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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거인들의 전설 - 호시노 유키노부 : 별점 2.5점

거인들의 전설 - 4점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애니북스

호시노 유키노부SF 중, 단편집입니다. 오래전 북오프에서 구입한 뒤 묵혀두다가, 좀 무게감 있는 작품을 읽고 싶어 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핵심 중편인 "거인들의 전설" 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단편 "이카루스 계획"은 호시노 유키노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지만, 지나치게 초기작이라 작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리뷰는 아래와 같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인들의 전설"

6만년전, 빙하기 당시 정신력을 기반으로 한 고도 문명을 이루어 살던 거인족 타이탄이 목성을 태양으로 만들어 빙하기를 막으려다 실패하여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현재, 태양 에너지 감소로 인해 현대에 다시 닥친 빙하기 해결을 위해 거인족이 만든 피라미드를 이용하여 목성을 불태워 '제 2의 태양'을 만드려는 계획이 시작되는데...

호시노 유키노부의 SF 중편. 고대 타이탄 족의 이야기와 현대의 위기를 1, 2부로 나누어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특히 작가의 특기 중 하나인 과학적인 설정과 이야기의 결합 측면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빙하기와 목성 태양화 계획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지구의 극점 이론이라던가, 타이탄 족이 만든 피라미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설정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특유의 반전을 통한 재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기는 목성 태양화 멤버의 내분에서 찾아오며, 반란파를 진압하고 우주선을 떨구는 게 이야기의 전부거든요. 여기서 반란파와 주인공 일행의 싸움은 단순한 액션물에 불과할 뿐이고요.

딱 한 가지, 마지막 주인공이 우주 공간에서 총을 쏴서 악당을 해치우고 구조선까지의 이동도 성공하는 장면은 호시노 유키노부스러웠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카루스 계획"

지구의 에너지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끌어 당기려는 이카루스 계획이 시작되었다. 주인공 일행은 이를 막으려는 테러 집단인 지구 해방 전선의 우주선과 우주전을 벌이는데...

작가의 초기작으로 내용은 간단하지만 과학 지식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전작보다는 보는 재미가 큽니다. 지구 해방전선이 쏜 미사일이 태양의 인력 탓에 정상 궤도를 상실하고, 추락하던 이카루스호가 소혹성의 인력으로 기사회생한다는 내용들 처럼요. 이 장면에서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를 보이는 점도 아주 좋았습니다.
또 이카루스 계획 설정은 물론 에너지를 독점하려고 하는 악역 설정도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지금 읽기에도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주인공 약혼자의 죽음, 목숨을 건 수리와 죽음과 같은 신파조의 연출에 더해 정교하지 못한 초기 극화 스타일의 작화는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호시노 유키노부답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18/05/26

속삭이는 자 1,2 - 도나토 카리시 / 이승재 : 별점 2.5점

속삭이는 자 1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속삭이는 자 2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본 작품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차례로 유괴된 후, 여섯 명 소녀의 절단된 팔이 발견되었다. "아돌프" 라고 명명한 범인의 도전에 게블러 박사가 이끄는 연방 경찰의 행동 과학 수사팀은 총력을 다해 응했지만, 소녀들의 시체가 한 구 씩 차례로 발견되었고, 발견된 장소와 얽힌 추악한 범죄가 함께 드러나며 수사팀은 서서히 와해되는데...

이탈리아 출신 범죄학자의 장편 소설 데뷔작입니다. 회사 동료인 Y리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Y리님 감사해요!).

천재적인 범죄자와 경찰과의 대결은 굉장히 많이 보아온 물릴대로 물린 설정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범죄자 "아돌프"가 여섯 명의 조력자와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두 번째 시체 발견 장소인 옛 고아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기가 막힙니다. 왜 고아원에 시체를 유기했는지? 에 대해 오래전 고아원에서 빌리라는 소년이 살해된 사건을 밝혀내고, 진범 로널드 더미스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들거든요. 로널드 더미스가 "그"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진짜 흑막을 드러내는 연출도 괜찮고요.

