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4/04/30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 - 량셔우쭝 / 김영수, 안동준 : 별점 4점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 - 8점
량셔우쭝 지음, 김영수. 안동준 옮김/김영사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중국 역사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무협소설의 역사와 그 줄기를 치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무협 백과사전. 잘 알려진 "삼국지"나 "수호지"는 물론이고 요사이 드라마화 된 "사대명포"나 "칠협오의"같은 고전, 그리고 김용과 양우생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무협 소설까지 이쪽 장르의 모든 것을 간단한 줄거리와 더불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무협의 요소, 특히 "협"이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그 역사와 내용을 파고들어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단순히 역사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고사나 여러 시가들,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와 실제 역사 및 여러 무공이나 무기 등의 설명 역시 자세한 편이에요.
특히나 무협소설을 하위 문학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반론하듯 무협소설은 중국의 생활과 문화, 모든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문화 그 자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작가의 생각도 잘 표현되어 있어서 무협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은 책의 거진 50%를 김용 관련 글로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주루주 (촉산전)나 다른 양대 산맥인 양우생, 그리고 고룡 (초류향 시리즈) 등의 설명도 충실한 편이긴 하고, 김용이라는 작가의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이 너무 크다보니 원래 의도하고 있는 "무협 백과사전"으로서의 가치는 좀 약해지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래도 무협소설에 대해 이만큼 알려주는 책은 찾기 힘들죠. 별점은 4점입니다. 무협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려있는 국내 무협소설가 금강이 서술한 '한국무협소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자료적 가치가 본편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글이라 생각되네요.

2004/04/26

다이얼 M을 돌려라!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4점


전직 테니스 스타 토니(Tony Wendice: 레이 밀런드 분)는 부자인 아내 마고(Margot Wendice: 그레이스 켈리 분)와 결혼한 뒤, 테니스를 그만두고 사업가로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아내가 옛 동창이자 추리 소설가인 마크(Mark Halliday: 로버트 커밍스 분)와 사랑에 빠지자 아내의 유산을 노리고 청부살인을 계획한다.
옛 동창생 스완(C.A. Swan/Captain Lesgate: 안소니 도슨 분)을 끌어들여 마고를 죽이도록 치밀한 계획을 꾸민 뒤, 자신은 알리바이를 위해 연적 마크와 함께 사교모임에 참석하나 마고는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는 스완과 격투를 벌이다 엉겁결에 바느질 가위로 그의 등을 찌르고, 스완은 뒤로 넘어지면서 가위에 깊이 찔려 숨지고 만다.
토니는 이 우연한 기회를 오히려 역전시켜 아내를 계획적인 살인범으로 몰아가며 사형 선고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마고의 애인인 마크와 형사반장(Inspector Hubbard: 존 윌리암스 분)의 끈질긴 추격으로 결국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굉장히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EBS에서 방영해 주길래 놓치지 않고 보리라 마음먹고 기다려서 본 작품. 초반부의 토니의 치밀한 살인 계획과 약간씩 어긋나는 실제상황, 그리고 중반 이후의 토니의 아내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두뇌게임이라는 크게 두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초반부는 추리소설가 마크가 이야기한대로 “실제로는 제대로 될 리가 없겠죠”라는 완전범죄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적 요소들만 잘 보여주고 있어서 재미있더군요. 계획과 달리 외출하려고 하는 아내라던가, 갑작스럽게 멈춘 시계로 타이밍을 놓친다던가, 급한 전화를 하려 하는데 공중전화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던가 하는 디테일이 긴장감 있게 진행됩니다.
중반 이후는 오히려 초반의 완전범죄 계획보다 토니의 애드립이 치밀함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것도 굉장히 신선했고요. (역시 애드립인가!) 무엇보다도  정통 추리물의 구조에 비교적 충실하게 몇가지 단서,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었던 (!) 단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토니의 범죄를 밝히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나 멋지더군요. 별볼일 없어 보이던 하버드 형사 반장의 추리가 정말이지 반짝반짝합니다. “마크, 역시 자네 말대로 잘 되지 않는군” 라는 마지막 토니의 명대사도 기억에 많이 남고 말이죠.
추리소설가 마크의 활약은 기대 이하라는 점, 그리고 바람을 피운 마고도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기에 마크와 마고의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부는 좀 아쉽긴 했습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명불허전!"의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히치콕의 걸작 중에서도 베스트에 꼽히는 작품답게 등장인물도 몇 없고 세트 하나에서 영화가 거의 다 이루어지지만 그 서스펜스와 치밀한 두뇌게임은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토니역의 레이 밀렌드의 뻔뻔스러운 악당 연기와 마고역의 그레이스 켈리의 현재도 빛을 발하는 미모를 감상하는 것은 보너스고요.
때문에 별점은 4점. 아직 보시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다이얼 M은 토니의 집 전화번호의 가장 앞에 있는 번호의 알파벳 이니셜이더군요. 여기서는 "Murder"의 의미도 있겠지만요.

