역사 서사극에도 능한 작가니, 이 부분도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모르몬 교도를 악습인 일부 다처제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무법자 집단으로 묘사한 건 판단하기 조금 애매하지만요. 그러고보면 모르몬 교도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그렸던 건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 밖에는 없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한 주석 역시 재미를 더합니다. 왓슨이 제대하면서 가져온 군용 리볼버가 무슨 권총인지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와 같은 흥미로운 여러가지 당대 소품에 대한 소개, 그리고 당시 물가 등 다양한 당대 정보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핫 한 잔이 4펜스로 이는 현재 구매력으로는 2,500원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역자 주석도 꼼꼼해서 더욱 만족스러웠어요.
그 밖에도 "주홍색 연구"가 셜록 홈즈가 실제로 욕설 (damned)을 한 묘사가 등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이야기 등 셜록키언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가득한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제퍼슨 호프가 대동맥류를 앓고 있으며 솔트레이크 산에서 오랜 노숙 탓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마르판 증후군에 걸렸거나 매독에 걸린거라는 설을 제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뭘 이런 것 까지 조사했나 싶긴 한데 읽다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저 역시 말단이지만 셜로키언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은 "주홍색 연구" 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개 토미의 후각에 의존한 추적 외에 별다른 추리라는게 보이지 않는 탓이 큽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제퍼슨 호프의 정체와 현재 뭘 하는지를 바로 알아내는 "주홍색 연구"에 비해, 의족 자국과 일반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발자욱과 독침이라는 흉기는 범인이 의족을 했으며 작은 야만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요. 또 배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능력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범인 스몰이 체포되지 않고 버틴 기간(?)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악당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의족을 했다는, "죤 실버"가 연상되는 묘사는 전형적이며, 사건에 얽히는 과정에서 그다지 뛰어난 지력을 발휘하지도 못해서 어떤 면으로도 셜록 홈즈의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숄토 소령에 대한 복수심은 납득이 가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제퍼슨 호프와는 다르게 스몰은 어차피 악당으로 죗값을 치뤄야 하기에 복수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또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 통가를 잔혹한 살인마로 묘사한 것도 지금은 누가 뭐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겠죠.
무엇보다도 왓슨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불호였어요. 의뢰인에게 첫 눈에 반하는 묘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의 사랑 고백까지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지루한 탓이 큽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초반부는 아주 흥미로와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남는 그 하나가 진실이다' 라는 셜록 홈즈를 대표하는 금언이 등장하고, 왓슨이 물려받은 낡은 시계를 조사한 후 왓슨의 형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은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아도 셜록 홈즈의 빼어난 추리력을 증명하는 명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세포이 반란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끌고 들어온 솜씨도 여전히 나쁘지 않고, 추적극을 전면에 배치하여 모험물로의 재미는 충분한 펀이기도 합니다. 주석들 역시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요. 셜록 홈즈가 뛰어난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는 과거 이야기라던가, 홈즈의 뛰어난 변장술이 등장하는 등 팬으로서 관심가질만한 흥미로운 설정도 몇 개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본 편 이야기는 영 별로이기에 결론내리자면 합쳐서 평균 별점 3점입니다. "주홍색 연구"는 4점도 충분하나 "네 사람의 서명"은 2점도 과하죠. 그래도 어린 시절 읽었던 감상과는 다르게 "주홍색 연구"가 빼어난 수작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시대를 초월한, 셜록 홈즈의 시작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네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다른 판본으로도 많이 출간되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홍색 연구"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4/27