작가로서의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 편에 걸쳐 치밀한 복선과 단서를 배치하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실종 아동을 찾는 전문가로 팀에 투입된 밀라를 적대시하는 로사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죠. 이는 로사가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실종 아동의 어머니로 유괴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여섯 번째로 실종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샌드라가 최초의 목표였으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실종 아동은 모두 샌드라의 조건에 맞춰 고른 것 - 때문에 모두 비슷한 또래의 외동 딸들임 - 이라는 이론도 아주 괜찮았어요. "ABC 살인사건"같은 아이디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못한 만큼, 다른 작품 속 트릭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사체가 발견된 장소와 얽힌 다른 사건이라는 설정에 대한 작가의 욕심은 지나쳤어요. 두 번째 실종 아동이 발견된 사건까지는 앞서 말씀드렸듯 아주 괜찮지만, 세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조지프 록포드, 네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펠더 사건은 그 규모와 잔혹성 모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어린 시절 동료 고아를 죽인 고아 소년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엄청난 거부가 30여 명의 동성애 상대들을 모두 죽여 저택 인근에 매장하거나, 별볼일 없는 고아 출신 일용직 노동자가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는 일가족을 6개월 동안 지배하며 학대하다가 잔혹하게 살해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이 두 사건 모두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본 이야기와 비교해도 더 자극적이고 규모가 절대로 작지 않은 사건이라 본말전도가 된 느낌도 들고요. 

게다가 수사팀 본부에서 다섯 번째 소녀가 발견된 이유가 팀 내부에 있는 배신자이자 유괴의 조력자인 로사를 고발하는게 아니라, 수사팀의 실질적인 리더인 고란 게블러 박사가 저지른 살인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반전도 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전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앞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묘사된 게블러 박사의 일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도 조금 입맛이 썼어요. 좋은 아이디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렇게 까지 해서 독자를 속일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과한 이야기들도 나름 재미는 있어서 그렇다 쳐도, 사건의 진짜 흑막이자 진범인 "속삭이는 자"에 대한 설정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조종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실제로도 여러 사건들이 있다고 하고, 저자도 범죄학자 출신이라 이런 사건들을 토대로 창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 속에서 선보이는 그의 모습, 행적은 모두 모호하고 어떤 건 초능력에 가까운 탓에 설득력이 낮습니다. 물론 몇몇 디테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로널드 더미스(와 펠더)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했다고 설명하며, 방법도 조지프의 회상에서 살짝 선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몇마디 말, 연극적인 무대 묘사에 그칠 뿐이라 별로 그럴듯 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알렉산더 버먼처럼 특별하게 세뇌하지 않고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방법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이 네 명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유괴할 타겟을 골라내었으며, 어떻게 실행범 빈센트 클라리소를 한 달만에 감방에서 교육시켜 원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는지는 아예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이게 사건의 핵심인데, 결국 범행은 증명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니까요. 여기에 더해 아돌프가 고란 게블러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완전 억지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교도소에서의 모습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절대로 흘리지 않는다는 식이라 그냥 전능한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전능한 범죄자의 비법(?)이 소개되지 않는 점에서는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죠. 이럴 바에야 로널드 더미스가 진범인 서스펜스 스릴러로 끌고가는게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을 겁니다.

또 반전에는 욕심을 냈지만 캐릭터 설정은 그렇지 못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고란 게블러 박사와 밀리 형사 모두 이런 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라 굉장히 식상해요. 토마스 해리스, 제프리 디버 등 유명 작가들의 두뇌파 남성과 행동파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차별화를 두기 위한 여러가지 설정, 예를 들어 밀라가 과거 유괴된 경험이 있고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라는 식의 설정도 무리수에 불과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치고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여러모로 욕심이 너무 과해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만큼 소일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8/05/25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그대 눈동자에 건배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2011년 ~ 2016년 사이 발표되었던, 비교적 신작들로 이루어진 히가시노 게이고단편집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네요. 고민 없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의지해 써내려 간 작품이 대부분인 탓입니다. 추리물 성향의 작품들도 트릭의 깊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등 정교한 맛이 부족하고요.

이야기 꾼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쑥쑥 읽히는 맛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도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각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새해 첫날의 결심" 

새해 첫 날, 신사 참배를 가던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는 신사에서 속옷만 입은 남자가 기절한걸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군수로 머리에 둔기로 타격을 입고 쓰러진 상태였다. 신사로 향하는 길은 외길로 부부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군수의 옷은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발견되는 등 사건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외길로 갇힌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일종의 밀실 트릭이, 피해자의 옷이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사용된 불가능 범죄물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한 의외성을 지닌 작품은 아닙니다. 신사로 오는 동안 범인을 보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 신사에서 아직 도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경찰이 조사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에 숨어있다는게 진상이지요. 그래도 이 밀실(?) 트릭은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군수가 옷을 벗은 이유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한 여인을 두고 교육장과 벌인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벗고 뛰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전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옷을 벗고 뛴다고 더 빨리 뛸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불편한 구두를 언급하며 신발 정도를 벗었다면 모를까, 속옷만 입고 뛴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결말도 문제입니다. 사실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가 자살을 결심한 상태였으며, 이 둘이 이러한 황당 사건을 접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는건 구태여 붙일 필요 없는 사족이었습니다. 시리즈 물도 아니고, 독자가 전혀 알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정보였어요.