브라운 신부 전집 3,4,5 : 의심-비밀-스캔들 - G.K 체스터튼 : 별점 3점

의심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비밀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단편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최고의 명탐정이자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탐정 브라운 신부.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가 잘 안된 편이었지만 북하우스에서 전집이 몇년 전 출간되었었죠. 구입한지는 제법 된 것 같은데 읽는게 좀 늦었습니다. 그 중 1,2권인 결백과 지혜편은 예전 자유추리문고본으로 먼저 읽어 보았기에 3,4,5권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먼저 각 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말씀드리자면,
3편 의심에서는 일종의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과 불가해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역시 밀실 트릭의 일종이지만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개의 심리를 사건과 결부시키는 걸작 “개의 계시”, 괴기스러운 느낌의 복수극으로 완전범죄를 완성하려는 살인범의 트릭을 파헤치는 “날개달린 단검” 이,

4편 비밀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추리의 비밀을 털어놓는 “브라운 신부의 비밀”, 광기의 복수극을 그린 “보드리 경 실종사건”, 연극에 관련된 밀실 살인 사건인 “배우와 알리바이”, 3편의 “날개달린 단검”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최악의 범죄”, 범인으로 몰린 시인의 누명을 벗겨주는 한편 다른 동기에서 진범을 찾아내는 “판사의 거울” 편이,

5편 스캔들에서는 사람의 인상과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장난인 “폭발하는 책”과 텅빈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퀵 원”, 살인자와 피해자에 대한 오류를 바탕으로 한 “블루 씨를 쫒아서”, 명망있는 제독의 살인사건을 범인의 말 한마디로 파헤치는 “그린맨”, 조그만 마을에 파란을 몰고온 목사 아들의 패륜행위의 뒤에 숨겨진 범죄를 밝혀내는 “마을의 흡혈귀”, 기발한 시체 은닉 트릭이 등장하는 “핀 끝이 가리킨 것”이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대체로의 단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일정 수준이상을 넘어서는 작품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탐정들과는 다르게 직관과 인상, 정황에 주력하여 자신의 느낌으로만 사건을 꿰뚫어보는 브라운 신부의 특징도 전편에 걸쳐 잘 살아있고요. (참고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의 비밀이 4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설명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참으로 읽기는 힘든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이란 모름지기 쭉쭉 읽어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인데 대사나 묘사가 장황하여 한번에 읽어내리기 어려웠어요. 체스터튼이 워낙 당대의 유명 문인이었던 만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에서도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문체를 도입하여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예전 다른 문고본에서 읽고 느꼈던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면 번역 문제인것 같기도 한데 여튼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또 다른 단편집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는 한데, 하나의 트릭을 변형하여 여러 곳에 쓰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살인자”<>”피해자”의 역할 바꾸기 라던가 잘못된 증언의 오류를 짚어내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뭐 등장하는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어서 큰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읽는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전집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만 할 따름이라 점수를 조금 더 얹어 봅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유머스러운 브라운 신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번역이 조금 수정되면 더욱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