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1/07/09

목요일의 남자 - G.K 체스터튼 / 유슬기 : 별점 2점

 

목요일의 남자 - 4점
G. K. 체스터튼 지음, 유슬기 옮김/이숲에올빼미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인 가브리엘 사임은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수사하는 비밀경찰이라는 또다른 정체가 있었다. 그는 ‘일요일’이라는 명칭의 위원장이 통솔하는 무정부주의 조직에 잠입한 뒤, 조직의 간부인 ‘목요일’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직의 다른 간부들과 만나며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튼의 장편입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 소개에서도 ‘20세기 추리소설의 걸작’, ‘환상적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이 있어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은 제 기대를 완벽하게 깨버렸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정통 추리소설’은 아닌 탓입니다.

각 요일별로 구분되어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무정부주의 조직 간부들 설정은 상당히 기발했고, 중반부까지 사임이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추격전 - 특히 사임과 교수의 추격전, 서기가 이끄는 기마병과의 추격전 - 은 박진감이 대단했습니다. 추리소설은 아니더라도 근사한 첩보·모험물 분위기를 물씬 풍길 정도였죠.

그러나 종반부는 기대와 너무 달랐습니다. 가공할 존재인 ‘일요일’과의 어이없는 추격전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 선문답,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이한 파티로 끝나는 결말은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오묘한 종교적 상상력과 시대를 앞선 느낌도 들고, 신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고급스러운 재치와 풍자로 표현한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는 묘사—“이 마을 부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사기꾼이오. 아마 이 비율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할 것이오.”—와 전개는 과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저자가 맞구나 싶게 만들지만, 작품의 성격 자체가 예상과 너무 달라서 평가하기가 쉽지 않네요.

고전임은 분명하고, 발상 자체는 경이로운 부분도 있지만, 종교적 요소와 거리가 있는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저처럼 고전 정통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2011/07/06

디케의 눈 - 금태섭 : 별점 2점

디케의 눈 - 4점
금태섭 지음/궁리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검사 근무 후, 유학을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의 법률 수필집입니다. 신변잡기스러운 글이 아니라 철저하게 판례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참여했던 국내 판례가 많이 실려 있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특히 히로뽕 강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형제라는 점을 이용한 나름의 트릭도 등장하는데, 조금만 다듬으면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가끔 화제가 되는,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의 여성을 구해줬는데, 여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방 남성이 폭행죄로 고소한 상황'이 저자의 실제 경험담으로 실려 있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항상 궁금했었는데 현실은 역시 냉정하더군요. 상대 여성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합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친구인 서울대 법대 출신 사법연수생마저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고 하니, 평범한 일반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국내 판례뿐만 아니라 유학파답게 해외 판례도 실려 있는데, LA 자신의 슈퍼에서 미성년자를 사살했던 두순자 사건이 자세하게 소개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설명되는 피상적인 텍스트와 실제 사건 간의 괴리감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 외에도 미란다 원칙의 유래와 그 후일담, 그리고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탄산음료처럼 상큼한 느낌을 주는 미란다가, 사실은 인간쓰레기 연쇄 강간범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하지만 이러한 판례들이 책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다는건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필집이기도 해서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또한 법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것도 편향된 시각이었다 생각되고요.

그래도 장점이 확실한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추리소설들의 명장면이 각 항목 서두에 실려 있다는 점도 반가웠습니다. 특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인용된 점이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만, 법률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2011/07/04

사냥꾼의 밤 - 찰스 로턴 (1956) : 별점 2.5점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꾼 전도사이며 결혼 사기꾼인 해리는 형무소에서 알게 된 사형수 벤이 은행에서 훔친 돈 1만 달러를 두 명의 아이들에게 맡겨 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리는 출소하자마자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나타나 벤의 아내로 과부가 된 윌라와 결혼했다. 그 뒤 그는 1만 달러를 숨겨 놓은 곳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데...

배우 출신 감독 찰스 로턴의 유일한 감독 작품인 고전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1956년도 작품임에도 20세기 초엽의 무성영화, 그중에서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로버트 미첨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세트 중심으로 촬영되었는데 세트의 구도가 기이하고, 조명 효과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너무 과합니다. 공들여 연출했지만, 이미지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요. 연기도 어색합니다. 로버트 미첨이 아무리 명배우라지만, 무성영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는 살리기 어려웠나 봅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추격전은 어설픈 슬랩스틱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연기와 장면에 깔리는 뻔하면서도 과한 음악도 관객을 지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1만 달러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에 대한 서스펜스를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 것이 이 영화 최대의 패착입니다. 중반부 펄이 돈을 꺼내 종이공작을 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을 뿐, 이후에는 완력과 우격다짐으로 숨겨진 장소를 알아내고 아이들을 끝없이 뒤쫓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의 추격전도 별다른 요소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면서 스릴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로버트 미첨의 찬송가를 이용한 연출은 인상적이었으나, 스릴보다는 은근한 분위기 정도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영화를 구닥다리 영화라고 평가절하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은 이유도 분명합니다. 사이비 전도사로 양손의 문신을 이용하여 카인과 아벨을 연기하는 로버트 미첨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독특한 살인마 캐릭터로 길이 남을 만하니까요. 핸섬한 외모와 목소리는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여자를 등쳐먹었다는 설정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줍니다. 또 서스펜스 스릴러와 느와르, 아동 모험물 등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영화에 녹여 냈다는 점도 대단했습니다. 윌라의 사체가 낡은 포드 차에 태워진 채 물속에 잠겨 있는 등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고요.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던 악역이 점점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며, 마지막에는 안쓰럽게 무너져서 황당했던 후반부만 좀 더 잘 다듬어졌더라면 걸작이 되었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