추리 작가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가 엿보이기는 하나 여러모로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10"

추리작가 미네기시는 1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옛 애인 쓰다 치리코의 연락을 받고 밸런타인데이에 재회했다. 둘은 옛 이야기, 그의 작품 이야기를 식사와 함께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치리코는 옛 동아리 멤버였던 후지무라 에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미네기시가 10년 전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진상을 치리코가 풀어내는 내용으로,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였던 치리코가 에미로부터 전해들었던 습작 줄거리가 미네기시가 발표한 소설과 똑같다는게 증거입니다. 즉, 작품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지요.

설정도 진부하고 전개도 일방적인 치리코의 주장 뿐이지만, 사건 당시 데이터가 삭제되었던 후지무라 에미의 노트북을 복원하여 이를 가지고 미네기시의 범행을 증명하는 과정은 잘 짜여져 있습니다. 데이터를 몰래 훔쳐내고 노트북 데이터는 지웠지만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는 미네기시의 주장을 논박하는게 핵심인데, 앞 부분에 살짝 등장한 미완성 휴재작 "심해의 문"이 여기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덕분에 설득력이 높아요. 아이디어가 고갈된 미네기시가 마지막으로 미완성작까지 손댔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데이터는 그녀가 살해당한 날 저장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지요. 정황 증거이기는 하나 이 정도면 결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미네기시가 아무리 별로라도 10년이나 프로로 활동했다면 최소한의 실력은 쌓았을텐데 너무나 무능하게만 그려진 것, 마침 치리코가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였다는 점, 또 그녀가 경시청 형사라는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 등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이라 좀 더 고민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면 단편으로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사부로는 딸 마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놀라지만,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 식구를 보고 더 놀란다. 사돈 가문이 큰 종합 병원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기 때문이었다. 엄한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한 자신의 아내를 기억하고 있는 사부로는 사돈 부인의 엄격함을 알게 된 후 마호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데... 

사부로의 죽은 아내 가나코는 시집살이가 힘들었지만, 여러가지로 극복하고 즐겨왔다는걸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과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일상계 작품입니다.

일상계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는 한데 이 작품 속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을 가지고 한 장난은 추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합니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소재라 우리에게 와 닿기도 어렵고, 어차피 약간의 장난에 불과한 탓입니다. 이 정도 만으로 "모든게 다 괜찮았고 앞으로 잘될거다" 라는 식으로 끝내는 결말도 안이했고요. 얼마나 시어머니가 괴롭혔으면 이렇게까지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애처로움이 생겨나야 정상일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제가 딸 자식을 가진 부모라 그런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나"는 우연히 나간 미팅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화장을 한 모모카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에 대한 것은 철저히 감춘 탓에 둘은 애니메이션 관련 이야기만 나누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나에게, 모모카는 자신에 대해 알면 실망할거라며 콘텍트 렌즈를 뺀 모습을 보여주는데...

표제작입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고 빠칭코와 경마장을 출입하는 "나"가 도박 중독자가 아니라 '미아타리 수사'에 종사하는 경찰관이었다는 반전이 선보입니다.

그러나 '미아타리 수사' 라는 수사 방식에 대해 조사한 뒤, 지명수배자의 특징을 기억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이 수사 방법의 포인트가 나이를 먹어도, 살이 찌거나 빠져도, 성형 수술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눈매라는 것에 착안하여 별 생각없이 작품으로 써 내려간 티가 물씬 납니다. 모모카가 지명수배자였다는 것을 알아내는게 콘텍트렌즈를 뺀 후였다는 장면 때문이에요.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눈매" 를 숨기기 위한 방법으로 콘텍트렌즈를 선택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콘텍트렌즈 착용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정도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연에 기반한 작위적인 설정이 반전의 핵심인 탓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야타리 수사" 에 대해 알게 된 것 정도만 수확이네요.

"렌털 베이비" 

에리는 장기 휴가동안 휴머노이드로 가상 육아 체험을 하게 해 주는 사업에 등록한 후, 파트너 아키라와 함께 육아에 고군분투하며 모성애에 눈을 뜬다...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이 조금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호시 신이치쇼트쇼트 SF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휴머노이드를 이용한 가상 육아 체험 서비스 사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더해, 아키라 역시 가상 육아 체험을 위한 계약 파트너에 불과했으며 에리가 60살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 덕분입니다.

