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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레너드 카수토 / 김재성 : 별점 4.5점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10점
레너드 카수토 지음, 김재성 옮김/뮤진트리

부제는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사"입니다. 말 그대로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흐름을 미국의 역사적 변곡점, 흐름과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는 문학사 서적이지요.

간단하게 정리해본다면, 하드보일드의 통로 역할을 한 작품으로 소개된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입니다. 가족과 신앙이 도덕적 삶의 기초이고 중심이었던 19세기 모델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급변한 20세기 초 지극히 미국적인 범죄 행위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 뒤, 전통적 가족 모델이 서서히 해체되는 시기에 등장한 작품이 대쉴 해밋"몰타의 매"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신뢰의 결핍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기업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경제적 변화 때문이지요. 당시 석유 회사에서 시작된 '트러스트' 체제 등장으로 가족 메타포가 기업 세계로 편입되었고, 기업 관행이 모든걸 지배했던 세계입니다. 그 결과, 전통적 가족 관계는 붕괴하고 이기적 개인들이 가족 유대 관계와 의무에서 벗어나 공감따위는 저버리고 돈만 쫓아 날뛰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하지만 돈과 신뢰가 위험한 세상에서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고, 샘 스페이드가 매로 상징되는 '투기'를 거부하는 모습은 1929년 주식 시장 폭락을 반영하며, 매 조각상이 가짜라는건 투기 역시 환상이라는걸 의미합니다. 광란의 투기 경제에 대한 해밋의 비판적 시각을 잘 알 수 있지요. 또 주목할만한건 '진짜 남자'에 대한 해석입니다. 대쉴 해밋은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건 정당한 보수를 받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스페이드는 직업을 잃을 어떤 모험도 하지 않고요. 반대로 부자들은 무르고 기괴하게 여성적입니다. 돈 많은 악당들을 여성화하여 폄하한 겁니다.

그리고 대공황 시대를 잘 드러내는 작품은 제임스 M 케인의 "밀드레드 피어스"입니다. 하드보일드와 감상주의가 결합된 작품이지요. 밀드레드는 감상주의에 빠져 완벽한 가족을 꿈꾸지만 현실은 시궁창, 딸과의 관계가 파괴된 후 술에서 위안을 찾는 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결말로 가정사는 더 이상 여성 공동체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다는걸 알려줍니다.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으로 급작스럽게 모든게 변한 탓입니다. 뉴딜은 현대 복지 국가라는 개념으로 가족이 수행했던 보호 관리 역할을 정부가 맡아 수행했기 때문에 공감과 감성은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여성은 뒤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성 중심 하드보일드 소설은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여성은 배제되고, 남성 관료주의가 가정과 사회의 도덕적 중심이라는 자리를 차지했고요.

대공황 이후 가족은 위협받고, 남성은 남성상의 기본 토대인 가족 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이 몰락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 탄생한게 완벽한 남자 필립 말로입니다. 위협받던 남성상과 파편화된 가족을 구하는 영웅으로, 배트맨과 슈퍼맨 탄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말로는 무너진 의뢰인이나 관계자들 가족 복원에 최선을 다하는, 감상적이고 선한 영웅이거든요. 이는 구시대 하드보일드 태동기의 냉혹한 회의주의와는 정 반대 모습이에요. 가정이 중심이 되며, 사회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1950년대에 접어들면, 말로는 더 깊숙이 사건에 개입하고, 더 정서적으로 엮이게 됩니다. 대표적인게 "기나긴 이별"로 말로는 일이 아니라 일의 수혜자에게도 충성합니다. 이거야말로 감성적인 부분이지요. 이렇게 1950년대에 과도한 남성상을 지닌 폭력적인 마초가 부드럽고 감상적인 영웅으로 변한건 냉전 시기, 강한 미국과 안정된 가정이라는걸 유지하려는 분위기 탓으로 설명됩니다. 가장 끔찍했던건 사회 질서의 붕괴를 뜻하는 여성의 일탈이었고요. 그 덕분에 이 때 진정한 의미의 '요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순위를 매기자면, 일하고 능력있는 여성도 나쁘지만, 동성애자는 전통적 가족의 대립항이라 훨씬 더 나빴고, 무엇보다도 잠재적 어머니 역할을 고의로 방기하는 여성 동성애자는 최악 중 최악으로 인식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짐 톰슨은 풍요 속 공포와 우려를 표현했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고향에서 뿌리를 잃은 도덕적 불안을 작품에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두 작가 작품 속 주인공들 모두 피해자들에 대한 감상주의적 공감이 최대의 능력으로 묘사되며, 감상주의를 중산층에서 분리해서 상류층에 국한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감상주의가 위험하다는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특기할 만 합니다.