소비의 역사 - 설혜심 : 별점 4점

소비의 역사 - 8점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소비' 라는 행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비를 통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냥 단락별로 읽으면 당대 특정 상품과 문화, 유행 등의 역사에 불과해 보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남성보다 뒤떨어지며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성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와 유색인종과 제 3세계를 비하하면서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이 확립되는 과정이 여러가지 상품과 유행을 통해 비롯되었다는 걸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양복의 탄생 편에서는 '맞춤복'이 '기성복' 으로 전환한 산업 행태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이를 통해 명품을 저렴하게 모방한 복제품이 대거 유통되어 평범한 사람들도 쇼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18~19세기 이후 영국 남성복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발전한 덕분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복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여성을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화 하는 '수수한 남성과 하려한 여성' 개념입니다. 트럼프와 멜라니아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흐름인데, 문제는 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갖가지 화려함을 추구하게 된 여성성을 '사치' 개념과 결합하여 여성들을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 배제하는 일종의 사고가 굳혀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들이 '생리 증후군' 등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라고 주장했다는 것도 일종의 차별입니다. 단지 백화점의 탄생으로 도둑이 늘어난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그런데 이 개념도 극히 최근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언급 및 인용되어 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받아들여 왔었는데 반성해야겠네요.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은 '백색성'을 강조하는 비누, 제 3세계를 희화화하고 왜곡하여 정보를 전달한 당대 유행했던 각종 트레이딩 카드들 등을 통해 소개됩니다. 그러나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과는 다르게 이 쪽 영역은 책 후반부에서 노예제를 통해 생산된 설탕 불매 운동이라던가, '미시시피 버닝' 등으로 촉발된 흑인의 불매 운동이 함께 소개되고 있어서 답답함이 조금은 덜합니다. 미시시피에 모든 소비자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월마트가 들어선게 긍정적인 변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는 결말은 너무 소박해서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요.

지금도 통용되는 문제가 발생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인상적입니다. '과시적 소비' 가 등장한 배경이 그러합니다. 산업화된 공동체에서 명성은 재력에서 나오기 때문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건 '어디에 사는가' 라고 합니다. 18세기부터 영국에서는 어디에 사는지로 사람을 구별했다는데, 셜록 홈즈 이야기에도 슬럼가, 가난한 동네 이야기는 항상 등장하곤 했었죠. 우리나라에서 휴거 (휴먼시아 거지) 어쩌구하는 행태의 기원이 이렇게나 오래되었다니 여러모로 속상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가는 행위를 통해 재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좋은 옷 한 벌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듯한 옷 한 벌과 부츠는 빚을 내서라도 사야 했다는데 이는 1938년 조사에서 노동계급이 가장 큰 돈을 쓰는 항목이 남성복 - 부츠 - 석탄 - 조합 가입비 순이었다는 사실로 증명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경쟁해야 하는 사회가 이미 18세기부터 이어져왔다니 이쯤되면 벗어날 수 없는게 아닌가 싶어 무섭기까지 하네요.

그 외에도 그냥 소재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돌팔이 매약에서 시작된 다양한 특허약들 이야기가 좋은 예겠죠. 당대 (18~19세기) 영국에서 이런저런 특허약 소비가 유행했다며 여러가지 특허약들과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가장 유명한 특허약이었던 토머스 비첨의 '비첨스 필'은 어떤 약인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아울러 영국인에서의 이런저런 약이 유행했다는 말에서는 각종 추리 소설 등에서 이런저런 약을 잔뜩 챙겨먹는 등장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주로 괴퍅한 노처녀, 노파들이 많았는데 이 역시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의 하나였을까요?
재봉틀이 세계 최초로 대량판매되었던 표준화된 기계이자 복잡한 내구재라는 개념도 인상적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가전기기'의 효시라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실로 그럴듯하네요. 지금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싱어'가 가장 뛰어난 제품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할부제와 방문 판매제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건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인터넷 셀럽을 통한 PPL같은게 좋은 예겠지요, 재봉틀에 대한 반대가 고용 문제와 의학 담론 두가지 영역에 나타났는데 이는 지금과 같다는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요.
그 외에도 튀르크 옷의 유행이라던가, 저도 궁금했었던 온천의 유행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현대 쇼핑몰의 역사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편 주문 카탈로그가 이미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대성공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이런 글들이 400페이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데 편집도 최고 수준이고 뒷받침하는 도판들도 최고 수준이라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저자인 설혜심 교수님의 글 솜씨도 좋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그랜드 투어" 처럼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거든요. 백화점의 탄생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취미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이미 접해본 바 있으며, 영국의 대박람회와 '수정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소개된 등 다른 책, 컨텐츠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