특히 반전이 핵심이에요. 아들 대신 가짜 로봇, 휴머노이드를 아들로 양육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와는 다르게 육아를 체험하는 서비스를 내세운 것도 신선하지만 이 반전으로 인하여 모든 걸 가상 체험하게 만드는 미래 사회가 어떨지 잠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정말로 귀찮고 힘든건 단지 잠깐의 체험만으로 끝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만큼 기술이 발달하면 귀찮고 힘든건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 해 주겠지만요.

고전 쇼트쇼트에 대한 경의와 함께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장난 시계"

"나"는 무직으로 모종의 브로커를 통해 수상쩍은 일을 가끔 하고 지내던 중, 한 맨션에서 흰색 조각상을 가져 오는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집을 뒤지다가 집 주인을 죽이고 마는 사고를 저지른다...

특정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아무런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의뢰한다는 설정은 흔하지만, 이를 의뢰인이나 피해자 시점이 아니라 수행 당사자 시점에서 묘사한게 조금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손목의 시계가 범행 시간에 딱 맞춰 고장나 멈춘게 이상해서, 그걸 풀어 가져간 후 직접 고쳐서 되돌려 놓았다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되돌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요. 

이 불필요한 행위로 꼬리가 밟혀 체포되는 결말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장난 시간이 범행 시각이 아니라 그날 아침이었다는 약간의 트릭인데, 비록 10 여분 정도 차이가 났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친 우연이에요. 흰 조각상이 사실은 특수한 방법으로 굳힌 마약이라는 설정도 불필요했고요. 그냥 상자 하나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될 것인데 뭐 이리 과한 설정을 넣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행동, 있기 어려운 기이한 우연을 밀어 붙인 결과물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사파이어의 기적"

미쿠는 신사에 나타난 떠돌이 고양이와 친해진 후 "이나리"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이나리는 트럭에 치여 죽었다. 한편 "사파이어"라 불리우는 파란색 털을 가진 페르시아 고양이가 파란색 후손을 원하는 브리더들 사이에게 전설과 함께 떠돈다.... 

파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와 고양이 뇌 이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인데, 딱히 재미가 있다거나 새롭지는 않습니다. 있을 수 없는 색을 가진 무언가를 다룬 작품은 흔하니까요.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에서의 블루 앤젤 피쉬처럼요. 또 미쿠와의 인연을 뇌 이식으로 가져가는 전개도 불필요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야기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순종 페르시안이 아니라 잡종만 파란색 털을 가진다는 마지막 반전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 이하의 범작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배우 쿠로스는 자신을 옭아매는, 연상의 각본가 야요이를 살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알리바이 장치를 마련한 후 그녀를 찾아간다. 

쿠로스의 범행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서 미스터리인데 쿠로스가 범행에 사용할 독극물을 야요이로부터 훔쳐냈다는 형편없는 설정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에서도 독극물의 분량을 확인한 후, 야요이가 쿠로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살을 위장한 자살을 감행하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해 그를 놓아주고 잘 해주는 척 하다가 뒷통수를 치며 자살한다는 야요이의 행동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범행을 목격했다면 거미줄처럼 그를 더 옭아매어 아예 피를 쪽쪽 빨아 먹는게 상식적이잖아요? 실제 관계를 맺었던 다른 배우들을 파멸시켰다는 그녀의 전례를 비추어 본다면 이 정도로 상처를 입고 죽을 결심을 한다는 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자살로 그녀가 얻을 건 단 한 개도 없기도 하고요. 쿠로스가 파멸한다고 해도 죽고 난 다음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서 추리로 전개되는 과정은 나름 흥미진진하지만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의 핵심인 위장 자살의 설득력이 너무나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정 염주"

지역 유지 와타라이가의 외동 아들 나오키는 안락하고 편안 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7년 동안 고군분투하던 중,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누나의 전화를 받는데... 

와타라이 가에 전해 내려오는, 타임 슬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수정 염주"를 가지고 풀어낸, 일종의 일상계 판타지입니다. 타임 슬립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오르네요.
아버지 신이치로가 이 힘을 사용한 건 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마지막 결말을 통해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 는 희망찬가를 전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늙은 나오키가 염주의 힘으로 아버지 회사를 뛰쳐나오기 전으로 돌아가 얌전히 회사를 물려받아 다닌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인 결말이 될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뭐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둬야겠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작품도 재미있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