1960년대 들어서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더욱 친절해지고, 범인들은 더욱 사악하고 반사회적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탐정들은 가정을 중시하는 감상주의자에 심지어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페미니스트이기도 할 정도로요. 이 시기, 로스 맥도널드는 무너지는 가족 관계를 그렸는데, 모자간 결합의 단절을 통해 부모들의 책임 회피와 피해자는 아이들이라는걸 나타내었습니다. 이는 반항하는 자녀와 무력한 부모라는 1960년대 세대간 갈등을 극명하게 투영한다고 할 수 있지요. 젊은이들의 신뢰를 받고 파괴된 가족을 복원해주는건, 연민, 공동체적 결속과 공감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폭력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 사립 탐정이고요. 이렇게 친절하고 가정적인 사립 탐정 속성의 변화는 여성 탐정들을 등장시킵니다. 반면 더욱 사악하고 반사회적이 된 범인들은 결국 연쇄 살인범으로 진화하였습니다. "레드 드래곤"이 연쇄 살인범 소설의 교과서적 캐릭터와 기본 플롯을 제공한 뒤, 포화상태를 넘어서 공급 과잉상태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20세기 후반 미국 정부의 정신질환 정책과의 관계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가 공감을 일으키는 대상에서 괴물로 변한 뒤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으며, 연쇄 살인범은 이 대상화 작업에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이렇게 현대 연쇄 살인범 소설까지 큰 흐름을 일람하고 있으며, 흑인 범죄 소설과 같은 특이점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미국 근대사와 범죄 소설의 흐름이 절묘하게 일치하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대표작에 대한 소개도 상세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문제라면 저는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었던 존 D 맥도널드의 작품이나 탐정 스펜서 시리즈에 대한 호평이었습니다. 이래서야 책에서 소개하는, 제가 읽지 못한 다른 작품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할 수 밖에 없지요. 60년대 이후 범죄 소설의 흐름에 대한 소개는 별로 자세하지 않다는 점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쪽 장르에 대한 문학사이자 비평서로서 재미와 가치 모두를 충족시키는 좋은 책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와 범죄 소설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리뷰를 쓰기 어려웠어요.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했던게 문제였습니다. 약간은 공부하듯 분석하고 정리해야 내용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리뷰로 이 책을 잘 소개하지 못한건 다 제 공부가 부족한 탓입니다....

2023/10/13

COCKTAILS WITH PHILIP MARLOWE, SAM SPADE, AND BOGART

예전에 제가 썼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에세이에서 추리 소설 속 칵테일에 대해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셜록 홈즈가 연재된 잡지로 영원히 기억할 "The Strand Magazine"에서 비슷하게 하드보일드 탐정들과 칵테일에 대한 칼럼이 있길래 번역해보았습니다. 수준은 엉망이고 의역도 많으니 내용 참고 정도로만 보아 주세요.
"I like liquor and women and chess and a few other things."- 필립 말로우 <<기나긴 이별>>

누아르 속 탐정의 이미지는 샘 스페이드 역의 보가트, 하루 일당을 받고 갱스터와 팜므파탈과 싸우는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우 역의 로버트 미첨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영화와 배우들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의 탐정들 캐릭터는 그들이 선택한 술에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고요. 분홍색 빨대와 함께 제공되는 프로즌 다이키리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진하면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 음료를 마셨지요. 지저분하고 어두운 술집이나 구식 호텔 바, 스테이크 하우스 옆 칵테일 라운지, 현지 펍에서요.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바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음모를 꾸미고, 비밀을 밝히고, 속삭이는 고백에는 낭만적인 느와르가 있습니다."라고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리사 웅거(Lisa Unger)는 말합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는 열렬한 애주가였습니다. 그는 항상 사무실에 올드 포레스터 버번 한 병을 보관했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올드 포레스터 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병은 3분의 1 정도 차 있었다."라고 소설 <<리틀 시스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 토비 위디컴이 쓴 <<레이몬드 챈들러를 위한 독자 가이드>>에는 챈들러 작품 속 등장 음료에 대한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핑거맨>>에는 바카디가, <<빅 시티 클루스>>에는 바카디와 그레나딘이 등장합니다. <<더 하이 윈도우>>에는 포 로즈 위스키가 등장하고요. <<라온트 피전>>에는 더블 깁슨이 있습니다. 이 목록에는 올드 그랜드대드 위스키와 브루클린 스카치도 포함됩니다.
칵테일 문화에 대해 말로는 영구히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김릿에 대해서였습니다.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영국 출신이자 열렬한 애주가인 테리 레녹스는 필립 말로우에게 "진짜 김렛은 진 반, 로즈 사(社)의 라임 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뒤 말로우가 혼자 바에 갔을 때, "바텐더가 내 앞에 음료를 갖다 놓았다. 라임 주스 때문에 엷은 녹색 기미가 있는 신비한 노란 빛깔이었다. 입을 대 보니 부드러운 단맛과 날카롭게 혀를 찌르는 강한 자극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 내 앞에 올려 보였다. 우리는 함께 마셨다. 그제서야 그녀의 음료도 똑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라고 했지요.

김릿
진 2온스 
로즈 라임 주스 ¾온스 
얼음과 함께 쉐이커에 넣은 뒤 30초간 세게 흔든다. 칵테일 잔에 따른다.

대쉴 해밋의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는 위스키를 즐겨 마셨고, 해밋의 코믹한 부부 범죄 해결사 닉과 노라 찰스는 칵테일 잔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닉 찰스가 1934년 소설 <<씬 맨>>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들은 완벽한 칵테일을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닉은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항상 쉐이킹에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맨해튼에서는 폭스트롯 음악에 맞춰, 브롱크스에서는 투스텝 음악에 맞춰 흔들지만 드라이 마티니는 항상 왈츠 음악에 맞춰 흔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작가 제임스 크럼리의 미스터리 소설은 술집과 맥주, 초라한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잘못된 사건>>에서 사립 탐정 밀로 드라고비치는 음주에 대해 긴 독백을 합니다. "아들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절대 믿지 마라. 그는 항상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들 중 일부는 선한 사람이지만 선의 이름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고통을 야기한다. 그들은 심판자이자 간섭자야. 그리고 아들아,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마라. 그들은 보통 겁쟁이나 바보, 그렇지 않으면 비열하고 폭력적인 무언가를 내면 깊숙이 두려워하고 있는 놈이기 때문이야. 자신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단다. 하지만 가끔 변기 앞에 무릎을 꿇는 남자는 믿을 수 있다. 그는 겸손과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남자가 더러운 변기에 내장을 내밀 때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

사람들이 미스터리를 쓰는 한, 술을 좋아하는 탐정은 계속 존재할겁니다. 사립 탐정은 힘든 직업입니까요. 긴 근무 시간과 낮은 급여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가끔은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 속 주인공 마이크 해머처럼 술집에 가서 주문을 해 봅시다. "더블 버번 한 잔, 병은 놔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